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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8~19세기 연행사절의 북경 천주당 방문 양상과 의미 = The aspect and meaning of Korean Envoys visiting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in the Eighteenth to Nine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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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0066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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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개항 이전 조선왕조는 정기적으로 보내는 연행사절을 통해 서양 문물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그 주된 통로가 북경의 천주당이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연행사절의 천주당 방문은 조선과 청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18세기에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에 연행사절은 천주당을 방문하여 서양 선교사의 안내로 각종 서양 기물(器物)을 관람하고, 서학서(西學書)를 선사받는다. 이들 서학서 중에는 예수회 선교사가 천주교의 교리를 해설한 천주교 교리서가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18세기 연행사절 중 가장 적극적으로 서양 선교사와 접촉하며, 서교(西敎, 천주교)를 개방적으로 접한 인물로는 이기지(李器之)와 이의봉(李義鳳)이 주목된다. 자제군관(子弟軍官)의 신분으로 연행한 이들은 둘 다 실용적 지식을 중시하는 실학적 가풍에서 생장한 젊은 문사(文士)였다.
      18세기에 연행사절을 통해 전래된 서학서는 조선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천주교 서적은 실세한 남인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들 천주교 서적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한글 번역본이 출현하면서 일반 양인층에게도 급속히 전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종악(朴宗岳)이 정조에게 올린 편지를 기록한 《수기》(隨記)를 통해 그러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19세기에는 북경의 천주당 방문이 금지되게 된다. 이에 19세기의 연행록에는 예수회 선교사가 세운 천주당을 방문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며, 대신 아라사관(俄羅斯館, 러시아관)에 있는 천주당을 방문한 사실이 몇몇 연행록에 보인다. 아라사관에 있는 천주당을 방문하면서 연행사가 주목한 것은 십자가의 형벌에 처해져 죽은 예수의 처참한 형상이었다. 1828년에 연행한 이재흡(李在洽)은 십자가의 예수상을 보고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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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 이전 조선왕조는 정기적으로 보내는 연행사절을 통해 서양 문물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그 주된 통로가 북경의 천주당이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연행사절의 천주당 방문은 조선과 청...

      개항 이전 조선왕조는 정기적으로 보내는 연행사절을 통해 서양 문물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그 주된 통로가 북경의 천주당이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연행사절의 천주당 방문은 조선과 청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18세기에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에 연행사절은 천주당을 방문하여 서양 선교사의 안내로 각종 서양 기물(器物)을 관람하고, 서학서(西學書)를 선사받는다. 이들 서학서 중에는 예수회 선교사가 천주교의 교리를 해설한 천주교 교리서가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18세기 연행사절 중 가장 적극적으로 서양 선교사와 접촉하며, 서교(西敎, 천주교)를 개방적으로 접한 인물로는 이기지(李器之)와 이의봉(李義鳳)이 주목된다. 자제군관(子弟軍官)의 신분으로 연행한 이들은 둘 다 실용적 지식을 중시하는 실학적 가풍에서 생장한 젊은 문사(文士)였다.
      18세기에 연행사절을 통해 전래된 서학서는 조선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천주교 서적은 실세한 남인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들 천주교 서적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한글 번역본이 출현하면서 일반 양인층에게도 급속히 전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종악(朴宗岳)이 정조에게 올린 편지를 기록한 《수기》(隨記)를 통해 그러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19세기에는 북경의 천주당 방문이 금지되게 된다. 이에 19세기의 연행록에는 예수회 선교사가 세운 천주당을 방문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며, 대신 아라사관(俄羅斯館, 러시아관)에 있는 천주당을 방문한 사실이 몇몇 연행록에 보인다. 아라사관에 있는 천주당을 방문하면서 연행사가 주목한 것은 십자가의 형벌에 처해져 죽은 예수의 처참한 형상이었다. 1828년에 연행한 이재흡(李在洽)은 십자가의 예수상을 보고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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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efore foreign trade, Joseon Dynasty could contact with Western culture through Korean envoys. The most path of interaction was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It started from seventeenth century, and they visited frequently there in eighteenth century. Korean envoys had seen a variety of Western objects such as Telescope, Compass and many things, and they were presented book of Western learning by Western missionaries. Doctrine of the Catholic comprised a large proportion of Western learning books. Also, there were noticeable envoys who had interacted with Western missionaries and learned liberally their religion which was Catholic. It was Yi Gi-ji(李器之) and Yi Ui-bong(李義鳳). Both scholars grew up in the family custom that value practical knowledge. In 1720, Yi Gi-ji visited all of three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He actively contacted with Western missionaries. Also, we can find that Western missionaries also wanted to spread their religion which is Catholic in Joseon. In 1760, Yi Ui-bong introduced Western literature and religion using quotation of book of Western missionary in his envoy book. It says that Yi Ui-bong had quietly a lot of interesting in Western learning.
      The Western learning book had affected seriously in Joseon Dynasty in eighteenth century and the book of Catholic doctrine was spreaded by one of the faction politics which was Nam-in(南人). And these books of Catholic doctrine spreaded to public by appearing in Korean translation in the late of eighteenth century. We can find the record in the letter Su-gi(隨記) which had sent to King Jeong-jo from Park Jong-ak(朴宗岳).
      In 1801, Sinyu Bak-hae happened and the visiting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was prohibited in nineteenth century. So, there was not the record of Catholic churches in nineteenth century, but we can find some records that envoys visited Catholic church in Russian embassy in yeonhaengrok (Korean travel literature to Qing China). Korean envoys significantly noticed that the dreadful appearance of Christ on the cross. In 1828, Lee Jae-hup(李在洽) knew why Catholic is not afraid of death because of Christ on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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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fore foreign trade, Joseon Dynasty could contact with Western culture through Korean envoys. The most path of interaction was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It started from seventeenth century, and they visited frequently there in eighteenth century....

