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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滿洲事變 이전 中國 安東에서 日本의 領事館警察署 설치와 운영 = The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Japanese Consulate Police in Andong before Manchurian Inc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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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research was trying to explore the process of opening and operation of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in Andong(安東) before the Manchurian Incident.
    Andong, the gateway to China from Korea, was a connecting point of Shanghai and Manchuria independence movement forces and convergence of them before 1945.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agents oppressing Korean, including independence activists in the Aprok River area.
    There were many kinds of consulate police in China since 1884 when first sent Foreign Affairs Ministry policeman to Shanghai(上海) and Amoy(廈門). Especially, after the Russo-Japanese War, Japanese reinforced consulate police in Manchuria with the opening of Japanese Consulate. Most of them was installed under the name of police branch, branch office, dispatch office, and etc. Andong Consulate Police Station was a center of this kind of agents since May, 1906.
    Andong Consul hold an assistant junior official of Japanese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of Kwan-dong Province(關東都督府, hereafter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additional to Foreign Affairs Ministry. It was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that exercised police power in Andong, not the Consul. What was more important fact was that the Police Station formally under the Consul was excluded from Foreign Affairs Ministry police from 1925.
    In 1920s,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in Andong was disguised as an under Foreign Affairs Ministry, maintaining diplomatic immunity. Many of policemen from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and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was holing an Consulate Police. They vigorously activated targeting for Korean, especially arresting independence activists. It show the fact that the privilege of exemption from liability for a diplomatic official become an effective method for extension of Japan’s power in China.
    The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in Andong can be a good example show how Japan extended and maintained it’s power in the Aprok River area and Manchuria before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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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research was trying to explore the process of opening and operation of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in Andong(安東) before the Manchurian Incident. Andong, the gateway to China from Korea, was a connecting point of Shanghai and Manchuria ...

    This research was trying to explore the process of opening and operation of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in Andong(安東) before the Manchurian Incident.
    Andong, the gateway to China from Korea, was a connecting point of Shanghai and Manchuria independence movement forces and convergence of them before 1945.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agents oppressing Korean, including independence activists in the Aprok River area.
    There were many kinds of consulate police in China since 1884 when first sent Foreign Affairs Ministry policeman to Shanghai(上海) and Amoy(廈門). Especially, after the Russo-Japanese War, Japanese reinforced consulate police in Manchuria with the opening of Japanese Consulate. Most of them was installed under the name of police branch, branch office, dispatch office, and etc. Andong Consulate Police Station was a center of this kind of agents since May, 1906.
    Andong Consul hold an assistant junior official of Japanese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of Kwan-dong Province(關東都督府, hereafter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additional to Foreign Affairs Ministry. It was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that exercised police power in Andong, not the Consul. What was more important fact was that the Police Station formally under the Consul was excluded from Foreign Affairs Ministry police from 1925.
    In 1920s,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in Andong was disguised as an under Foreign Affairs Ministry, maintaining diplomatic immunity. Many of policemen from Government Office of General and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was holing an Consulate Police. They vigorously activated targeting for Korean, especially arresting independence activists. It show the fact that the privilege of exemption from liability for a diplomatic official become an effective method for extension of Japan’s power in China.
    The Japanese Consulate Police Station in Andong can be a good example show how Japan extended and maintained it’s power in the Aprok River area and Manchuria before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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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만주사변 이전 안동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 개설과 그 운영을 살펴보려 하였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안동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만주로 이주하는 한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안동을 경유하여 만주로 들어가거나 안동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안동은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북만주의 독립운동 세력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기도 하였다. 일본이 안동에서 이러한 한인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이 영사관경찰서였다.
    안동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서는 1906년 5월 영사관 개설과 함께 설치되었다. 일본은 1884년 9월 상해영사관에 처음으로 순사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에서 ‘외무성 경찰관’신분의 영사관경찰을 계속 증원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만주에서 영사관을 개설하면서 그에 부속된 다양한 명칭의 영사관 경찰기구―경찰서와 분서, 그리고 그에 직속하는 출장소 및 파출소․파견소 등―를 설치하였다.
    남만주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서 조직과 운영의 가장 큰 특징은 겸임경찰제 실시였다. 1908년부터 외무성과 관동도독부의 겸임경찰제가 실시되면서 남만주에서 일본 영사관은 관동도독부 사무관까지 겸임하였다. 하지만 관동도독부가 만주에서 경찰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1909년부터 관동도독부 소속 안동경무서장이 영사관경찰서장을 겸임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안동경무서의 영사관경찰서에 대한 인원과 조직의 우위가 현저해졌으며, 1925년부터 영사관경찰서는 외무성경찰 정원에서도 제외되어 관동도독부 소속이 되었으며, 1920년대 영사관경찰서 인원은 관동도독부 소속 인원으로 충당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안동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서는 안동경무서와 동일한 기구로 간주되었으며, 안동에는 소속을 달리하는 두 경찰기구가‘한 지붕 두 가족’같은 형태로 존재하였다. 여기에서 다시 1923년부터 조선총독부와 안동경무서의 겸임경찰제 실시로 조선총독부 경찰들이 안동경무서로 부임하였다. 그 결과 당시 안동을 포함한 압록강 연안에는 외무성․관동도독부․조선총독부 소속 경찰들이 활동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미 1920년대가 되면 인원과 조직에서 안동경무서에 미치지 못하였던 영사관경찰서가 유지되었던 것은 영사관의 특권인 치외법권 때문이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치외법권을 배경으로 안동영사관 관할구역의 교통 요충지와 한인 거주지에서 다수의 주재소와 파출소를 설치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부터 만주에서 겸임경찰제 실시를 통하여 경찰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통하여 안동-신의주를 중심으로 한 압록강 연안을 통제하고 나아가 남만주를 지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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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만주사변 이전 안동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 개설과 그 운영을 살펴보려 하였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안동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만주로 이주하는 한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안...

