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懶翁惠勤과 松廣寺 = Naong Hyekeun and Temple Songkwang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745591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나옹혜근은 국내에서 조계선을 수학하여 깨침을 얻고 중국으로 들어가 西天 108祖 指空(1289~1363)과 임제종 平山處林(1279~13 61)의 법을 이어 귀국한다. 혜근이 국내에서 수행한 조계선은 통일신라말부터 고려초까지 형성된 구산선문의 흐름에 고려초 법안종 영명연수의 사상이 들어오고, 지눌에 의해 선정과 지혜를 함께 수행하는 국내 선풍이라 할 수 있다. 공민왕은 20년(1371)에 혜근을 왕사로 책봉하고 동방제일도량이라며 송광사에 머물도록 했다. 혜근이 송광사에 주석한 기간은 3년이지만 주지한 다음해 회암사에 머물고 瑞雲,吉祥 등의 산을 돌아다니다 돌아오고 해서 실제 송광사에 주석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광사와 혜근의 인연은 매우 중요하다. 혜근의 뒤를 이어 제자인 무학자초 · 환암혼수 · 고봉법장 등이 송광사에 주지했으며, 지눌을 비롯한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마지막 국사가 혜근의 제자인 高峯국사이다. 송광사 주지계보에 나타난 주지들을 혜근계(사굴산문계)와 보우계(가지산문계)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학자도 있으나, 송광사 주지들은 모두 사굴산문 출신들이라 할 수 있다. 修禪社 開祖인 普照국사 知訥(1158~1210)과 혜근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山門출신이므로, 혜근의 제자들은 수선사 선사들과의 교류하고 있다. 지눌은 중국에 들어가 임제선을 직접 배워온 것은 아니나 국내에서 독자 수행하여 임제 간화선의 참뜻을 깨달아 조계선의 전통을 세웠다. 지눌의 제자들은 조계선 전통을 계승하면서 중국 임제종 선사를 초청하여 교류하고, 蒙山德異(1231~1308)의 사상을 받아들여 간화선 전통을 확립했다. 혜근은 지눌의 선사상을 계승하여 조선중기 청허휴정에 전하고 있다. 허균은 「石藏碑」에서 지눌과 혜근이 5조 홍인의 종지를 얻었으며 지눌과 혜근의 도맥이 사명유정에까지 전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청허의 上代제자들은 이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중기 청허의 下代제자들이 임제선 중심의 법맥을 내세우면서 혜근의 제자인 혼수를 보우의 제자로 주장하면서, 태고를 해동초조로 삼았다. 혼수를 혜근의 제자가 아닌 보우의 제자로 바꾸면서까지 임제선 법맥을 주장하는 선사들의 주장은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허구로 밝혀졌다.
    번역하기

    나옹혜근은 국내에서 조계선을 수학하여 깨침을 얻고 중국으로 들어가 西天 108祖 指空(1289~1363)과 임제종 平山處林(1279~13 61)의 법을 이어 귀국한다. 혜근이 국내에서 수행한 조계선은 통일신...

