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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1공인가, 4년 1공인가 -고려-명 관계에서 歲貢 빈도와 『명태조실록』의 조작- = Triennial or Quadrennial Tribute- The Frequency of Tribute in Goryeo-Ming Relations and Historical Manipul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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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Modern historians as well as historians of the Ming Dynasty have understood that Joseon sent tribute to the Ming court every three years. This paper examines that Joseon's tribute was actually carried out every four years, not every three years, and analyzed that this coincidence was due to the slip of the tongue of Hongwu Emperor, and that the compilers of the Ming Veritable Records manipulated the records very cleverly to cover this up.
    In 1386, shortly after receiving more than 6,000 horses as the annul tribute from Goryeo, the emperor exempted Goryeo’s tribute and instructed them to send 50 good horses once every three years. However, he designated the next payment deadline after 4 years, not 3 years. This was clearly the emperor's mistake. However, no one questioned the emperor's order at that time and after that. As a result, Joseon maintained the practice of quadrennial tribute until the early 17th century when the Ming Dynasty collapsed.
    The emperor exempted Goryeo’s annual tribute because Goryeo appealed the difficulty of preparing the huge amount. However, the editor of the Ming Veritable Records manipulated the records to construct a narrative that the decision was not in accordance with the suggestion of Goryeo, but was a voluntary and benevolent measure of the emperor. The narrative has been cited in numerous later published historical books, and the results have a strong influence on current histori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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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dern historians as well as historians of the Ming Dynasty have understood that Joseon sent tribute to the Ming court every three years. This paper examines that Joseon's tribute was actually carried out every four years, not every three years, and a...

    Modern historians as well as historians of the Ming Dynasty have understood that Joseon sent tribute to the Ming court every three years. This paper examines that Joseon's tribute was actually carried out every four years, not every three years, and analyzed that this coincidence was due to the slip of the tongue of Hongwu Emperor, and that the compilers of the Ming Veritable Records manipulated the records very cleverly to cover this up.
    In 1386, shortly after receiving more than 6,000 horses as the annul tribute from Goryeo, the emperor exempted Goryeo’s tribute and instructed them to send 50 good horses once every three years. However, he designated the next payment deadline after 4 years, not 3 years. This was clearly the emperor's mistake. However, no one questioned the emperor's order at that time and after that. As a result, Joseon maintained the practice of quadrennial tribute until the early 17th century when the Ming Dynasty collapsed.
    The emperor exempted Goryeo’s annual tribute because Goryeo appealed the difficulty of preparing the huge amount. However, the editor of the Ming Veritable Records manipulated the records to construct a narrative that the decision was not in accordance with the suggestion of Goryeo, but was a voluntary and benevolent measure of the emperor. The narrative has been cited in numerous later published historical books, and the results have a strong influence on current histori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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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물론 명나라 당시의 역사학자들도 조선은 명나라에 3년에 한 번씩 조공을 보냈다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조선의 이른바 歲貢은 사실 3년마다가 아니라 4년마다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우연은 명 태조 홍무제의 말실수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은폐하기 위해 『명태조실록』 편찬자들은 매우 교묘하게 기록을 조작하였다. 1386년, 6년 동안 말 6,000여 필에 이르는 막대한 양의 공물을 고려로부터 받아낸 직후에 홍무제는 고려의 공물을 면제해주며, 앞으로는 3년에 한 번씩 좋은 말 50필을 보내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다음 번 납부 기한을 3년이 아닌 4년 후로 지정하였다. 이는 명백히 황제의 실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황제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결과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17세기 초까지 4년마다 한 번씩 말 50필을 바치는 관행을 유지하였다. 황제가 고려의 공납을 면제한 것은 고려가 막대한 물자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호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명태조실록』의 편찬자는 그 결정이 고려의 건의에 따른 것이 아닌, 황제의 자발적이고 자비로운 조치였다는 서사를 구성하고자 기록을 조작하였다. 그 기록은 이후 편찬된 수많은 역사서에 그대로 인용되었고, 그 결과는 현재의 역사학자들에게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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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물론 명나라 당시의 역사학자들도 조선은 명나라에 3년에 한 번씩 조공을 보냈다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조선의 이른바 歲貢은 사실 3년마다가 아니라 4년마다 이루어지...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물론 명나라 당시의 역사학자들도 조선은 명나라에 3년에 한 번씩 조공을 보냈다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조선의 이른바 歲貢은 사실 3년마다가 아니라 4년마다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우연은 명 태조 홍무제의 말실수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은폐하기 위해 『명태조실록』 편찬자들은 매우 교묘하게 기록을 조작하였다. 1386년, 6년 동안 말 6,000여 필에 이르는 막대한 양의 공물을 고려로부터 받아낸 직후에 홍무제는 고려의 공물을 면제해주며, 앞으로는 3년에 한 번씩 좋은 말 50필을 보내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다음 번 납부 기한을 3년이 아닌 4년 후로 지정하였다. 이는 명백히 황제의 실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황제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결과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17세기 초까지 4년마다 한 번씩 말 50필을 바치는 관행을 유지하였다. 황제가 고려의 공납을 면제한 것은 고려가 막대한 물자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호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명태조실록』의 편찬자는 그 결정이 고려의 건의에 따른 것이 아닌, 황제의 자발적이고 자비로운 조치였다는 서사를 구성하고자 기록을 조작하였다. 그 기록은 이후 편찬된 수많은 역사서에 그대로 인용되었고, 그 결과는 현재의 역사학자들에게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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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禮部志稿"