    본 연구는 만주사변 이전 안동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 개설과 그 운영을 살펴보려 하였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안동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만주로 이주하는 한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안동을 경유하여 만주로 들어가거나 안동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안동은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북만주의 독립운동 세력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기도 하였다. 일본이 안동에서 이러한 한인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이 영사관경찰서였다.
    안동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서는 1906년 5월 영사관 개설과 함께 설치되었다. 일본은 1884년 9월 상해영사관에 처음으로 순사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에서 ‘외무성 경찰관’신분의 영사관경찰을 계속 증원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만주에서 영사관을 개설하면서 그에 부속된 다양한 명칭의 영사관 경찰기구―경찰서와 분서, 그리고 그에 직속하는 출장소 및 파출소․파견소 등―를 설치하였다.
    남만주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서 조직과 운영의 가장 큰 특징은 겸임경찰제 실시였다. 1908년부터 외무성과 관동도독부의 겸임경찰제가 실시되면서 남만주에서 일본 영사관은 관동도독부 사무관까지 겸임하였다. 하지만 관동도독부가 만주에서 경찰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1909년부터 관동도독부 소속 안동경무서장이 영사관경찰서장을 겸임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안동경무서의 영사관경찰서에 대한 인원과 조직의 우위가 현저해졌으며, 1925년부터 영사관경찰서는 외무성경찰 정원에서도 제외되어 관동도독부 소속이 되었으며, 1920년대 영사관경찰서 인원은 관동도독부 소속 인원으로 충당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안동에서 일본의 영사관경찰서는 안동경무서와 동일한 기구로 간주되었으며, 안동에는 소속을 달리하는 두 경찰기구가‘한 지붕 두 가족’같은 형태로 존재하였다. 여기에서 다시 1923년부터 조선총독부와 안동경무서의 겸임경찰제 실시로 조선총독부 경찰들이 안동경무서로 부임하였다. 그 결과 당시 안동을 포함한 압록강 연안에는 외무성․관동도독부․조선총독부 소속 경찰들이 활동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미 1920년대가 되면 인원과 조직에서 안동경무서에 미치지 못하였던 영사관경찰서가 유지되었던 것은 영사관의 특권인 치외법권 때문이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치외법권을 배경으로 안동영사관 관할구역의 교통 요충지와 한인 거주지에서 다수의 주재소와 파출소를 설치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부터 만주에서 겸임경찰제 실시를 통하여 경찰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통하여 안동-신의주를 중심으로 한 압록강 연안을 통제하고 나아가 남만주를 지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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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용철,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3·1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61) : 43-83, 2018

    2 이홍석, "안동영사관과 부영사 나혜석" 나혜석학회 5 : 2014

    3 "領事官管轄区域改正ノ件"

    4 關東長官官房文書課, "關東廳要覽(1923·1925·1931·1933·1935年)" 滿洲日日新聞社 1934

    5 "関東都督府政況報告並雑報 第一巻(B03041518600)·第四巻(B03041535600)·第五巻(B03041539400)·第十三巻(B03041573400)"