    나옹혜근은 국내에서 조계선을 수학하여 깨침을 얻고 중국으로 들어가 西天 108祖 指空(1289~1363)과 임제종 平山處林(1279~13 61)의 법을 이어 귀국한다. 혜근이 국내에서 수행한 조계선은 통일신라말부터 고려초까지 형성된 구산선문의 흐름에 고려초 법안종 영명연수의 사상이 들어오고, 지눌에 의해 선정과 지혜를 함께 수행하는 국내 선풍이라 할 수 있다. 공민왕은 20년(1371)에 혜근을 왕사로 책봉하고 동방제일도량이라며 송광사에 머물도록 했다. 혜근이 송광사에 주석한 기간은 3년이지만 주지한 다음해 회암사에 머물고 瑞雲,吉祥 등의 산을 돌아다니다 돌아오고 해서 실제 송광사에 주석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광사와 혜근의 인연은 매우 중요하다. 혜근의 뒤를 이어 제자인 무학자초 · 환암혼수 · 고봉법장 등이 송광사에 주지했으며, 지눌을 비롯한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마지막 국사가 혜근의 제자인 高峯국사이다. 송광사 주지계보에 나타난 주지들을 혜근계(사굴산문계)와 보우계(가지산문계)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학자도 있으나, 송광사 주지들은 모두 사굴산문 출신들이라 할 수 있다. 修禪社 開祖인 普照국사 知訥(1158~1210)과 혜근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山門출신이므로, 혜근의 제자들은 수선사 선사들과의 교류하고 있다. 지눌은 중국에 들어가 임제선을 직접 배워온 것은 아니나 국내에서 독자 수행하여 임제 간화선의 참뜻을 깨달아 조계선의 전통을 세웠다. 지눌의 제자들은 조계선 전통을 계승하면서 중국 임제종 선사를 초청하여 교류하고, 蒙山德異(1231~1308)의 사상을 받아들여 간화선 전통을 확립했다. 혜근은 지눌의 선사상을 계승하여 조선중기 청허휴정에 전하고 있다. 허균은 「石藏碑」에서 지눌과 혜근이 5조 홍인의 종지를 얻었으며 지눌과 혜근의 도맥이 사명유정에까지 전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청허의 上代제자들은 이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중기 청허의 下代제자들이 임제선 중심의 법맥을 내세우면서 혜근의 제자인 혼수를 보우의 제자로 주장하면서, 태고를 해동초조로 삼았다. 혼수를 혜근의 제자가 아닌 보우의 제자로 바꾸면서까지 임제선 법맥을 주장하는 선사들의 주장은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허구로 밝혀졌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Naong Hyekeun found enlightenment through studying domestic Jokye-zen and went to China. He returned to his country after succeeding the law of Jigong and Cheorim. Jokye-zen, Hyekeun performed, was domestic trend that carried out zen idea and wisdom at the same time and was systemized by Jinul after Nine Mountain Monasteries, which was formed from late unified Silla until early Goryeo, and philosophy of Beobanjong Yeongmyeong Yeonsu in early Goryeo. King Gongmin appointed Hyekeun as a king's instructor in 1371 and made him stay in Temple Songkwang. Although Hyekeun's term in Temple Songkwang was 3 years, he rarely stayed in Temple Songkwang because he went to Temple Hoeam in the following year and wandered Mountains like Mt. Seoun and Mt. Kilsang. Nevertheless, the connection between Temple Songkwang and Hyekeun is really important. Hyekeun's disciples like Moohak Jacho, Hwanam Honsoo, Gobong Beobjang took the position of chief monk at Temple Songkwang and the last national priest of 16 Temple Songkwang's national priests including Jinul was Gobong Beobjang who was also Hyekeun's disciple. There were scholars who tried to understand chief monks in Temple Songkwang by dividing them into two categories: Hyekeun faction(Mt. Sagul Monastery), Bowoo faction(Mt. Gaji Monastery). In fact, they are all Mt. Sagul Monastery. In late Goryeo, each Monasteries integrated with Suseonsa at the center. Jinul who opened Suseonsa, Hyekeun and his disciples were all from Mt. Sagul Monastery and Hyekeun's disciples interacted with monks of Suseonsa. Although Jinul did not go to China to learn Imje-zen directly, he set the tradition of Jokye-zen after realizing the true meaning of Imje Ganhwa-zen by practicing asceticism on his own. Jinul's disciples succeeded Jokye-zen tradition and interacted with monks of Imjejong of China and set the tradition of Ganhwa-zen by accepting the idea of Monk Mongsan Deokyi. In the pedigree of Temple Songkwang, Mt. Sagul Monastery faction took the position of chief monks with Hyekeun and his students at the center. Hyekeun succeeded the zen idea of Jinul and passed down to Cheongheo Hyujeong in middle time of Joseon dynasty. Heogun stated in the Samyung's tombstone that Jinul and Hyekeun earned the will of Hongin and their lineage continued to Samyung Yujeong and early disciples of Chungheo at the time admitted this. Yet, late disciples of Chungheo in the middle Joseon regarded Bowoo as the first Zen master by putting up Imje-zen centered lineage and insisting Honsoo, Hyekeun's student, to be student of Taego Bowoo. Opinion of monks who insisted on Imje-zen lineage by converting Honsoo into Bowoo's disciple not Hyekeun's disciple turned out to be false by study of scholars of today.
    번역하기

