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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6세기 일본 오산선승의 對中國 집단학습활동을 통한 관련 지식 축적 및 인식 전파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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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일본의 지식인 계층이었던 오산선승들이 집단학습활동을 통해 당시 막부의 인사와 여타 지식인과 공유했던 중국 관련 지식과 對中國 인식의 축적과 전파에 관한 연구이다.
    唐末부터 宋代까지 중국과의 교류를 단절했던 일본은 오로지 선종 승려들에게만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문과 문화의 교류를 이어나가는 것을 허가하였다. 이들 승려들은 일본 幕府 장군들의 정치경제적 후원 속에서 중국을 오가며 중국의 학문과 문화를 전파하였는데, 막부의 후원으로 건립한 오산사찰을 근거지로 鐮倉 시대 말부터 町室 시대(1336-1573)에 이르는 약 250년 동안 중국과 관련된 지식을 쌓고 그 결과를 한문으로 된 시문으로 남겼다. 우리는 이들을 ‘오산선승’이라 부른다. 오산선승은 여타 문인들의 학문 활동이 저조한 했던 시대에, 막부의 정치경제적 후원 속에서, 중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일본 내부의 지식적 기반을 마련한 특별한 문인 계급이었다.
    오산선승이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 사용한 기본 자료는 ‘글’이었다. 물론 실제로 중국을 왕래하고 중국의 실상을 접한 승려들도 있었지만 중국을 글로 배울 수밖에 없는 승려들이 절대 다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에 소장하고 있던 다양한 중국 서적을 기반으로 중국과 관련된 지식을 공유하는 ‘집단학습’을 이어나갔다. 오산선승들의 집단학습은 강독회와 시회가 중심이 되었으며 여기에는 승려는 물론이고 막부의 무사, 武家 시대에 조정에 출사한 지식인인 公家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의 집단학습 내용은 오산선승들의 집단학습 결과물인 한문으로 작성된 시문을 통해 유추 가능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산선승들이 집단학습을 통해 얻은 중국에 대한 지식과 대중국 인식을 뒷받침할 만한 그들의 저작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서적이 바로 ≪翰林五鳳集≫이다.
    둘째, 작시한 승려들의 신원을 대부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중에는 오산사찰의 주지 등 일본의 정치와 문화 방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유력 승려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셋째, 오산선승들의 집단학습의 영향력은 사찰 내부에 국한되지 않고 당시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막부 인사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끼칠 만큼 권위를 지닌 것이었다. 이는 豊臣秀吉의 양자인 豊臣秀次(1568-1595)가 관여했던 “五山月次聯句詩會”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들의 학습 활동은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학습하고 수용하는 문화 활동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축적한 중국에 대한 지식, 그 지식을 재편함으로써 그려낸 ‘중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은 분명 당시 막부의 정치인들에게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도록 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학습 결과물은 낱낱이 막부 인물들에게 설명되고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오산선승들의 저작으로 볼 때 그들이 중국 관련 지식을 쌓은 분야가 매우 다양하고 주도면밀함을 알 수 있다.
    다섯째, 그들은 중국을 흠모의 눈길만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중국을 철저히 이해하고자 하는 주도면밀한 학습 활동 속에서 각 인물과 역사 사실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가하였다.
    본 연구자는 국적을 뛰어넘어 동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중국을 인식하는 방식과 내용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대중국 인식의 역사적 변천을 비교 고찰할 수 있는 내용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자가 오산선승의 활동을 연구할 때 오히려 중국이 중국의 것을, 일본이 일본의 것을 연구하는 것보다 객관성이 담보된 시각을 견지할 수 있으며, 한시와 한문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필자가 오산선승의 저작을 연구할 때 보다 정치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결과 복잡한 세계 정세 속에서 중국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변화와 행위에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던 오산선승들의 답변을 논문 결과로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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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일본의 지식인 계층이었던 오산선승들이 집단학습활동을 통해 당시 막부의 인사와 여타 지식인과 공유했던 중국 관련 지식과 對中國 인식의 축적과 전파에 관한 연구이다. 唐...