    6 賈小壯, "開埠通商與安東小商埠城市社會變遷硏究(1906-1931)" 吉林大學 2015

    7 "長白県及臨江県ニ分館設置方ノ件"

    8 張佳餘, "近代東北開埠問題硏究" 首都師範大學 2008

    9 文松, "近代中國海關洋員槪略―以五任總稅務司爲主" 中國海關出版社 2005

    10 "職員錄"

    1 이용철,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3·1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61) : 43-83, 2018

    2 이홍석, "안동영사관과 부영사 나혜석" 나혜석학회 5 : 2014

    3 "領事官管轄区域改正ノ件"

    4 關東長官官房文書課, "關東廳要覽(1923·1925·1931·1933·1935年)" 滿洲日日新聞社 1934

    5 "関東都督府政況報告並雑報 第一巻(B03041518600)·第四巻(B03041535600)·第五巻(B03041539400)·第十三巻(B03041573400)"

    6 賈小壯, "開埠通商與安東小商埠城市社會變遷硏究(1906-1931)" 吉林大學 2015

    7 "長白県及臨江県ニ分館設置方ノ件"

    8 張佳餘, "近代東北開埠問題硏究" 首都師範大學 2008

    9 文松, "近代中國海關洋員槪略―以五任總稅務司爲主" 中國海關出版社 2005

    10 "職員錄"

    11 "統監府及各理事廳同府法務院ト在安東領事館間直接通信ノ件(1906.11)"

    12 "盛京時報"

    13 水野直樹, "特集号まえがき" 106 : 2005

    14 費馳, "淸代東北商埠與社會變遷硏究" 東北師範大學 2007

    15 "治外法權撤廢関係ノ部 第一巻(在安東分館)"

    16 金雨英, "民族 共同生活과 道義" 新生公論社 1957

    17 關定保, "民國安東縣志" 鳳凰出版社·上海書店·巴蜀書社 2006

    18 "每日申報"

    19 金雲龍, "東邊道經濟開發史略" 通化市政協文史學習委員會 1998

    20 "東亞日報"

    21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⑷⑸⑹"

    22 "朝鮮人ニ対スル施政関係雑件-朝鮮人民会 第四巻"

    23 "朝鮮人ニ対スル施政関係雑件(輿論ノ部)"

    24 "日露戦役二依ル占領地施政一件-安東県, 大道溝ノ部"

    25 李洪錫, "日本駐中國東北地區領事館警察機構硏究―以對延邊地區朝鮮民族的統治爲中心―" 延邊大學校 2007

    26 千葉功, "日本外交の形性:日本外交 1900∼1919" 勁草書房 2008

    27 遼寧省檔案館, "日本侵華罪行檔案新輯 2" 廣西師範大學出版社 1999

    28 "山東省ニ關スル條約, 南滿洲及東部內蒙古ニ關スル條約"

    29 "山東省ニ關スル條約, 南滿洲及東部內蒙古ニ關スル條約"

    30 "安東領事館ヲ領事分館ヘ降格ノ件"

    31 安東博物館, "安東舊影" 安東博物館 2007

    32 安東縣商業會議所, "安東志" 安東縣商業會議所 1920

    33 安東居留民團法實施十週年紀念會, "安東居留民團十年史" 朝鮮印刷株式會社 1919

    34 田中重光, "大日本帝國の領事館建築:中國·滿洲24の領事館と建築家" 相模書房 2007

    35 外務省, "外務省警察史 第1·4·5·7卷" 不二出版社 1996

    36 "在満洲領事ト軍政官トノ職権取極一件(1904.11.25.)"

    37 "在満支帝国領事館警察(含公館)寫眞集(警華帖)"

    38 "在満帝国警察機関統制関係雑件/警察官配置関係 第二卷"

    39 "在安東日本領事館管内事情 第一·二編"

    40 "在外警察官諸規則雑件 第三巻"

    41 南滿洲鐵道株式會社, "南滿洲鐵道旅行案内" 南滿洲鐵道株式會社 1917

    42 "公文類聚 第28篇"

    43 鍾哲, "丹東地區朝鮮族歷史及現狀調査" 2 : 1993

    4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2·16"

    45 丹東市地方志辦公室, "『丹東市志 1876-1985』2" 遼寧科學技術出版社 1993

    46 서동일, "1910년대 한인의 안동 이주와 접리수 한인촌 형성" 한국사연구회 (171) : 277-317, 2015

    47 오병한, "1900~1920년대 日本의 安東領事館 설치와 운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64) : 165-20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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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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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1 0.81 0.7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5 0.66 1.616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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