      Before foreign trade, Joseon Dynasty could contact with Western culture through Korean envoys. The most path of interaction was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It started from seventeenth century, and they visited frequently there in eighteenth century. Korean envoys had seen a variety of Western objects such as Telescope, Compass and many things, and they were presented book of Western learning by Western missionaries. Doctrine of the Catholic comprised a large proportion of Western learning books. Also, there were noticeable envoys who had interacted with Western missionaries and learned liberally their religion which was Catholic. It was Yi Gi-ji(李器之) and Yi Ui-bong(李義鳳). Both scholars grew up in the family custom that value practical knowledge. In 1720, Yi Gi-ji visited all of three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He actively contacted with Western missionaries. Also, we can find that Western missionaries also wanted to spread their religion which is Catholic in Joseon. In 1760, Yi Ui-bong introduced Western literature and religion using quotation of book of Western missionary in his envoy book. It says that Yi Ui-bong had quietly a lot of interesting in Western learning.
      The Western learning book had affected seriously in Joseon Dynasty in eighteenth century and the book of Catholic doctrine was spreaded by one of the faction politics which was Nam-in(南人). And these books of Catholic doctrine spreaded to public by appearing in Korean translation in the late of eighteenth century. We can find the record in the letter Su-gi(隨記) which had sent to King Jeong-jo from Park Jong-ak(朴宗岳).
      In 1801, Sinyu Bak-hae happened and the visiting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was prohibited in nineteenth century. So, there was not the record of Catholic churches in nineteenth century, but we can find some records that envoys visited Catholic church in Russian embassy in yeonhaengrok (Korean travel literature to Qing China). Korean envoys significantly noticed that the dreadful appearance of Christ on the cross. In 1828, Lee Jae-hup(李在洽) knew why Catholic is not afraid of death because of Christ on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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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18세기 연행사절의 북경 천주당 방문 양상
      • 3.《수기》(隨記)를 통해 본 18세기 말엽 충청도 지역에 유포된 천주교 서적
      • 4. 19세기 연행사절의 아라사관(俄羅斯館) 천주당 방문 양상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18세기 연행사절의 북경 천주당 방문 양상
      • 3.《수기》(隨記)를 통해 본 18세기 말엽 충청도 지역에 유포된 천주교 서적
      • 4. 19세기 연행사절의 아라사관(俄羅斯館) 천주당 방문 양상
      • 5.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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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신익철, "李器之의 ?一菴燕記?와 西學 접촉 양상" 동방한문학회 (29) : 163-191, 2005

      2 "한국고전종합DB"

      3 줄리오 알레니, "직방외기" 일조각 2005

      4 김문식, "조선후기 지식인의 러시아 이해" 한국실학학회 (16) : 349-378, 2008

      5 조광, "조선후기 사회와 천주교" 경인문화사 2010

      6 노대환, "조선 후기의 서학유입과 서기수용론" 83 : 121-154, 1997

      7 김동건, "이기지의 『일암연기』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8 신익철, "연행사와 북경 천주당--18세기 연행록 소재 천주당 기사 집성" 보고사 2013

