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주자학의 패러다임에 이론적으로 맞대결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 철학체계를 수립하는데, 그 특징을 들자면, 맹자의 사단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기호로 전환...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G3687988
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정약용은 주자학의 패러다임에 이론적으로 맞대결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 철학체계를 수립하는데, 그 특징을 들자면, 맹자의 사단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기호로 전환...
정약용은 주자학의 패러다임에 이론적으로 맞대결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 철학체계를 수립하는데, 그 특징을 들자면, 맹자의 사단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기호로 전환시키고, 인의예지라는 사덕은 인간의 내면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그 결과로 주어지는 덕성임을 주장한 소위 ‘性嗜好說’을 비롯하여, 심에 대한 새로운 해석(性, 才, 勢)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입론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심성론을 주창한 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에도시대에 살았던 고학의 창시자 이토 진사이가 바로 그 사람으로, 일본 사상사의 한 획을 그은 그는 이미 정약용보다 수십 년 전에 이와 흡사한 학설을 제시하였다. 초기 주자학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그는 맹자 사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거치면서, 오히려 주자학을 신랄히 비판하고 주희가 왜곡시키기 이전의 본원적 유교 즉 공맹의 철학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그는 인의예지 사덕이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발휘된 것이 사단이라고 보는 주희에 반대하고, 사단만이 고유한 것이고 사덕은 현실 속에서 사단을 확충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性이란 본래 갖추고 태어나는 것이며 그 성은 선으로 나아가는 경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성선’이 주장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사상적 토대 위에서 이러한 사상을 제출했던 것일까. 그들은 동일한 사상적 연원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므로 연구가 진행되면서 더욱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해지겠지만, 현시점에서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약용은 젊어서부터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것을 탐독했었다. 『천주실의』는 내세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주장하고, 인간 각자의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행위가 내세를 결정하게 된다고 본다. 만일 인간이 본래 ‘선’을 갖추고 태어난다면 그의 선한 행위는 결코 그 개인의 공업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천당이라는 보상도 주어질 수 없다. 이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행위의 보상으로 천당에서의 영락을 보장해주게 되는데, 이것은 천주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하에서 인간의 본성은 ‘선’이 아니라 선에 대한 경향성만을 갖고 있고, 선이란 실천 후에 결과로써 얻어지는 품성임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이토 진사이의 인성론은 ‘人情’의 자각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살던 당시의 일본은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상인의 지위 보장과 利 추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진사이는, 철저히 이욕을 부정했던 주희는 구체적 생활세계를 경시하고 형이상적 허무론에 빠져버렸다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인성론을 수립한다. 그는 사덕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라는 ‘선의 경향성’을 현실 속에서 실천할 때 얻어지는 결과물로 해석고, 그 선의 경향성이란 다름 아닌 ‘인정’이고, 이는 자연스런 인간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利를 추구하는 마음’도 포함된다고 본다. 공맹의 사상은 바로 이 ‘인정’을 실현하라는 가르침이라고 본 그는, ‘인정의 실현’이라는 슬로건 속에서 利를 추구하는 마음도 사덕 실현의 전제로 열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인성론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다다르는 경로는 달랐다는 것이 신청자의 생각이다. 물론 양자 모두 청대 고증학자의 영향을 받고 있고 또한 정약용에게도 진사이와 같은 전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연원은 서로 다르며, 결과 그들 사상의 전체적 모습도 확연히 달라진 것이라 추측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사실 이것이 본 과제의 핵심문제이기도 한데, 다름이 아니라 이토 진사이가 정약용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약용은 일찍이 일본의 고학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들의 학설에 대해 긍정적인 평을 내리고 있다. 그는 이토 진사이의 『論語古義』를 이미 보았고, 이후 자신의 『論語古今註』를 저술한다. 상세한 것은 양서는 물론 맹자에 대한 주석서 등도 자세히 분석한 뒤에야 알 수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양자의 영향관계를 상정해보는 것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미 양자의 관계에 주목한 학자들도 없지 않다. 다만 그들의 연구 성과에서는 그들 심성론의 연원이나, 결국은 다른 철학으로 전개되는 이유, 양자의 영향관계에 대해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신청인은 본 과제에서 그들의 주석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기존 연구의 성과 위에서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