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클라이스트 연구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어 온, 현실의 잘못된 인식이 작중세계에서 그려진 갈등 및 파국적인 결말의 근원이라는 시각을 수정해서 그것을 의사소통의 차원으로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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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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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클라이스트 연구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어 온, 현실의 잘못된 인식이 작중세계에서 그려진 갈등 및 파국적인 결말의 근원이라는 시각을 수정해서 그것을 의사소통의 차원으로 재정...
이 연구는 클라이스트 연구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어 온, 현실의 잘못된 인식이 작중세계에서 그려진 갈등 및 파국적인 결말의 근원이라는 시각을 수정해서 그것을 의사소통의 차원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이다.
소통 상황은 사회의 근본적인 상황이다. 소통에 참여한 소통 파트너들은 이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해 스스로 구성한 기대를 바탕으로 상대방에 소통제안을 하고, 상대방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에 대응한다. 이를 통해서 둘 사이에서 객관적이고 실체를 띤 사회 현실이 구성되고, 개인 각자는 스스로 구성한 이 사회 현실 속에서 타자와의 소통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간다. 클라이스트에게 소통파트너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이상적인 소통 상황이란 극히 비개연적이다. 클라이스트에게서 현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이 현실에 대한, 즉 언표된 내용이나 일어난 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 해석은 개인의 주관에 의해서 불가능하다. 동일한 사태를 보더라도 저마다 다른 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개인 주관성의 한계는 - 이해관계가 걸려있을 때 - 소통의 한계를 수반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즉 소통의 한계성이 클라이스트의 거의 전 작품의 출발점이 된다.
로시츠의 루퍼트 백작과 바르반트의 실베스터 백작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슈로펜슈타인가”는 인물들 간의 대화 상황을 명백하게 보여줌으로써 인간 갈등이 바로 이같은 소통의 한계에서 비롯함을 분명히 드러낸다. 여기서 기존의 연구들은 루퍼트 백작을 악으로, 실베스터 백작을 선으로 간주하면서 이 희곡의 비극성을 선/악의 구도로 파악하고 있는데, 사건의 흐름을 소통의 차원에서 분석해보면 이 선/악의 구도가 허구임이 드러난다.
소통 한계상황의 싹은 슈로펜슈타인가의 영속성을 보장하려는 목적에서 루퍼트 백작가와 실베스터 백작가 사이에 오래전에 체결된 “상속계약”에서 자라난다. 한쪽 가문의 상속자가 없을 경우 다른 쪽 가문이 모든 것을 이양 받는다는 이 계약은 가문의 일원이 죽어가는 현실을 서로 상대방의 짓이라고 의심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루퍼트 백작 둘째 아들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살인자로 체포된 기사의 입에서 “실베스터”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사건의 정황은 루퍼트에게 분명해진다. 게다가 실베스터 가문에 보낸 사자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사생아도 그곳의 기사인 예로니무스에 의해서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보이는 한없는 분노와 적대감은 전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 악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분노와 적대감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가 사건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목격자들을 불러와서 그들로부터 그와 같은 내용의 보고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보고는 그들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해석된 내용으로서 소통의 한계상황은 더 극으로 치달아갈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작품에서 그 어떤 편견도 갖지 않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려는 긍정적인 인물로 형상화 되는 실베스터 백작은 모든 것은 오해에서 비롯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자기에게 적대적인 현실을 강요해오는 루퍼트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이 새로운 현실에서 그는 루퍼트와 마찬가지로 무력이란 수단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사회현실의 근본적인 상황이 묘사되는데, 자아와 타자 둘 이상이 참여해서 이루어지는 사회현실은 결코 어떤 한 개인에 의해서 독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타자가 자신을 포괄하는 얼토당토 않은 현실을 강요해 올 때, 아무리 현실을 올바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그 현실의 존재 자체는 더 이상 부인될 수 없는 것으로 그 현실 안에서 새로운 처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실베스터는 그에 대항하는 전쟁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그 역시 결국 루퍼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비극을 낳게 되는 것이다. 소통의 한계상황은 아버지들로 하여금 자식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만드는 패러독스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극명하게 자신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