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8-9세기 신라와 일본의 외교와 대재부 교역의 성격 변화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G3744663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8-9세기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대재부 교역’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하고자 한다. 고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교역방식인 조공무역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대재부 교역의 존재는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통일 이래 신라 국내외 정세를 일별하고, 양국의 외교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교역방식인 대재부 교역이 출현하게 되는 배경과 국교 단절이래 교역의 성격 변화를 통해 시대적 특성을 검토해 보고, 대재부에서 출토된 고고자료를 통해 신라가 일본의 문명화에 기여하였음을 탐구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8세기 들어 신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인접한 국가와의 외교를 통해 동북아 국제사회에서 국가적 위상도 격상되었다. 702년 당과의 외교를 재개한 이래 신라는 조공외교를 중시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교린체제를 견지하였다. 따라서 신라는 일본의 요구하는 조공형식을 거부하는 고압적 외교 자세로 일관했다.
    특히 신라와 일본은 천평기(729-748) 이래 외교형식을 둘러싼 외교적 마찰을 야기했다. 735년 외교형식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경험하는 가운데 신라와 일본의 공적 교역은 의례공간인 평성경 대신 대재부로 교역의 장이 이행하고 있어 주목된다. 『속일본기』에 전하는 768년의 교역 사례는 대재부 교역이 실제하였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대재부와 객관인 홍려관 유적에서 8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신라산 도자류가 출토된 사례가 있어, 실제 국가 간의 공적 교역이 대재부를 창구로 시행되었음을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836년 신라 집사성이 일본에 보낸 첩에 보면 8세기 말 이래 일본은 신라가 대국으로서의 관용을 베푸는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라의 외교정책은 신라를 번국으로 인식하던 일본의 세계관과 외교정책과는 상호 위배된다. 일본과의 외교가 국가 간 교역과 관계가 깊은 것이라면, 779년 신라가 대일국교를 단절한 이래 대재부 교역은 국가 간 교역에서 신라인의 사적 교역으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신라의 대재부 교역이 넓은 의미의 공무역에서 국제교역으로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8세기 후반부터 교역이 목적이었다고 추정되는 신라선의 구주 내항은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824년 장보고가 일본에 건너 온 후와 828년 청해진 설치 이후 그 빈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831년에는 신라상인으로부터 고가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대재부의 관리 하에 교역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태정관의 명령이 내려지고
    번역하기

    본 연구는 8-9세기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대재부 교역’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하고자 한다. 고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교역방식인 조공무역과는 그...

    본 연구는 8-9세기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대재부 교역’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하고자 한다. 고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교역방식인 조공무역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대재부 교역의 존재는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통일 이래 신라 국내외 정세를 일별하고, 양국의 외교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교역방식인 대재부 교역이 출현하게 되는 배경과 국교 단절이래 교역의 성격 변화를 통해 시대적 특성을 검토해 보고, 대재부에서 출토된 고고자료를 통해 신라가 일본의 문명화에 기여하였음을 탐구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8세기 들어 신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인접한 국가와의 외교를 통해 동북아 국제사회에서 국가적 위상도 격상되었다. 702년 당과의 외교를 재개한 이래 신라는 조공외교를 중시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교린체제를 견지하였다. 따라서 신라는 일본의 요구하는 조공형식을 거부하는 고압적 외교 자세로 일관했다.
    특히 신라와 일본은 천평기(729-748) 이래 외교형식을 둘러싼 외교적 마찰을 야기했다. 735년 외교형식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경험하는 가운데 신라와 일본의 공적 교역은 의례공간인 평성경 대신 대재부로 교역의 장이 이행하고 있어 주목된다. 『속일본기』에 전하는 768년의 교역 사례는 대재부 교역이 실제하였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대재부와 객관인 홍려관 유적에서 8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신라산 도자류가 출토된 사례가 있어, 실제 국가 간의 공적 교역이 대재부를 창구로 시행되었음을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836년 신라 집사성이 일본에 보낸 첩에 보면 8세기 말 이래 일본은 신라가 대국으로서의 관용을 베푸는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라의 외교정책은 신라를 번국으로 인식하던 일본의 세계관과 외교정책과는 상호 위배된다. 일본과의 외교가 국가 간 교역과 관계가 깊은 것이라면, 779년 신라가 대일국교를 단절한 이래 대재부 교역은 국가 간 교역에서 신라인의 사적 교역으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신라의 대재부 교역이 넓은 의미의 공무역에서 국제교역으로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8세기 후반부터 교역이 목적이었다고 추정되는 신라선의 구주 내항은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824년 장보고가 일본에 건너 온 후와 828년 청해진 설치 이후 그 빈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831년에는 신라상인으로부터 고가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대재부의 관리 하에 교역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태정관의 명령이 내려지고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article explores into the reality of bilateral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Daizhau Japan through their trades in the 8-9th century. During the mid 8th century, in spite of the diplomatic dispute between Silla and Japah, Daizhau trade was established. The trade was supposed to be a system of trade which was under Silla’s control and managed by Daizhau government. And yet, the fact that Japan allowed this unique type of Daizhau trade implicates that it was a diplomatic compromise to cope with Silla’s arrogance. With this aspect, the study looks into the reality of bilateral relationship based on the nature and background how Daizhau trade evolved in the negotiation process between Silla and Japan in the 8th century. The study confirms that it was a transitional period for Silla and Japan’s trading in the mid 8th century, moving its stage from capital city to Daizahu located in the northern Kyushu area. And the Daizahu trade made under the supervision of Silla’s official delegation and Daizhau’s management was in the form of government enterprise. The trade between Silla and Daizahau has transformed and expanded to private trades in the 9th century.
    번역하기

    This article explores into the reality of bilateral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Daizhau Japan through their trades in the 8-9th century. During the mid 8th century, in spite of the diplomatic dispute between Silla and Japah, Daizhau trade was estab...

    This article explores into the reality of bilateral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Daizhau Japan through their trades in the 8-9th century. During the mid 8th century, in spite of the diplomatic dispute between Silla and Japah, Daizhau trade was established. The trade was supposed to be a system of trade which was under Silla’s control and managed by Daizhau government. And yet, the fact that Japan allowed this unique type of Daizhau trade implicates that it was a diplomatic compromise to cope with Silla’s arrogance. With this aspect, the study looks into the reality of bilateral relationship based on the nature and background how Daizhau trade evolved in the negotiation process between Silla and Japan in the 8th century. The study confirms that it was a transitional period for Silla and Japan’s trading in the mid 8th century, moving its stage from capital city to Daizahu located in the northern Kyushu area. And the Daizahu trade made under the supervision of Silla’s official delegation and Daizhau’s management was in the form of government enterprise. The trade between Silla and Daizahau has transformed and expanded to private trades in the 9th century.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