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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서(壽序)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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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과제는 크게 수서의 역사, 수서의 장르적 성격과 문학성,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수서 등으로 나누어 서술할 계획이다.

      가. 수서의 역사
      수서가 등장하기까지 역사적 내원과 전변과정, 지역적 전파양상 등을 살펴봄으로써 특정 문학 양식의 탄생이 문학 자체에 내재한 동력만이 아닌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 것임을 드러내보이고자 한다. 樂府詩集과 唐詩紀事를 바탕으로 할 때, 수시는 적어도 魏晉時代부터 이미 지어졌다. 이처럼 수시서에서 수서로 전이되는 과정은 원말 명초 주요 작가의 수서 및 수시서 목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시 이외에도 頌, 序言, 叙~~文, 壽~~文, 壽歌詞序 등 축수의 방법과 양식이 다변화됨도 볼 수 있다. 특히 고작 40세밖에 안 된 인물을 위해 쓴 수서나 다른 사람을 대신해 지은 수서도 나타나는 등, 수서의 통속화가 가속화하는 경향도 감지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16세기 후반에 수서가 등장한 이후 점차 보편화되어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어지간한 문장가라면 한두 편의 수서 정도는 남길 정도가 되고, 심지어 수서의 문학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대량으로 짓는 문인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는 칠순을 앞둔 영조에게 왕세정을 예로 들어 수서를 지어 올릴 것을 건의한 洪啓禧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學明’의 선두에 선 일부 문인에게서만 보이던 수서가 후기로 갈수록 폭넓게 확산되어 가문이나 당색, 문학적 경향에 관계없이 지어졌던 것이다.

      나. 수서의 장르적 성격과 문학성
      수서의 기원과 문체적 특징을 문학사적 전변과정 속에서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 碑誌, 哀祭, 贈序文과의 관련성도 아울러 고려할 것이다. 특히 증서문 가운데 回巹禮序, 耆老會序, 致仕序 및 기타 賀序 등은 수서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므로 이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도 병행할 예정이다. 수시서와 수서는 구별하기가 용이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즉 壽詩序는 피찬자에 대한 찬양 또는 기원은 주로 시에서 다루고 찬술 동기나 배경, 피찬자와의 관계, 찬술의 의미 등, 시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산문으로 된 서문을 통해 부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문채미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수서는 찬술 동기와 배경, 피찬자와의 관계, 찬술의 의미, 피찬자에 대한 찬양과 기원까지 한편의 산문에 모두 담아내며, 작가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문채미도 상당히 강구한다.
      수서는 서술 전략이나 표현 방식, 수사적 기법 등에 있어서 각자의 문학적 성향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이몽양이나 하경명의 수서는 가독성이 높음에 반해 이반룡과 왕세정의 수서는 句式의 변화가 심하여 난해하게 느껴진다. 또한 이몽양과 하경명의 수서가 문벌이 높은 집안을 대상으로 하였음에 비해 이반룡과 왕세정은 상업으로 큰돈을 번 인물을 대상으로 한 수서도 다수 지었으며, 의례적이고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훈적이고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표출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또한 조선의 문인들은 명으로부터 수서의 존재를 발견하고 창작에 활용하였지만 문화적 배경이 달랐던 만큼 그들이 만들어낸 수서도 다양한 모습을 띤다. 前後七子의 복고주의가 文字獄, 臺閣體, 八股文 등에 대한 고민과 반성에서 비롯한 것이듯이, 조선의 수서는 당대의 현실을 드러내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였다.

      다.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수서
      수서의 변화 양상 중 큰 흐름만 요약한다면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즉 국왕의 교화와 은덕을 찬양하는 수단으로부터 삶의 질곡을 극복한 개인의 역사로, 장생불사를 희구하던 데에서 조상을 기리고 후손의 번창을 희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할 수 있다. 또한 표현상으로는 의례적 응수문자의 한계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의고적 느낌이 들도록 한다거나 운문을 활용하기도 하고, 또 소품취를 조성하기도 하는 등 개성적인 문학산문으로 확대되었으며, 내용면에서는 올바른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담고 있었다. 또한 조선 후기로만 한정하면 철저히 개인적인 삶에만 주목한 수서가 있었는가하면 반대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나 태도를 의식한 수서도 있었는바,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이성이 충돌하는 흥미로운 양식의 글이었다. 수서가 어떻게 문단의 주류에 편입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상업적 자본력과 문학의 결합양상, 신분질서 등 사회의 변화와 문학의 관계, 문학의 통속화에 대한 지적 대응방식은 무엇이었는지 등도 아울러 살펴볼 계획이다. 또한 수서에 담긴 삶에 대한 애착과 욕망, 절제와 순응, 윤리와 도덕 등 다양한 담론들을 재가공하여 인문학적 성찰의 기회로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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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과제는 크게 수서의 역사, 수서의 장르적 성격과 문학성,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수서 등으로 나누어 서술할 계획이다. 가. 수서의 역사 수서가 등장하기까지 역사적 내원과 전변과...

