본고는 17~18세기 훈련도감에서 사용하는 연료의 조달 방식과 변화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훈련도감에서는 조총, 화약 등 무기를 만들거나, 군병들의 의식주를 위해 숯과 토목이 사...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8831496
여민주 (부산대학교)
2023
Korean
연료 ; 柴場 ; 화전 ; 둔전 ; 훈련도감 ; Fuel ; Sijang(柴場) ; Slash-and-burn field(火田) ; Dunjeon(屯田) ; Hullyeon-Dogam(訓鍊都監)
KCI등재
학술저널
79-113(35쪽)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17~18세기 훈련도감에서 사용하는 연료의 조달 방식과 변화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훈련도감에서는 조총, 화약 등 무기를 만들거나, 군병들의 의식주를 위해 숯과 토목이 사...
본고는 17~18세기 훈련도감에서 사용하는 연료의 조달 방식과 변화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훈련도감에서는 조총, 화약 등 무기를 만들거나, 군병들의 의식주를 위해 숯과 토목이 사용되었다. 군인들의 의식주를 위한 연료보다 군기 제조에 더 많은 연료가 소요되었으므로, 연료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훈련도감에서 필요한 연료는 2가지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는 중앙관사와 같이 시장 절수를 통한 연료 조달이다. 조선전기부터 중앙관사나 무기 제조를 담당한 관청인 군기시는 시장을 절수 받았음을 법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훈련도감은 조선후기에 설치되어 법전에는 기록되어 있지않지만, 사료에서 시장 절수를 확인할 수 있다. 훈련도감은 경기 양근과 강원 춘천‧홍천‧낭천 지역에 시장을 절수 받았고, 여기서 무기를 제조하는 등 도감에서 필요한 연료인 토목을 수취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수목이 부족하게 되면서 시장은 화전으로 개간되기 시작하였고, 연료 수취 방식이 현물 수취에서 세금 수취로 변화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두 번째는 둔전 경영을 통한 연료 수급이다. 조선은 각 군영에 둔전을 지급하였는데, 둔전을 경작해서 필요한 재정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만기요람에는 훈련도감에 14개의 둔전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3개의 둔전이 연료를 마련하는 명목으로 절수된 둔전이었다. 둔전에서 경작에 대한 세금을 받아 연료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훈련도감의 시장과 둔전은 설치 시기와 위치, 세금 수취 등 내용이 비슷하였다. 검토한 바에 따르면 조정에서는 먼저 훈련도감에 시장을 절수를 허용하였고, 여기서 도감으로 하여금 벌목하여 연료를 수취하도록 하였다. 시장 내에 수목이 없어지자, 화전으로 개간되기 시작하였다. 시장 절수지가 화전으로 개간된 이후 세전을 거두어 토목을 마련하였다. 이후 시장으로 절수 받았던 곳들이 화전으로 모두 경작지로 개간되자, 이 지역을 둔전이라고 칭하였고, 이를 만기요람 등 19세기에 편찬된 사료에서는 둔전으로 명시하였다. 양근‧춘천‧홍천 지역에는 훈련도감의 시장과 둔전이 각각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시장의 둔전화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paper, we tried to examine the supply method and changes of fuel used in Hullyeon-Dogam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In the Hullyeon-Dogam of the late Joseon Dynasty, charcoal and tomog(吐木) were used to make weapons such as handguns and...
In this paper, we tried to examine the supply method and changes of fuel used in Hullyeon-Dogam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In the Hullyeon-Dogam of the late Joseon Dynasty, charcoal and tomog(吐木) were used to make weapons such as handguns and gunpowder, or to provide food, clothing, and shelter for soldiers. In order to solve the fuel demand required by the military camp, it was attempted to solve it through two methods.
The first is the supply and demand of fuel through Sijang, like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It can be seen from the Code that GunGisi, a government office in charge of central government offices and weapons manufacturing since the early Joseon Dynasty, received Sijang. Military camps, including Hullyeon-Dogam, were establish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are not recorded in the code of law, but it can be seen that Sijang was paid from the historical records. Hullyeon-Dogam received Sijang in Yanggeun, Gyeonggi-do, and Chuncheon, Hongcheon, and Nangcheon, Gangwon-do, and was required to receive tomog, a fuel necessary for the military camp, such as manufacturing weapons. However, due to the lack of trees, Sijang was reclaimed as a slash-and-burn field.
