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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玄相允의 현실극복과 미래지향적 교육에 대한 一攷 = A Study on the Actual Subjugation and Future-oriented Education of Gidang Hyun S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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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03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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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thesis is on putting emphasis of the Actual Subjugation and Future-oriented Education of Gidang Hyun Sang-yun. He return to his country, finishing scholastic achievement. He, desiring save-the-nation movement and independence of country, minutely developed the 1919 Independence Movement of Korea. It ended in failure.
    Hyun Sang-yun argued the science education and obligation education for independence of country. He guided younger students  Invoking morality on this difficult occasion of country.
    As we lagged behind other nations in the exploitation of the science, his maintenance of science education is to apply scientific knowledge in one’s real life. The ultimate end of his is for overcoming this falling behind of country. His doctrine of obligation education is fostering and improving national power throughout knowledge of younger students.
    Particularly, he endeavored history and culture-progress in sacrificing himself to an educator. In addition, he would reveal spirit of Joseon(Korea) on striving for education-rehabilitation. His education gave excellent impression to educatees, and had younger scholars establish their upright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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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thesis is on putting emphasis of the Actual Subjugation and Future-oriented Education of Gidang Hyun Sang-yun. He return to his country, finishing scholastic achievement. He, desiring save-the-nation movement and independence of country, minutely...

    This thesis is on putting emphasis of the Actual Subjugation and Future-oriented Education of Gidang Hyun Sang-yun. He return to his country, finishing scholastic achievement. He, desiring save-the-nation movement and independence of country, minutely developed the 1919 Independence Movement of Korea. It ended in failure.
    Hyun Sang-yun argued the science education and obligation education for independence of country. He guided younger students  Invoking morality on this difficult occasion of country.
    As we lagged behind other nations in the exploitation of the science, his maintenance of science education is to apply scientific knowledge in one’s real life. The ultimate end of his is for overcoming this falling behind of country. His doctrine of obligation education is fostering and improving national power throughout knowledge of younger students.
    Particularly, he endeavored history and culture-progress in sacrificing himself to an educator. In addition, he would reveal spirit of Joseon(Korea) on striving for education-rehabilitation. His education gave excellent impression to educatees, and had younger scholars establish their upright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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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글은 지난번 게재한 논문을 이어 구성한 것으로 현상윤(玄相允)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이후의 교육활동을 고찰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교육에 전념하며 생을 마감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매사에 ‘공(公)’과 ‘사(私)’를 철저히 구분하여 행동하면서도 그 종국에는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억압받는 민족을 구하여 자주적 독립국가를 향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정신을 곧바로 교육활동에 투영하여 후학을 지도하였다.
    본 논문은 현상윤의 현실극복과 미래지향적 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고찰한 바, 그것은 민족의 자주적 독립을 위해 과학교육과 의무교육론이었으며, 또한 그의 인격이었다. 즉 과학교육 주장은 우리의 낙후성을 극복하고 실생활을 위한 지식의 큰 힘을 가지기 위한 것이고, 의무교육 주장은 청년들의 강한 지식의 힘을 통해 민력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교육자로 헌신하면서도 역사와 문화창달에 힘쓰고 교육재건에 노력하면서도 조선의 혼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더욱이 그의 삶의 자세는 주체인 자신과 객체인 민족을 동격화하면서 민족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정신의 발현이 청소년들에게 주는 처세술이나 신조로 나타났고, 또한 그 이면에는 내면의 진실성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성(誠)’이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이러한 진실성을 가지고 항상 청소년들을 차별 없이 대하며 양심적⋅민족적 의식을 고양(高揚)시키는 교육에 힘썼다. 다시 말하면 피교육자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도록 하는 도덕적 인간형성 교육에 진력하였다.
    그는 매사에 ‘공’과 ‘사’의 구별과 검약정신은 피교육자 내지 동료들에게 좋은 감명을 남겼다. 특히 그는 호학(好學)이 대단하여 8ㆍ15 해방 후에는 우리 사상 연구에 심취하여 한국사상사 강의와 저술에 힘썼다. 그의 이러한 교육활동은 우리의 혼(魂) 즉 정신을 고취시켜 현실의 정치적 분열을 막고 하나의 민족을 통해 자주국가를 지향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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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지난번 게재한 논문을 이어 구성한 것으로 현상윤(玄相允)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이후의 교육활동을 고찰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교육에 전념하며 생을 마감하였다고 ...

