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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사대부 李奭祚 『輯說』의 均田論 = Suwon Scholar-Official (nobility) Lee Seok Jo(Scholar Lee)"s The Equal-Field System of Compiling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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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정조는 신읍치 수원 大有屯田에서 井田을 시행함으로서 일부라도 전제개혁의 시작을 삼고자 하였다. 정조는 국영농장인 대유둔에서 먼저 시범적으로 井田을 시행한 후에 여타 다른 둔전에서도 병농일치를 확대․시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李奭祚 또한 井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10개의 항목으로 분석해서 주장하였다. 따라서 정조와 이석조의 전제개혁론의 주장 배경은 신읍치 수원을 위한 정책으로서 民産과 戎政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兵農一致의 방안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석조는 富豪들의 토지 겸병과 현행 결부법에 대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董仲舒의 ‘限民名田’을 지금의 법으로 삼아 백성 소유의 전토에서 상한선을 한정하는 ‘限田’을 주장하였다. 이석조는 부호들의 토지 겸병에 따른 점유를 점진적으로 억제하고 적정한 농지를 소유토록 하여 신분에 따라 결부의 수대로 부세를 납부하는 ‘均田’으로의 전제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석조가 ‘限田’에서 주장하는 바는 모든 백성들이 제대로 된 양전을 통해 均田을 분급 받아서 규정에 따라 결부를 납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석조는 부호들이 토지를 兼竝할 수 있도록 폐단을 만든 현행 결부법을 개혁하여, 소농이 토지를 쉽게 소유한다면 백성들의 民産이 다스려질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신분제를 인정하는 제한적 개혁론이겠으나 이석조는 신분별 결부의 수와 토지 분급의 기준을 제시하여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석조는 ‘限田’의 개혁은 故家世族이라도 갑자기 가난해 지는 일이 없으며, 부유한 士民들도 토지를 급하게 빼앗기는 원망이 없이 10년을 기다리면 鄕約이 이루어져 이것을 이용을 할 수 있어서 ‘均田’이 행해질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와 같이 누대로 일용면 지역에서 살아왔던 여주이씨 가문인 노론의 인물 이석조가 제안하는 전제개혁론인 ‘限田’은 정조에게 화성의 육성책으로서 그 시행 가능성을 촉구했던 것으로 판단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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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는 신읍치 수원 大有屯田에서 井田을 시행함으로서 일부라도 전제개혁의 시작을 삼고자 하였다. 정조는 국영농장인 대유둔에서 먼저 시범적으로 井田을 시행한 후에 여타 다른 둔전에...

    정조는 신읍치 수원 大有屯田에서 井田을 시행함으로서 일부라도 전제개혁의 시작을 삼고자 하였다. 정조는 국영농장인 대유둔에서 먼저 시범적으로 井田을 시행한 후에 여타 다른 둔전에서도 병농일치를 확대․시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李奭祚 또한 井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10개의 항목으로 분석해서 주장하였다. 따라서 정조와 이석조의 전제개혁론의 주장 배경은 신읍치 수원을 위한 정책으로서 民産과 戎政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兵農一致의 방안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석조는 富豪들의 토지 겸병과 현행 결부법에 대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董仲舒의 ‘限民名田’을 지금의 법으로 삼아 백성 소유의 전토에서 상한선을 한정하는 ‘限田’을 주장하였다. 이석조는 부호들의 토지 겸병에 따른 점유를 점진적으로 억제하고 적정한 농지를 소유토록 하여 신분에 따라 결부의 수대로 부세를 납부하는 ‘均田’으로의 전제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석조가 ‘限田’에서 주장하는 바는 모든 백성들이 제대로 된 양전을 통해 均田을 분급 받아서 규정에 따라 결부를 납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석조는 부호들이 토지를 兼竝할 수 있도록 폐단을 만든 현행 결부법을 개혁하여, 소농이 토지를 쉽게 소유한다면 백성들의 民産이 다스려질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신분제를 인정하는 제한적 개혁론이겠으나 이석조는 신분별 결부의 수와 토지 분급의 기준을 제시하여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석조는 ‘限田’의 개혁은 故家世族이라도 갑자기 가난해 지는 일이 없으며, 부유한 士民들도 토지를 급하게 빼앗기는 원망이 없이 10년을 기다리면 鄕約이 이루어져 이것을 이용을 할 수 있어서 ‘均田’이 행해질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와 같이 누대로 일용면 지역에서 살아왔던 여주이씨 가문인 노론의 인물 이석조가 제안하는 전제개혁론인 ‘限田’은 정조에게 화성의 육성책으로서 그 시행 가능성을 촉구했던 것으로 판단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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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ccording to Relocation of the Crown prince Sado"s Tomb(equivalent to Royal tomb, called Hyunrungwon), the methodology was planed to promote a new town Suwon(a kind of second capital city). Ilyoung-Myun was belonged to Kwangju but it was replaced to Suwon in the period of King Jungjo‘s era(13th year of King Jungjo"s reign 1789). Scholar Lee"s family have lived ILyoung-Myun for generations.
    He passed the state exam for special test of Suwon when he was 81. Under the King Jungjo"s concern, Scholar Lee wrote the book for the Statecraft. Lee has arranged the Compiling Record with 2 chapters and 4 books in June1795(19th of King Jungjo"s reign) and hand in to the King Jungjo together with the appeals for Improvement of Hwasung(Suwon city changed to Hwasung metro city in Jungjo"s reign). This book is required the research due to it was included the change of circumstance of Suwon area in the period of construction of Hwasung fortress. In this book of "Jaeminsan"(special addition of Compiling of Record), Lee was searching the basics of system from the Rites of Chou and also has declared the Land system reforms in detail. Lee ha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Well-field model and has arranged the analysis with 12 points against the argument insisting impractical. However He recognized the difficulties of executing the Well-field system and pointed out the negative effect of fertility of field system and accumulating large amounts of land of the rich nobilities. Therefore Scholar Lee wanted to follow the limits on land privately occupied at that time. He thought that it could be practical to limit the cultivated land of people"s own and express the limited-field. It means the limited-field which is his reform of autocracy needed the limit of possession of land a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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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cording to Relocation of the Crown prince Sado"s Tomb(equivalent to Royal tomb, called Hyunrungwon), the methodology was planed to promote a new town Suwon(a kind of second capital city). Ilyoung-Myun was belonged to Kwangju but it was replaced to S...