The second is fuel supply and demand through Dunjeon management. Joseon paid dunjeon to each military camp, which was cultivated and used for necessary finances. It is confirmed from 19th century data that Hullyeon-Dogam also had Dunjeon. It can be seen that there are 14 Dunjeons in Man’gi Yoram , of which three Dunjeons were saved in the name of providing fuel. However, in the case of Hullyeon-Dogam, Sijang and dunjeon were identified, respectively, and according to the review, Sijang was first paid to Hullyeon-Dogam, where Hullyeon-Dogam was required to receive the in-kind. However, trees became scarce, and after it was reclaimed as slash-and-burn field, taxes were collected to prepare tomog. At this time, what was reclaimed as a slash-and-burn field in the place where it was saved as Sijang was specified as dunjeon in historical records compiled in the 19th century, including "Mangiyoram." In other words, in the case of the Yanggeun, Chuncheon, and Hongcheon regions of Hullyeon-Dogam, Sijang and Dunjeon did not exist, respectively, but it can be seen that the Dunjeonization of Sijang appeared over time.
참고문헌 (Reference)
1 "훈국총요"
2 "훈국사례촬요"
3 "훈국등록"
4 송기중, "총론 : 조선후기 중앙군문의 재정운영" 한국역사연구회 (102) : 25-32, 2016
5 박범, "조선후기 糧餉廳의 屯田 수취방식 변화와 雜費 운영" 대동문화연구원 (92) : 129-162, 2015
6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2003
7 여민주, "조선후기 서울의 땔감 유통" 서울역사편찬원 (106) : 61-102, 2020
8 김선경, "조선후기 산림천택 사점에 관한 연구" 慶熙大學校 大學院 1999
9 송양섭, "조선후기 둔전 연구" 경인문화사 2006
10 유현재, "조선후기 금위영의 재정운영과 그 성격" 한국역사연구회 (102) : 115-150, 2016
1 "훈국총요"
2 "훈국사례촬요"
3 "훈국등록"
4 송기중, "총론 : 조선후기 중앙군문의 재정운영" 한국역사연구회 (102) : 25-32, 2016
5 박범, "조선후기 糧餉廳의 屯田 수취방식 변화와 雜費 운영" 대동문화연구원 (92) : 129-162, 2015
6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2003
7 여민주, "조선후기 서울의 땔감 유통" 서울역사편찬원 (106) : 61-102, 2020
8 김선경, "조선후기 산림천택 사점에 관한 연구" 慶熙大學校 大學院 1999
9 송양섭, "조선후기 둔전 연구" 경인문화사 2006
10 유현재, "조선후기 금위영의 재정운영과 그 성격" 한국역사연구회 (102) : 115-150, 2016
11 유승주, "조선후기 군수광공업사 연구 : 조총‧화약‧연환 제조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2022
12 유현재, "조선후기 鑄錢정책과 財政활용"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4
13 "조선왕조실록"
14 최학삼, "조선시대 훈련도감과 기타 중앙군영 및 장용영의 재정조달에 관한 연구" 한국조세연구포럼 16 (16): 33-66, 2016
15 여민주, "조선시대 중앙관사의 연료 조달 방법과 변화 양상" 부산경남사학회 (122) : 169-202, 2022
16 박범, "장용영 내영의 향색제조 역할과 재정확보 과정" 한국역사연구회 (102) : 151-188, 2016
17 "일성록"
18 "어영청등록"
19 "신증동국여지승람"
20 "승정원일기"
21 "선혜청정례"
22 "비변사등록"
23 "만기요람"
24 송기중, "균역법 실시와 어영청 재정 운영의 변화" 한국역사연구회 (102) : 81-114, 2016
25 최주희, "균역법 시행 전후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재원확보 양상" 한국역사연구회 (102) : 33-80, 2016
26 "경국대전"
27 송기중, "17세기~18세기 전반 어영청 재정의 운영과 변화"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101) : 333-364, 2016
28 송양섭, "17세기 군영문 둔전의 확대와 경영형태의 변화" 36 : 2000
29 최주희, "17~18세기 왕실・정부의 연료 소비 증대와 땔감 조달 방식의 변화" 한국역사연구회 (94) : 235-283, 2014
신라 官服의 원형을 찾아서 (정덕기, 신라 상대 관복제도사, 역사산책, 2023)
근세 세계화(archaic globalisation)의 맥락에서 본 조선시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