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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해자 신 출토 목간과 신라 外位 = New wooden tablets excavated at the moat of the Wolseong Palace and Silla`s Woewui(外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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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95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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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excavation of the moat of the Wolseong Palace, which took place from 2015 to 2017, newly unearthed 7 wooden tablets. Reviewing the contents of one piece of wooden tablet, this paper revealed the operation of Silla’s Woewui(外位) system.
    First, the words ‘波珎日’ were newly read on the tablet. This is thought to be the 10th Woewui 彼日(波旦). As a result, at least three Woewui 彼日, 一伐, and 干支 are identified on this wooden tablet. And because there are ‘受’ letter before or after these Woewui, this wooden tablet is presumed to have written about the record of one person receiving Woewui.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two reasons for the promotion of Woewui. One is a promotion by special merit, which is expressed as ‘功’ or ‘煞功’ on the wooden tablet. These merits are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battle against Baekje.
    Meanwhile, it is recorded that the Woewui was not promoted(‘留’) in the year of ‘戊戌’. And he was promoted to ‘干支’ even though there was no special achievement in the year of 丙午. So, it is believed that there was a regular promotion system for Woewui. These regular promotion systems also existed in ancient China and Japan.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the management of Woewui is thought to be the 位和府, so it is presumed that this wooden tablet was used by the 位和府. And the person who wrote this wooden tablet would have been local officials of 郡·村.
    번역하기

    The excavation of the moat of the Wolseong Palace, which took place from 2015 to 2017, newly unearthed 7 wooden tablets. Reviewing the contents of one piece of wooden tablet, this paper revealed the operation of Silla’s Woewui(外位) system. First...

    The excavation of the moat of the Wolseong Palace, which took place from 2015 to 2017, newly unearthed 7 wooden tablets. Reviewing the contents of one piece of wooden tablet, this paper revealed the operation of Silla’s Woewui(外位) system.
    First, the words ‘波珎日’ were newly read on the tablet. This is thought to be the 10th Woewui 彼日(波旦). As a result, at least three Woewui 彼日, 一伐, and 干支 are identified on this wooden tablet. And because there are ‘受’ letter before or after these Woewui, this wooden tablet is presumed to have written about the record of one person receiving Woewui.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two reasons for the promotion of Woewui. One is a promotion by special merit, which is expressed as ‘功’ or ‘煞功’ on the wooden tablet. These merits are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battle against Baekje.
    Meanwhile, it is recorded that the Woewui was not promoted(‘留’) in the year of ‘戊戌’. And he was promoted to ‘干支’ even though there was no special achievement in the year of 丙午. So, it is believed that there was a regular promotion system for Woewui. These regular promotion systems also existed in ancient China and Japan.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the management of Woewui is thought to be the 位和府, so it is presumed that this wooden tablet was used by the 位和府. And the person who wrote this wooden tablet would have been local officials of 郡·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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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월성해자 발굴로 묵서가 있는 목간 7점이 새로 출토되었다. 이 논문은 그 목간 가운데 1점의 내용을 검토해서 신라 외위제 운용의 일단을 밝힌 것이다.
    먼저 목간에서 ‘波珎日’을 새로 판독했다. 이는 외위 제10등 彼日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이로 인해 이 목간에는 적어도 彼日, 一伐, 干支의 3개 외위가 확인된다. 그리고 이들 외위 앞뒤에는 반드시 ‘受’자가 나오니 한 사람이 외위를 받은 기록으로 생각된다. 즉 이 목간은 외위 승진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외위 승진의 이유에는 2가지가 있었다고 추정했다. 하나는 목간에 ‘功’ ‘煞功’으로 표현되는 특별한 공적으로 의한 승진이다. 목간의 연대와 같은 시기에 백제와의 전투 기사가 『삼국사기』에 매년 보이는 것과 목간에 보이는 䔉山이라는 지명이 백제와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에 백제와의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戊戌年에는 외위가 승진하지 않았다(‘留’)고 하는데 丙午年에는 특별한 공적이 없는데도 干支에 승진한 것으로 봐서 정기적으로 외위가 승진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정기적인 관위 승진 제도는 고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다.
    관위에 대해서는 중앙관청인 位和府가 담당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 목간은 위화부가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목간을 쓴 사람은 지방의 군이나 촌에 있었던 文尺, 書尺이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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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월성해자 발굴로 묵서가 있는 목간 7점이 새로 출토되었다. 이 논문은 그 목간 가운데 1점의 내용을 검토해서 신라 외위제 운용의 일단을 밝힌 것이다. 먼저 목...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월성해자 발굴로 묵서가 있는 목간 7점이 새로 출토되었다. 이 논문은 그 목간 가운데 1점의 내용을 검토해서 신라 외위제 운용의 일단을 밝힌 것이다.
    먼저 목간에서 ‘波珎日’을 새로 판독했다. 이는 외위 제10등 彼日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이로 인해 이 목간에는 적어도 彼日, 一伐, 干支의 3개 외위가 확인된다. 그리고 이들 외위 앞뒤에는 반드시 ‘受’자가 나오니 한 사람이 외위를 받은 기록으로 생각된다. 즉 이 목간은 외위 승진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외위 승진의 이유에는 2가지가 있었다고 추정했다. 하나는 목간에 ‘功’ ‘煞功’으로 표현되는 특별한 공적으로 의한 승진이다. 목간의 연대와 같은 시기에 백제와의 전투 기사가 『삼국사기』에 매년 보이는 것과 목간에 보이는 䔉山이라는 지명이 백제와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에 백제와의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戊戌年에는 외위가 승진하지 않았다(‘留’)고 하는데 丙午年에는 특별한 공적이 없는데도 干支에 승진한 것으로 봐서 정기적으로 외위가 승진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정기적인 관위 승진 제도는 고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다.
    관위에 대해서는 중앙관청인 位和府가 담당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 목간은 위화부가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목간을 쓴 사람은 지방의 군이나 촌에 있었던 文尺, 書尺이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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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한성에서 만나는 신라 월성" 2019