    본 글은 지난번 게재한 논문을 이어 구성한 것으로 현상윤(玄相允)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이후의 교육활동을 고찰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교육에 전념하며 생을 마감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매사에 ‘공(公)’과 ‘사(私)’를 철저히 구분하여 행동하면서도 그 종국에는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억압받는 민족을 구하여 자주적 독립국가를 향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정신을 곧바로 교육활동에 투영하여 후학을 지도하였다.
    본 논문은 현상윤의 현실극복과 미래지향적 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고찰한 바, 그것은 민족의 자주적 독립을 위해 과학교육과 의무교육론이었으며, 또한 그의 인격이었다. 즉 과학교육 주장은 우리의 낙후성을 극복하고 실생활을 위한 지식의 큰 힘을 가지기 위한 것이고, 의무교육 주장은 청년들의 강한 지식의 힘을 통해 민력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교육자로 헌신하면서도 역사와 문화창달에 힘쓰고 교육재건에 노력하면서도 조선의 혼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더욱이 그의 삶의 자세는 주체인 자신과 객체인 민족을 동격화하면서 민족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정신의 발현이 청소년들에게 주는 처세술이나 신조로 나타났고, 또한 그 이면에는 내면의 진실성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성(誠)’이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이러한 진실성을 가지고 항상 청소년들을 차별 없이 대하며 양심적⋅민족적 의식을 고양(高揚)시키는 교육에 힘썼다. 다시 말하면 피교육자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도록 하는 도덕적 인간형성 교육에 진력하였다.
    그는 매사에 ‘공’과 ‘사’의 구별과 검약정신은 피교육자 내지 동료들에게 좋은 감명을 남겼다. 특히 그는 호학(好學)이 대단하여 8ㆍ15 해방 후에는 우리 사상 연구에 심취하여 한국사상사 강의와 저술에 힘썼다. 그의 이러한 교육활동은 우리의 혼(魂) 즉 정신을 고취시켜 현실의 정치적 분열을 막고 하나의 민족을 통해 자주국가를 지향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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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오천석, "한국신교육사" 현대교육총서출판사 1964

    2 "한국사(45)" 국사편찬위원회 2000

    3 이만열, "한국근대 역사학의 이해" 문학과지성사 1981

    4 고영진, "조선시대 사상사를 어떵헥 볼 것인가" 풀빛 1999

    5 이만규, "조선교육사" 기획출판 거름 1988

    6 이한우, "우리의 학맥과 학풍" 문예출판사 1995

    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고려대학의 사람들(4)-현상윤" 1986

    8 신동아 편집실, "韓國近代人物百人選" 동아일보사 1979

    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經書(大學, 論語, 孟子, 中庸)" 1971

    10 이형성, "玄相允의 修學期 절의정신과 민족의식에 대한 一攷" 44 : 2008

    1 오천석, "한국신교육사" 현대교육총서출판사 1964

    2 "한국사(45)" 국사편찬위원회 2000

    3 이만열, "한국근대 역사학의 이해" 문학과지성사 1981

    4 고영진, "조선시대 사상사를 어떵헥 볼 것인가" 풀빛 1999

    5 이만규, "조선교육사" 기획출판 거름 1988

    6 이한우, "우리의 학맥과 학풍" 문예출판사 1995

    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고려대학의 사람들(4)-현상윤" 1986

    8 신동아 편집실, "韓國近代人物百人選" 동아일보사 1979

    9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經書(大學, 論語, 孟子, 中庸)" 1971

    10 이형성, "玄相允의 修學期 절의정신과 민족의식에 대한 一攷" 44 : 2008

    11 "普成80年史(普成80年史編纂委員會)" 보성중고등학교(학교법인 東成學園) 1986

    12 현재경, "幾堂玄相允文集"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0

    13 "幾堂玄相允全集(1-5)" 나남 2008

    14 "幾堂 玄相允 先生의 學問과 思想" 2008

    15 朱耀翰, "安島山全書" 범양사출판사 1990

    16 "『문학사상』 2003년 8월호(제32권 8호 통권 제370호), 문학사상사, 2003년"

    17 "『東光』 4권 10호(1932년 11월), 東光社"

    18 김선양, "(현대)한국교육사상사" 한국학술정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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