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cavation of the moat of the Wolseong Palace, which took place from 2015 to 2017, newly unearthed 7 wooden tablets. Reviewing the contents of one piece of wooden tablet, this paper revealed the operation of Silla’s Woewui(外位) system.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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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HIMOTO Shiger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2020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227-250(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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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cavation of the moat of the Wolseong Palace, which took place from 2015 to 2017, newly unearthed 7 wooden tablets. Reviewing the contents of one piece of wooden tablet, this paper revealed the operation of Silla’s Woewui(外位) system. First...
The excavation of the moat of the Wolseong Palace, which took place from 2015 to 2017, newly unearthed 7 wooden tablets. Reviewing the contents of one piece of wooden tablet, this paper revealed the operation of Silla’s Woewui(外位) system.
First, the words ‘波珎日’ were newly read on the tablet. This is thought to be the 10th Woewui 彼日(波旦). As a result, at least three Woewui 彼日, 一伐, and 干支 are identified on this wooden tablet. And because there are ‘受’ letter before or after these Woewui, this wooden tablet is presumed to have written about the record of one person receiving Woewui.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two reasons for the promotion of Woewui. One is a promotion by special merit, which is expressed as ‘功’ or ‘煞功’ on the wooden tablet. These merits are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battle against Baekje.
Meanwhile, it is recorded that the Woewui was not promoted(‘留’) in the year of ‘戊戌’. And he was promoted to ‘干支’ even though there was no special achievement in the year of 丙午. So, it is believed that there was a regular promotion system for Woewui. These regular promotion systems also existed in ancient China and Japan.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the management of Woewui is thought to be the 位和府, so it is presumed that this wooden tablet was used by the 位和府. And the person who wrote this wooden tablet would have been local officials of 郡·村.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월성해자 발굴로 묵서가 있는 목간 7점이 새로 출토되었다. 이 논문은 그 목간 가운데 1점의 내용을 검토해서 신라 외위제 운용의 일단을 밝힌 것이다. 먼저 목...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월성해자 발굴로 묵서가 있는 목간 7점이 새로 출토되었다. 이 논문은 그 목간 가운데 1점의 내용을 검토해서 신라 외위제 운용의 일단을 밝힌 것이다.
먼저 목간에서 ‘波珎日’을 새로 판독했다. 이는 외위 제10등 彼日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이로 인해 이 목간에는 적어도 彼日, 一伐, 干支의 3개 외위가 확인된다. 그리고 이들 외위 앞뒤에는 반드시 ‘受’자가 나오니 한 사람이 외위를 받은 기록으로 생각된다. 즉 이 목간은 외위 승진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외위 승진의 이유에는 2가지가 있었다고 추정했다. 하나는 목간에 ‘功’ ‘煞功’으로 표현되는 특별한 공적으로 의한 승진이다. 목간의 연대와 같은 시기에 백제와의 전투 기사가 『삼국사기』에 매년 보이는 것과 목간에 보이는 䔉山이라는 지명이 백제와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에 백제와의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戊戌年에는 외위가 승진하지 않았다(‘留’)고 하는데 丙午年에는 특별한 공적이 없는데도 干支에 승진한 것으로 봐서 정기적으로 외위가 승진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정기적인 관위 승진 제도는 고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다.
관위에 대해서는 중앙관청인 位和府가 담당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 목간은 위화부가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목간을 쓴 사람은 지방의 군이나 촌에 있었던 文尺, 書尺이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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