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udies on Wiman(衛滿) and Wiman-Choson(衛滿朝鮮) were accumulated in the departments of Ancient Korean History. So modern Korean Historians were no intervened places on the narratives of Wiman and Wiman-Choson. However we focus on the in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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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현 (광주교육대학교)
2017
Korean
기자조선 ; 단군조선 ; 민족사학자 ; 위만 ; 위만조선 ; 한사군 ; Hansagun(漢四郡) ; Kija-Choson ; Korean Nationalist Historians ; Tangun-Choson ; Wiman(衛滿) ; Wiman-Choson(衛滿朝鮮)
KCI등재후보
학술저널
133-15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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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udies on Wiman(衛滿) and Wiman-Choson(衛滿朝鮮) were accumulated in the departments of Ancient Korean History. So modern Korean Historians were no intervened places on the narratives of Wiman and Wiman-Choson. However we focus on the inven...
The studies on Wiman(衛滿) and Wiman-Choson(衛滿朝鮮) were accumulated in the departments of Ancient Korean History. So modern Korean Historians were no intervened places on the narratives of Wiman and Wiman-Choson. However we focus on the inventing of Korean national history during from Late Choson dynasty to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Korean Nationalist Historians regard Wiman as a Chinese surrendered person or a naturalized person to Kija-Choson.
For the purpose of colonial rule, the Japanese official scholars emphasized that the Wiman-Choson were the ancient Chinese Colony. They also removed the components of Korean identities. In contrast, Korean Nationalist Historians stressed on the momentum of Korean's solidarity even though the agreement of Wiman's Chinese origin.
After this, we will effort to advance the search of many modern narratives on ancient Korean history. First, we compare the discourse on Wiman-Choson between the Mailsinbo(每日申報) and the Koreans published newspapers. Second, we scrutinize the Korean nationalist historian's efforts of oblivion on Kija-Choson and Wiman-Choson which came from China. Lastly, we try to connect the understanding Wiman-Choson at colonial period and re-interpretation after Korean liberation at 1945.
국문 초록 (Abstract)
고대사의 영역에서 고조선 연구의 일환으로 위만과 위만조선에 관한 많은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그럼에도 근대 민족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민족공동체를 그 외부의 집단과 구별하는 것을 ...
고대사의 영역에서 고조선 연구의 일환으로 위만과 위만조선에 관한 많은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그럼에도 근대 민족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민족공동체를 그 외부의 집단과 구별하는 것을 전제로, 과거의 사건과 사실을 민족적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위만을 ‘항인(降人)’ 중국인, 귀화인 등으로 설명하는 것은 근대적 해석이다. 따라서 근현대 민족사의 구성에서 위만과 위만조선에 관한 이해와 해석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말 일제강점기를 통해 일본인 관학자들은 과거 위만조선을 중국의 식민지로 규정해서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고자 했다. 이들은위만과 위만조선에 관한 연구 속에서 ‘조선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다. 반면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위만조선과 한사군에 관해서는 그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중국이란 타자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민족적 단합의 계기인 점을 강조했다.
향후 위만(조선)에 관한 근대적 해석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조선인 언론매체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 차이가 있는지 다음으로 위만조선의 문화와 이후 한사군 특히 낙랑의 문화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그리고 위만(조선)의 ‘부정적인’ 역사가 해방 후에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연결시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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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박찬흥, "‘만선사’에서의 고대 만주 역사에 대한 인식" 한국고대사학회 (76) : 127-16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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