    2 노태돈, "포항중성리신라비와 外位" 한국고대사학회 (59) : 37-55, 2010

    3 윤선태, "월성 해자 목간의 연구 성과와 신 출토 목간의 판독" 한국목간학회 (20) : 79-104, 2018

    4 정구복, "역주 삼국사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5 이인철, "신라정치제도사연구" 일지사 1993

    6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7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 혜안 2006

    8 정덕기, "신라 중고기 병부의 人事權 掌握과 그 영향" 한국고대사탐구학회 (32) : 179-222, 2019

    9 전경효, "신 출토 경주 월성 해자 묵서 목간 소개" 한국목간학회 (20) : 61-78, 2018

    10 이병도,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한성에서 만나는 신라 월성" 2019

    2 노태돈, "포항중성리신라비와 外位" 한국고대사학회 (59) : 37-55, 2010

    3 윤선태, "월성 해자 목간의 연구 성과와 신 출토 목간의 판독" 한국목간학회 (20) : 79-104, 2018

    4 정구복, "역주 삼국사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5 이인철, "신라정치제도사연구" 일지사 1993

    6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7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 혜안 2006

    8 정덕기, "신라 중고기 병부의 人事權 掌握과 그 영향" 한국고대사탐구학회 (32) : 179-222, 2019

    9 전경효, "신 출토 경주 월성 해자 묵서 목간 소개" 한국목간학회 (20) : 61-78, 2018

    10 이병도,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11 이용현, "문자와 고대 한국2 교류와 생활" 주류성출판사 2019

    12 노중국,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II"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13 橋本繁, "蔚州川前里書石原銘·追銘にみる新羅王権と王京六部" 40 : 2018

    14 大庭脩, "秦漢法制史の研究" 創文社 1982

    15 守屋美都雄, "漢代爵制の源流として見たる商鞅爵制の研究" 27 : 1957

    16 西川利文, "漢代における長吏の任用·補論" 26 : 2000

    17 武田幸男, "江上波夫教授古稀記念論集 歴史篇" 山川出版社 1977

    18 윤선태, "正倉院 所藏 「佐波理加盤文書」의 新考察" 74 : 1997

    19 武田幸男, "朝鮮社会の史的展開と東アジア" 山川出版社 1997

    20 武田幸男, "朝鮮歴史論集 上巻" 龍渓書舎 1979

    21 주보돈, "月城과 垓字 출토 木簡의 의미" 한국목간학회 (20) : 15-36, 2018

    22 井上光貞, "日本思想体系3 律令" 岩波書店 1976

    23 윤선태, "新羅의 初期 外位體系와 ‘及伐尺’" 동국역사문화연구소 (61) : 157-186, 2016

    24 武田幸男, "新羅の骨品体制社会" 299 : 1965

    25 권덕영, "新羅 外位制의 成立과 그 機能" (50·51) : 1985

    26 橋本繁, "戊戌塢作碑釈文の再検討" 194 : 2015

    27 胡平生, "居延漢簡中的“功”與“勞”" 1995

    28 大庭脩, "唐告身と日本古代の位階制" 皇學館出版部 2004

    29 木村誠, "古代朝鮮の国家と社会" 吉川弘文館 2004

    30 寺崎保広, "古代日本の都城と木簡" 吉川弘文館 2006

    31 野村忠夫, "古代官僚の世界" 塙書房 1969

    32 佐藤達郎, "功次による昇進制度の形成" 58 (58): 2000

    33 西嶋定生, "中國古代帝國の形成と構造" 東京大學出版會 1961

    34 橋本繁, "中国学術の東アジア伝播と古代日本" 勉誠出版 2020

    35 하시모토 시게루, "中古期 新羅 築城碑의 연구" 동국역사문화연구소 (55) : 129-181, 2013

    36 三池賢一, "「三国史記」職官志外位条の解釈―外位の復元" 5 : 1970

    37 주보돈, "6세기초 新羅王權의 位相과 官等制의 成立" (13·14)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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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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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 0 0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 0 0 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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