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天道敎의 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의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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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天道敎의 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의 상이다.
이 사진은 天道敎의 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의 상이다.
최제우(1824∼1864)는, 외세의 침략과 봉건 사회의 모순에 반대한 종교였던 동학(東學)의 교조(敎祖)이다. 호는 수운(水雲)이고, 경주 출신이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장사를 하거나, 의술(醫...
최제우(1824∼1864)는, 외세의 침략과 봉건 사회의 모순에 반대한 종교였던 동학(東學)의 교조(敎祖)이다. 호는 수운(水雲)이고, 경주 출신이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장사를 하거나, 의술(醫術)과 점술(占術)에 관심을 보이거나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나 참된 도를 구하려는 수운의 노력은 양산, 울산, 경주 지방에서의 수련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860년 4월 5일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듬해 포교를 시작하여 1863년에는 경상도,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와 경기도에까지 교세를 펼쳐, 교인 3천여 명, 지방 종교조직인 접소(接所) 13개소를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나 1864년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울산은 부인 박씨의 고향으로, 수운은 이곳 여시바윗골에 초가집을 짓고 수련을 계속하던 중 1855년에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천도교에서는 '을묘천서(乙卯天書)'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