    Naong Hyekeun found enlightenment through studying domestic Jokye-zen and went to China. He returned to his country after succeeding the law of Jigong and Cheorim. Jokye-zen, Hyekeun performed, was domestic trend that carried out zen idea and wisdom a...

    Naong Hyekeun found enlightenment through studying domestic Jokye-zen and went to China. He returned to his country after succeeding the law of Jigong and Cheorim. Jokye-zen, Hyekeun performed, was domestic trend that carried out zen idea and wisdom at the same time and was systemized by Jinul after Nine Mountain Monasteries, which was formed from late unified Silla until early Goryeo, and philosophy of Beobanjong Yeongmyeong Yeonsu in early Goryeo. King Gongmin appointed Hyekeun as a king's instructor in 1371 and made him stay in Temple Songkwang. Although Hyekeun's term in Temple Songkwang was 3 years, he rarely stayed in Temple Songkwang because he went to Temple Hoeam in the following year and wandered Mountains like Mt. Seoun and Mt. Kilsang. Nevertheless, the connection between Temple Songkwang and Hyekeun is really important. Hyekeun's disciples like Moohak Jacho, Hwanam Honsoo, Gobong Beobjang took the position of chief monk at Temple Songkwang and the last national priest of 16 Temple Songkwang's national priests including Jinul was Gobong Beobjang who was also Hyekeun's disciple. There were scholars who tried to understand chief monks in Temple Songkwang by dividing them into two categories: Hyekeun faction(Mt. Sagul Monastery), Bowoo faction(Mt. Gaji Monastery). In fact, they are all Mt. Sagul Monastery. In late Goryeo, each Monasteries integrated with Suseonsa at the center. Jinul who opened Suseonsa, Hyekeun and his disciples were all from Mt. Sagul Monastery and Hyekeun's disciples interacted with monks of Suseonsa. Although Jinul did not go to China to learn Imje-zen directly, he set the tradition of Jokye-zen after realizing the true meaning of Imje Ganhwa-zen by practicing asceticism on his own. Jinul's disciples succeeded Jokye-zen tradition and interacted with monks of Imjejong of China and set the tradition of Ganhwa-zen by accepting the idea of Monk Mongsan Deokyi. In the pedigree of Temple Songkwang, Mt. Sagul Monastery faction took the position of chief monks with Hyekeun and his students at the center. Hyekeun succeeded the zen idea of Jinul and passed down to Cheongheo Hyujeong in middle time of Joseon dynasty. Heogun stated in the Samyung's tombstone that Jinul and Hyekeun earned the will of Hongin and their lineage continued to Samyung Yujeong and early disciples of Chungheo at the time admitted this. Yet, late disciples of Chungheo in the middle Joseon regarded Bowoo as the first Zen master by putting up Imje-zen centered lineage and insisting Honsoo, Hyekeun's student, to be student of Taego Bowoo. Opinion of monks who insisted on Imje-zen lineage by converting Honsoo into Bowoo's disciple not Hyekeun's disciple turned out to be false by study of scholars of today.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들어가는 말
    • 2. 고려후기 수선사계와 나옹혜근
    • 3. 혜근과 혜근문도의 송광사 주지
    • 4. 지눌의 계승자 혜근
    • 국문요약
    • 1. 들어가는 말
    • 2. 고려후기 수선사계와 나옹혜근
    • 3. 혜근과 혜근문도의 송광사 주지
    • 4. 지눌의 계승자 혜근
    • 5. 송광사에 남은 혜근의 흔적
    • 5. 맺는 말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허흥식, "懶翁의 思想과 繼承者(上)" 일지사 58 : 1990