      본 과제는 크게 수서의 역사, 수서의 장르적 성격과 문학성,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수서 등으로 나누어 서술할 계획이다.

      가. 수서의 역사
      수서가 등장하기까지 역사적 내원과 전변과정, 지역적 전파양상 등을 살펴봄으로써 특정 문학 양식의 탄생이 문학 자체에 내재한 동력만이 아닌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 것임을 드러내보이고자 한다. 樂府詩集과 唐詩紀事를 바탕으로 할 때, 수시는 적어도 魏晉時代부터 이미 지어졌다. 이처럼 수시서에서 수서로 전이되는 과정은 원말 명초 주요 작가의 수서 및 수시서 목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시 이외에도 頌, 序言, 叙~~文, 壽~~文, 壽歌詞序 등 축수의 방법과 양식이 다변화됨도 볼 수 있다. 특히 고작 40세밖에 안 된 인물을 위해 쓴 수서나 다른 사람을 대신해 지은 수서도 나타나는 등, 수서의 통속화가 가속화하는 경향도 감지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16세기 후반에 수서가 등장한 이후 점차 보편화되어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어지간한 문장가라면 한두 편의 수서 정도는 남길 정도가 되고, 심지어 수서의 문학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대량으로 짓는 문인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는 칠순을 앞둔 영조에게 왕세정을 예로 들어 수서를 지어 올릴 것을 건의한 洪啓禧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學明’의 선두에 선 일부 문인에게서만 보이던 수서가 후기로 갈수록 폭넓게 확산되어 가문이나 당색, 문학적 경향에 관계없이 지어졌던 것이다.

      나. 수서의 장르적 성격과 문학성
      수서의 기원과 문체적 특징을 문학사적 전변과정 속에서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 碑誌, 哀祭, 贈序文과의 관련성도 아울러 고려할 것이다. 특히 증서문 가운데 回巹禮序, 耆老會序, 致仕序 및 기타 賀序 등은 수서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므로 이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도 병행할 예정이다. 수시서와 수서는 구별하기가 용이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즉 壽詩序는 피찬자에 대한 찬양 또는 기원은 주로 시에서 다루고 찬술 동기나 배경, 피찬자와의 관계, 찬술의 의미 등, 시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산문으로 된 서문을 통해 부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문채미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수서는 찬술 동기와 배경, 피찬자와의 관계, 찬술의 의미, 피찬자에 대한 찬양과 기원까지 한편의 산문에 모두 담아내며, 작가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문채미도 상당히 강구한다.
      수서는 서술 전략이나 표현 방식, 수사적 기법 등에 있어서 각자의 문학적 성향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이몽양이나 하경명의 수서는 가독성이 높음에 반해 이반룡과 왕세정의 수서는 句式의 변화가 심하여 난해하게 느껴진다. 또한 이몽양과 하경명의 수서가 문벌이 높은 집안을 대상으로 하였음에 비해 이반룡과 왕세정은 상업으로 큰돈을 번 인물을 대상으로 한 수서도 다수 지었으며, 의례적이고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훈적이고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표출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또한 조선의 문인들은 명으로부터 수서의 존재를 발견하고 창작에 활용하였지만 문화적 배경이 달랐던 만큼 그들이 만들어낸 수서도 다양한 모습을 띤다. 前後七子의 복고주의가 文字獄, 臺閣體, 八股文 등에 대한 고민과 반성에서 비롯한 것이듯이, 조선의 수서는 당대의 현실을 드러내는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였다.

      다.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수서
      수서의 변화 양상 중 큰 흐름만 요약한다면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즉 국왕의 교화와 은덕을 찬양하는 수단으로부터 삶의 질곡을 극복한 개인의 역사로, 장생불사를 희구하던 데에서 조상을 기리고 후손의 번창을 희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할 수 있다. 또한 표현상으로는 의례적 응수문자의 한계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의고적 느낌이 들도록 한다거나 운문을 활용하기도 하고, 또 소품취를 조성하기도 하는 등 개성적인 문학산문으로 확대되었으며, 내용면에서는 올바른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담고 있었다. 또한 조선 후기로만 한정하면 철저히 개인적인 삶에만 주목한 수서가 있었는가하면 반대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나 태도를 의식한 수서도 있었는바,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이성이 충돌하는 흥미로운 양식의 글이었다. 수서가 어떻게 문단의 주류에 편입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상업적 자본력과 문학의 결합양상, 신분질서 등 사회의 변화와 문학의 관계, 문학의 통속화에 대한 지적 대응방식은 무엇이었는지 등도 아울러 살펴볼 계획이다. 또한 수서에 담긴 삶에 대한 애착과 욕망, 절제와 순응, 윤리와 도덕 등 다양한 담론들을 재가공하여 인문학적 성찰의 기회로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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