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나치시기 음악현상을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히틀러 집권으로 시작된 나치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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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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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나치시기 음악현상을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히틀러 집권으로 시작된 나치의 음악정책, 즉 기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치 시기 음악인들이 히틀러 정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라는 질문으로 나치 음악인에 관한 연구이다. 셋째로는 작품에 관한 연구인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 Strauss)의 “평화의 날Freidenstag”을 분석하여 이데올로기와 음악의 관계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이 세 분야의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단체와 정책이 인간과 그 창작물인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하는 측면이다. 물론, 역으로 인간과 예술품이 단체와 사회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연구범위가 너무 방대해지지 않도록 전자의 측면에 국한하였다. 또한 나치 치하에서 ‘독일적’인 예술로 여겨졌던 음악분야에서 엄청난 양의 창작과 연주가 이루어졌지만, 나치의 세계관을 잘 반영하고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 “평화의 날”에 국한하여 연구하고자 했다.
연구결과를 요약해보면, 독일에 남아 음악활동을 하고자 하는 음악인은 어떤 식으로든 나치의 문화정책과 얽히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문화부장관 괴벨스가 1933년에 발족한 제국문화협회(음악협회, 방송협회, 연극협회, 영화협회, 문학협회, 신문협회로 모두 6개의 산하조직이 있음)는 나치독일의 모든 문화적 활동과 행위를 통제하는 기관으로써 이시기에 독일내에서 예술적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기관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음악은 ‘독일적인 예술’로 나치시기에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장려되었는데, 미술이나 문학보다 사적인 활동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나치기관의 간섭과 통제를 받았다. 따라서 정치와는 상관없이 예술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음악은 음악이다’라는 대다수 음악인들(프루트뱅글러, 카라얀)의 생각은 자기합리화 내지 명성을 유지하거나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표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제적 명성을 가졌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치와 게임하듯이 필요한 것을 주고 또 받으며 자신의 음악적 자유를 누리고자 나치에게 협조하였다. 그러나 1936년에 작곡한 “평화의 날”은 한 음악대가가 어떤 식으로 나치 정책과 타협하였고, 나치 하에서 음악적 자유를 누릴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음악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38년 7월에 뮌헨에서 초연되었을 때, 나치 권력자들의 갈채를 받아 그 이후에도 나치가 멸망하기 전까지 100회 이상이나 연주되었다. 독일의 17세기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는 여주인공 마리아(지휘관의 아내)를 제외하고 아무도 이름이 없다. 그 대신 지휘관, 시장, 순사, 여인, 병사 등의 직업이나 성별로 지칭되어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강조된다. 또한 주인공 지휘관은 오로지 황제에 대한 충성과 명예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인물인데, 나치들이 요구하는 복종정신, 전쟁의 미화, 남자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적인 태도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민중의 요구보다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적과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죽고자 하는 지휘관의 명예심은 결국 부인 마리아의 중개로 적군인 신교도의 지휘관과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평화로운 결말이 되는데, 음악적으로는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C장조 합창으로 막을 내린다.
슈트라우스가 이 작품을 통해 은밀하게 나치를 비판하려 했다는 해석이 없지는 않지만, 연구 결과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이 작품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나치에게서 얻어내려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슈트라우스의 의도로 읽혀진다. 나치비평가들에게 ‘국가사회주의의 정신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칭송받았던 이 작품은 그래서 나치 치하에서 음악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쉽게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에 속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시기에 탄생한 음악은 순수한 절대음악이라 하더라도 사회정치적 배경과 나치의 문화정책 전반을 고려해서 연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