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에는 1957년 김화읍 도창리 40세대, 1959년 철원읍 월하리 72세대, 1960년 근남면 마현1리 66세대, 1968년 마현2리 60세대, 1968년 철원읍 대마1리 150세대, 1970년 김화읍 생창리 100세대. 1970년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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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철원군에는 1957년 김화읍 도창리 40세대, 1959년 철원읍 월하리 72세대, 1960년 근남면 마현1리 66세대, 1968년 마현2리 60세대, 1968년 철원읍 대마1리 150세대, 1970년 김화읍 생창리 100세대. 1970년 근...
철원군에는 1957년 김화읍 도창리 40세대, 1959년 철원읍 월하리 72세대, 1960년 근남면 마현1리 66세대, 1968년 마현2리 60세대, 1968년 철원읍 대마1리 150세대, 1970년 김화읍 생창리 100세대. 1970년 근남면 사곡2리 40세대, 1971년 갈말읍 정연리 120세대, 1973년 동송읍 양지리 100세대, 1973년 근북면 유곡리 60세대, 1974년 갈말읍 동막리 50세대, 1979년 동송읍 이길리 68세대, 1979년 철원읍 대마2리 97세대, 1980년 철원읍 관전리 32세대 등 총 14개 민북마을이 조성되어 1,055세대가 입주하였다.
1979년 민북지구 취락구조 개선 사업으로 대대적으로 증·개축하면서 민북마을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도약하는 문화촌’이라 불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이후 민통선이 3차례 북상하면서 대부분의 민북마을이 해제되었고 현재 철원군에 남아있는 민북마을은 동송읍 이길리, 갈말읍 정연리, 근북면 유곡리, 근남면 마현1리, 마현2리 등 5곳이다.
민북지구 조성 과정에서 정부와 군부의 역할, 황무지 개척 과정에서 입주민들의 희생, 마을 조성 후 정착 과정에서 군인과 입주민 간의 협조와 갈등, 주민들 사이의 협력과 알력 등 전략촌이 자리 잡고 성장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입주 초기 주민들의 생활은 군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고 제약이 많았다. 마을 내 구성원들끼리 서로 협력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개척해야 했다.
필자는 2008년에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 수집사업의 일환으로 ‘철원지역 민통선 북방마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민북마을 입주민 18명을 구술 조사한 바 있다. 이후에도 주민들과 계속 접촉했으며 외부 연구자나 전문가들과 함께 방문하거나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러면서 민북마을 주민들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고 결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수년 전부터 민북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기록하고자 마음먹었고 2022년 정승익 사진작가와 10개월간 돌아다니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기록하여 포토에세이 책자를 제작하였다.
민북마을 주민들의 사계절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사진 위주로, 연출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옮기는 데에 주력하였고 글은 최대한 자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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