    2 南都泳, "麗末鮮初 馬政上으로 본 對明關係" 6 : 1960

    3 薛戈, "홍무 초기(1368-1374) 명・고려 외교 관계의 연구" 서울대학교 2021

    4 구범진 ; 정동훈, "초기 고려-명 관계에서 사행 빈도 문제 ― ‘3년 1행’과 『명태조실록』의 기록 조작 ―" 동양사학회 (157) : 191-227, 2021

    5 구도영, "조선 전기 對明 陸路使行의 형태와 실상" 진단학회 (117) : 59-97, 2013

    6 김덕수, "정몽주의 사행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41 (41): 117-152, 2018

    7 권선홍,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4

    8 정동훈, "명초 외교제도의 성립과 그 기원 - 고려-몽골 관계의 유산과 그 전유(專有) -" 한국역사연구회 (113) : 343-380, 2019

    9 정동훈, "말 100필인가, 1,000필인가 -고려-명 관계에서 세공 문제-" 한국중세사학회 (68) : 383-417, 2022

    10 "高麗史"

    1 "禮部志稿"

    2 南都泳, "麗末鮮初 馬政上으로 본 對明關係" 6 : 1960

    3 薛戈, "홍무 초기(1368-1374) 명・고려 외교 관계의 연구" 서울대학교 2021

    4 구범진 ; 정동훈, "초기 고려-명 관계에서 사행 빈도 문제 ― ‘3년 1행’과 『명태조실록』의 기록 조작 ―" 동양사학회 (157) : 191-227, 2021

    5 구도영, "조선 전기 對明 陸路使行의 형태와 실상" 진단학회 (117) : 59-97, 2013

    6 김덕수, "정몽주의 사행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41 (41): 117-152, 2018

    7 권선홍,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4

    8 정동훈, "명초 외교제도의 성립과 그 기원 - 고려-몽골 관계의 유산과 그 전유(專有) -" 한국역사연구회 (113) : 343-380, 2019

    9 정동훈, "말 100필인가, 1,000필인가 -고려-명 관계에서 세공 문제-" 한국중세사학회 (68) : 383-417, 2022

    10 "高麗史"

    11 김순자, "韓國 中世 韓中關係史" 혜안 2007

    12 全海宗, "韓中關係史" 一潮閣 1970

    13 정동훈, "洪武帝의 명령이 고려에 전달되는 경로― 聖旨의 문서화 과정을 중심으로 ―" 동양사학회 (139) : 219-255, 2017

    14 "欽定續文獻通考"

    15 李云泉, "朝貢制度史論-中國古代對外關係體制硏究" 新華出版社 2004

    16 鄭樑生, "明・日關係史の硏究" 雄山閣出版 1985

    17 정동훈, "明과 주변국의 外交關係 수립 절차의 재구성 ― 이른바 ‘明秩序’ 논의에 대한 비판을 겸하여 ―" 명청사학회 (51) : 23-53, 2019

    18 "明太祖御製文集" 臺灣學生書局 1965

    19 "明太祖實錄"

    20 "明史"

    21 朴元熇, "明初朝鮮關係史硏究" 一潮閣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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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錢茂偉, "明代史學的曆程"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3

    24 "攷事撮要"

    25 "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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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定宗實錄"

    28 "太祖實錄"

    29 "太宗實錄"

    30 "圃隱集"

    31 張東翼, "元代麗史資料集錄"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32 "世宗實錄"

    33 김한규, "『한중관계사』 Ⅱ" 아르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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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권용철, "『朱一齎先生文集』에 수록된 ‘責問高麗詔’에 대하여" 효원사학회 58 : 449-476, 2020

    37 汪維輝, "《高麓史》和《李朝實綠》中的漢語研究資料" 9 : 2010

    38 David C. Kang, "East Asia Before the West"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39 John K. Fairbank, "Chinese World Order: Traditional China's Foreign Relations" Harvard University Press 1968

    40 "(萬曆)大明會典"

    41 "(正德)大明會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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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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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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