    2 李哲憲, "懶翁 惠勤의 硏究" 동국대 1996

    3 황인규, "조선 전기 불교계 고승과 목우자 선풍-조계종 법통상의 고승을 중심으로-" 보조사상연구원 21 : 41-96, 2004

    4 조명제외, "조계산송광사사고 인물편" 송광사 2001

    5 박상국, "육조단경의 세계" 민족사 1989

    6 김방룡, "여말 三師의 간화선 사상과 그 성격" 보조사상연구원 23 : 179-225, 2005

    7 한국불교연구원, "송광사" 일지사 1982

    8 최연식, "몽산화상 보설의 내용과 고려후기불교계와의 관계" 보조사상연구원 19 : 5-206, 2003

    9 "동문선"

    10 채상식, "고려후기불교사연구" 일조각 1991

    1 허흥식, "懶翁의 思想과 繼承者(上)" 일지사 58 : 1990

    2 李哲憲, "懶翁 惠勤의 硏究" 동국대 1996

    3 황인규, "조선 전기 불교계 고승과 목우자 선풍-조계종 법통상의 고승을 중심으로-" 보조사상연구원 21 : 41-96, 2004

    4 조명제외, "조계산송광사사고 인물편" 송광사 2001

    5 박상국, "육조단경의 세계" 민족사 1989

    6 김방룡, "여말 三師의 간화선 사상과 그 성격" 보조사상연구원 23 : 179-225, 2005

    7 한국불교연구원, "송광사" 일지사 1982

    8 최연식, "몽산화상 보설의 내용과 고려후기불교계와의 관계" 보조사상연구원 19 : 5-206, 2003

    9 "동문선"

    10 채상식, "고려후기불교사연구" 일조각 1991

    11 황인규, "고려후기․조선초 불교사 연구" 혜안 2003

    12 조명제, "고려말 元代 간화선 수용과 그 사상적 영향" 보조사상연구원 23 : 137-178, 2005

    13 許興植, "高麗에 남긴 鐵山 瓊의 行跡" 일지사 39 : 1985

    14 許興植, "高麗佛敎史硏究" 일조각 1986

    15 "韓國金石全文"

    16 "韓國文集叢刊"

    17 김영태, "韓國佛敎史正論"

    18 "韓國佛敎全書"

    19 "韓國佛敎儀禮資料叢書"

    20 高翊晋, "碧松智嚴의 新資料와 法統問題"

    21 "松廣寺誌" 송광사 2001

    22 "松廣寺史庫 中" 송광사

    23 "朝鮮金石總覽"

    24 金煐泰, "朝鮮禪家의 法統考" 東國大學校 佛敎文化硏究院 22 : 1985

    25 金煐泰, "朝鮮朝 佛敎와 牧牛子思想" 보조사상연구원 3 : 1989

    26 "曹溪山松廣寺史庫 上" 송광사

    27 鏡日, "曹溪宗의 成立史的 側面에서 본 普照" 보조사상연구원 1 : 1987

    28 李在烈, "曹溪宗法統考" 보련각 1 : 1973

    29 關口眞大, "大韓佛敎 曹溪宗과 金剛般若經" 東國大學校 佛敎文化硏究院 11 : 1974

    30 李在烈, "五敎兩宗과 曹溪宗統에 관한 考察(4)" 불교사상사 4 : 1973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3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KCI등재
    2019-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BOJOSASANG, Journal of Bojo Thought -> 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2 0.62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7 0.53 1.608 0.46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