    본 연구는 일본의 지식인 계층이었던 오산선승들이 집단학습활동을 통해 당시 막부의 인사와 여타 지식인과 공유했던 중국 관련 지식과 對中國 인식의 축적과 전파에 관한 연구이다.
    唐末부터 宋代까지 중국과의 교류를 단절했던 일본은 오로지 선종 승려들에게만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문과 문화의 교류를 이어나가는 것을 허가하였다. 이들 승려들은 일본 幕府 장군들의 정치경제적 후원 속에서 중국을 오가며 중국의 학문과 문화를 전파하였는데, 막부의 후원으로 건립한 오산사찰을 근거지로 鐮倉 시대 말부터 町室 시대(1336-1573)에 이르는 약 250년 동안 중국과 관련된 지식을 쌓고 그 결과를 한문으로 된 시문으로 남겼다. 우리는 이들을 ‘오산선승’이라 부른다. 오산선승은 여타 문인들의 학문 활동이 저조한 했던 시대에, 막부의 정치경제적 후원 속에서, 중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일본 내부의 지식적 기반을 마련한 특별한 문인 계급이었다.
    오산선승이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 사용한 기본 자료는 ‘글’이었다. 물론 실제로 중국을 왕래하고 중국의 실상을 접한 승려들도 있었지만 중국을 글로 배울 수밖에 없는 승려들이 절대 다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에 소장하고 있던 다양한 중국 서적을 기반으로 중국과 관련된 지식을 공유하는 ‘집단학습’을 이어나갔다. 오산선승들의 집단학습은 강독회와 시회가 중심이 되었으며 여기에는 승려는 물론이고 막부의 무사, 武家 시대에 조정에 출사한 지식인인 公家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의 집단학습 내용은 오산선승들의 집단학습 결과물인 한문으로 작성된 시문을 통해 유추 가능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산선승들이 집단학습을 통해 얻은 중국에 대한 지식과 대중국 인식을 뒷받침할 만한 그들의 저작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서적이 바로 ≪翰林五鳳集≫이다.
    둘째, 작시한 승려들의 신원을 대부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중에는 오산사찰의 주지 등 일본의 정치와 문화 방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유력 승려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셋째, 오산선승들의 집단학습의 영향력은 사찰 내부에 국한되지 않고 당시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막부 인사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끼칠 만큼 권위를 지닌 것이었다. 이는 豊臣秀吉의 양자인 豊臣秀次(1568-1595)가 관여했던 “五山月次聯句詩會”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들의 학습 활동은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학습하고 수용하는 문화 활동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축적한 중국에 대한 지식, 그 지식을 재편함으로써 그려낸 ‘중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은 분명 당시 막부의 정치인들에게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도록 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학습 결과물은 낱낱이 막부 인물들에게 설명되고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오산선승들의 저작으로 볼 때 그들이 중국 관련 지식을 쌓은 분야가 매우 다양하고 주도면밀함을 알 수 있다.
    다섯째, 그들은 중국을 흠모의 눈길만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중국을 철저히 이해하고자 하는 주도면밀한 학습 활동 속에서 각 인물과 역사 사실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가하였다.
    본 연구자는 국적을 뛰어넘어 동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중국을 인식하는 방식과 내용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대중국 인식의 역사적 변천을 비교 고찰할 수 있는 내용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자가 오산선승의 활동을 연구할 때 오히려 중국이 중국의 것을, 일본이 일본의 것을 연구하는 것보다 객관성이 담보된 시각을 견지할 수 있으며, 한시와 한문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필자가 오산선승의 저작을 연구할 때 보다 정치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결과 복잡한 세계 정세 속에서 중국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변화와 행위에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던 오산선승들의 답변을 논문 결과로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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