      9 李繼祜, "연행록전집 96 ․ 97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0 李恒億, "연행록전집 79~84"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 신익철, "李器之의 ?一菴燕記?와 西學 접촉 양상" 동방한문학회 (29) : 163-191, 2005

      2 "한국고전종합DB"

      3 줄리오 알레니, "직방외기" 일조각 2005

      4 김문식, "조선후기 지식인의 러시아 이해" 한국실학학회 (16) : 349-378, 2008

      5 조광, "조선후기 사회와 천주교" 경인문화사 2010

      6 노대환, "조선 후기의 서학유입과 서기수용론" 83 : 121-154, 1997

      7 김동건, "이기지의 『일암연기』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8 신익철, "연행사와 북경 천주당--18세기 연행록 소재 천주당 기사 집성" 보고사 2013

      9 李繼祜, "연행록전집 96 ․ 97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0 李恒億, "연행록전집 79~84"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1 金正中, "연행록전집 75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2 徐有聞, "연행록전집 62~64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3 鄭光忠, "연행록전집 61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4 李德懋, "연행록전집 57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5 李 坤, "연행록전집 53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6 徐浩修, "연행록전집 51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7 韓德厚, "연행록전집 50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8 洪大容, "연행록전집 49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19 嚴 璹, "연행록전집 40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20 金舜協, "연행록전집 38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21 兪拓基, "연행록전집 38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22 趙尙絅, "연행록전집 37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23 趙榮福, "연행록전집 36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24 李宜顯, "연행록전집 35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25 金昌業, "연행록전집 32 ․ 33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26 趙 瑍, "연행록선집보유 中" 2008

      27 白景炫, "연행록선집보유 中" 2008

      28 姜浩溥, "연행록선집보유 下" 2008

      29 李商鳳, "연행록선집보유 上" 2008

      30 李器之, "연행록선집보유 上" 2008

      31 李健命, "연행록선집보유 上"

      32 임기중, "연행록 일본소장편"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01

      33 강재언, "서양과 조선—그 이문화 격투의 역사" 학고재 57-64, 1998

      34 원재연, "서세동점과 조선왕조의 대응" 한들출판사 181-213, 2003

      35 홍대용,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을병연행록" 돌베개 2001

      36 李魯春, "북연긔"

      37 李在洽, "국역 연행록선집" 민족문화추진회 1976

      38 金景善, "국역 연행록선집" 민족문화추진회 1976

      39 朴思浩, "국역 연행록선집" 민족문화추진회 1976

      40 김경선, "국역 燕槎日錄" 의왕향토사료관 2011

      41 조창록, "鶴山 徐浩修의 {熱河紀遊}-18세기 西學史의 수준과 지향-" 국학연구원 (135) : 171-199, 2006

      42 朴宗岳, "隨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43 姜世晃, "豹菴遺稿"

      44 杜赫德, "耶蘇會士中國書簡集" 大象出版社 2005

      45 李頤命, "疎齋集"

      46 朴趾源, "燕巖集"

      47 南泰齊, "椒蔗錄"

      48 장유승, "朴宗岳이 正祖에게 보낸 편지" 2014

      49 費賴之, "在華耶蘇會士列傳及書目" 中華書局 1986

      50 方豪, "中國天主敎史人物傳" 中華書局 1988

      51 김동건, "『一庵燕記』에 나타난 글쓰기 방식" 한국고전번역원 40 (40): 235-264, 2012

      52 임종태, "“서양의 물질문화와 조선의 衣冠”: 李器之의 『一菴燕記』에 묘사된 서양 선교사와의 문화적 교류" 한국실학학회 (24) : 367-401, 2012

      53 임종태, "‘극동(極東)과 극서(極西)의 조우’: 이기지(李器之)의 『일암연기(一菴燕記)』에 나타난 조선 연행사의 천주당 방문과 예수회사와의 만남" 한국과학사학회 31 (31): 377-411, 2009

      54 한영규, "19세기 한중 문인 교류의 새로운 양상 -『赴燕日記』ㆍ「서행록」을 중심으로-" 인문학연구원 (45) : 125-150, 2010

      55 정혜중, "19세기 초 朝鮮 使行 金慶善의 북경체험과 외국정보 이해" 중국사학회 37 (37): 141-170, 2005

      56 신익철, "18세기 연행사와 서양 선교사의 만남" 한국한문학회 (51) : 445-486, 2013

      57 원재연, "17~19세기 연행사의 북경 내 활동공간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6) : 205-26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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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8 0.48 0.4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2 0.39 1.107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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