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일제강점기 안창남의 항공독립운동 = An, Chang-nam`s Avi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한글로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제강점기 안창남(1901~1930)은 비행사로서 식민지 조선 민중의 영웅이 되어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 안창남은 억압된 식민지 현실을 비상하고 싶은 조선인들의 표상이었다. 암울하던 식민지기에 그는 조선 민족에게 분명 자부심과 용기 등 희망적 영향력을 주었다.
    일본정부, 조선총독부, 조선군사령부 등은 식민 통치 미화의 차원에서 내지에서 선진적으로 비행 기술을 습득한 식민지 조선인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을 적극 지원했다. 항공 정책 실현과 군사 기술 향상에 대해 홍보하고, 1920년대부터 시작한 과학보급화운동의 일환으로 식민지에의 선전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창남은 선진 비행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조선인을 대표하여 동포들의 민족적 후원을 바라며 고국 방문 비행에 나섰다. 조선 민중에게 안창남은 현대 과학기술을 숙련하여 ‘애족적 열정’으로 조선 상공을 조선인 최초로 비행함으로써 ‘조선 민족의 문화생활에 신기원’을 이룬 존재로 의미 부여되었다.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은 식민지 조선인들이 주체가 된 과학대중화운동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고국 방문 비행은 순수했던 조선인 청년 안창남 스스로도 민족의식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관동대진재를 겪으며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안창남은 더 각성하게 되어, 이 무렵부터 조선인 비행사로서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했다.
    이륭양행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망명한 안창남은 현실적인 항공독립운동 방략으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과 접촉했다. 그리고 중국 군벌에 들어가 중국 혁명운동에 참여하여 본격적으로 독립군 비행사 양성을 모색했다. 여운형의 소개로 안창남은 남방 혁명 군벌 곽송령 군육군 중장으로 활동했고, 다시 여운형의 추천으로 북경의 풍옥상 군에 가담하여 국민혁명군의 反제국주의 이념에 동조하며 항일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다가 다시 여운형의 안내로 산서성의 염석산 군에 속하여 항공사령관으로서 국민혁명군과 함께 북벌 및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했다.
    산서성항공대에서 비행대 소장이자 조선인 항공독립운동가로서 안창남의 지위와 자금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창남은 민족주의 계열의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하여 주축이 되어 비행학교 등 무관학교 설립과 군사 양성을 계획했고, 독립군의 국내 진입을 위해 상당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공명단은 1920년대 말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했다.
    안창남처럼 일본에 유학했던 조선인 비행사들 수 명은 1920년대 중반부터 줄줄이 그의 뒤를 따라 중국군 및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했다. 안창남은 산서성 군 항공중장으로서 산서항공학교 비행 연습 도중 추락사로 안타깝게 순국했으나, 그의 항공독립운동 정신은 중국에서 다른 조선인 비행사들을 통해 이어졌다.
    번역하기

    일제강점기 안창남(1901~1930)은 비행사로서 식민지 조선 민중의 영웅이 되어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 안창남은 억압된 식민지 현실을 비상하고 싶은 조선인들의 표상이었다. 암울하던 식민지...

    일제강점기 안창남(1901~1930)은 비행사로서 식민지 조선 민중의 영웅이 되어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 안창남은 억압된 식민지 현실을 비상하고 싶은 조선인들의 표상이었다. 암울하던 식민지기에 그는 조선 민족에게 분명 자부심과 용기 등 희망적 영향력을 주었다.
    일본정부, 조선총독부, 조선군사령부 등은 식민 통치 미화의 차원에서 내지에서 선진적으로 비행 기술을 습득한 식민지 조선인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을 적극 지원했다. 항공 정책 실현과 군사 기술 향상에 대해 홍보하고, 1920년대부터 시작한 과학보급화운동의 일환으로 식민지에의 선전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창남은 선진 비행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조선인을 대표하여 동포들의 민족적 후원을 바라며 고국 방문 비행에 나섰다. 조선 민중에게 안창남은 현대 과학기술을 숙련하여 ‘애족적 열정’으로 조선 상공을 조선인 최초로 비행함으로써 ‘조선 민족의 문화생활에 신기원’을 이룬 존재로 의미 부여되었다.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은 식민지 조선인들이 주체가 된 과학대중화운동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고국 방문 비행은 순수했던 조선인 청년 안창남 스스로도 민족의식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관동대진재를 겪으며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안창남은 더 각성하게 되어, 이 무렵부터 조선인 비행사로서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했다.
    이륭양행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망명한 안창남은 현실적인 항공독립운동 방략으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과 접촉했다. 그리고 중국 군벌에 들어가 중국 혁명운동에 참여하여 본격적으로 독립군 비행사 양성을 모색했다. 여운형의 소개로 안창남은 남방 혁명 군벌 곽송령 군육군 중장으로 활동했고, 다시 여운형의 추천으로 북경의 풍옥상 군에 가담하여 국민혁명군의 反제국주의 이념에 동조하며 항일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다가 다시 여운형의 안내로 산서성의 염석산 군에 속하여 항공사령관으로서 국민혁명군과 함께 북벌 및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했다.
    산서성항공대에서 비행대 소장이자 조선인 항공독립운동가로서 안창남의 지위와 자금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창남은 민족주의 계열의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하여 주축이 되어 비행학교 등 무관학교 설립과 군사 양성을 계획했고, 독립군의 국내 진입을 위해 상당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공명단은 1920년대 말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했다.
    안창남처럼 일본에 유학했던 조선인 비행사들 수 명은 1920년대 중반부터 줄줄이 그의 뒤를 따라 중국군 및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했다. 안창남은 산서성 군 항공중장으로서 산서항공학교 비행 연습 도중 추락사로 안타깝게 순국했으나, 그의 항공독립운동 정신은 중국에서 다른 조선인 비행사들을 통해 이어졌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성장 배경과 일본 비행사 활동
    • 3. 고국 방문 비행과 민족의식 각성
    • 4. 중국에서의 항공독립운동
    • 5. 맺음말
    • 1. 머리말
    • 2. 성장 배경과 일본 비행사 활동
    • 3. 고국 방문 비행과 민족의식 각성
    • 4. 중국에서의 항공독립운동
    • 5. 맺음말
    • 참고문헌
    • 국문요약
    • 영문요약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