    According to Relocation of the Crown prince Sado"s Tomb(equivalent to Royal tomb, called Hyunrungwon), the methodology was planed to promote a new town Suwon(a kind of second capital city). Ilyoung-Myun was belonged to Kwangju but it was replaced to Suwon in the period of King Jungjo‘s era(13th year of King Jungjo"s reign 1789). Scholar Lee"s family have lived ILyoung-Myun for generations.
    He passed the state exam for special test of Suwon when he was 81. Under the King Jungjo"s concern, Scholar Lee wrote the book for the Statecraft. Lee has arranged the Compiling Record with 2 chapters and 4 books in June1795(19th of King Jungjo"s reign) and hand in to the King Jungjo together with the appeals for Improvement of Hwasung(Suwon city changed to Hwasung metro city in Jungjo"s reign). This book is required the research due to it was included the change of circumstance of Suwon area in the period of construction of Hwasung fortress. In this book of "Jaeminsan"(special addition of Compiling of Record), Lee was searching the basics of system from the Rites of Chou and also has declared the Land system reforms in detail. Lee ha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Well-field model and has arranged the analysis with 12 points against the argument insisting impractical. However He recognized the difficulties of executing the Well-field system and pointed out the negative effect of fertility of field system and accumulating large amounts of land of the rich nobilities. Therefore Scholar Lee wanted to follow the limits on land privately occupied at that time. He thought that it could be practical to limit the cultivated land of people"s own and express the limited-field. It means the limited-field which is his reform of autocracy needed the limit of possession of land a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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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서론
    • 2. 正祖와 李奭祚의 井田 인식
    • 3. 신읍치 수원 大有屯의 井田 시행
    • 4. 李奭祚 『輯說』 均田論의 특성
    • [국문요약]
    • 1. 서론
    • 2. 正祖와 李奭祚의 井田 인식
    • 3. 신읍치 수원 大有屯의 井田 시행
    • 4. 李奭祚 『輯說』 均田論의 특성
    • 5. 결론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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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화성성역의궤"

    2 "홍재전서"

    3 홍원섭, "태호집"

    4 장필기, "조선후기의 수도방위체제" 서울학연구소 1998

    5 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연구 Ⅱ" 일조각 1995

    6 최윤오, "조선후기 토지개혁론과 토지공개념" 역사문제연구소 (66) : 40-54, 2004

    7 김준석, "조선후기 정치사상사 연구" 지식산업사 2003

    8 김문식, "조선후기 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9 최홍규, "정조의 화성 건설" 일지사 2001

    10 김문식, "정조의 생각" 글항아리 2011

    1 "화성성역의궤"

    2 "홍재전서"

    3 홍원섭, "태호집"

    4 장필기, "조선후기의 수도방위체제" 서울학연구소 1998

    5 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연구 Ⅱ" 일조각 1995

    6 최윤오, "조선후기 토지개혁론과 토지공개념" 역사문제연구소 (66) : 40-54, 2004

    7 김준석, "조선후기 정치사상사 연구" 지식산업사 2003

    8 김문식, "조선후기 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9 최홍규, "정조의 화성 건설" 일지사 2001

    10 김문식, "정조의 생각" 글항아리 2011

    11 최형국,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 경인문화사 2015

    12 정옥자, "정조와 정조대 제반정책" 서울학연구소 (51) : 1-24, 2013

    13 김준혁, "정조시대 壯勇營外營의 兵農一致 군제개혁 구상과 屯田經營" 한국사연구회 (168) : 95-129, 2015

    14 최홍규, "정조대 對華城 농업진흥정책과 농업생산력 발전-특히 水利政策과 농업환경의 변화를 중심으로-" 국사편찬취원회 89 : 2000

    15 박찬승, "정약용의 정전제론 고찰-“경세유표” ‘전제’를 중심으로-" 歷史學會 1986

    16 방범석, "장용영의 편제와 재정운영" 서울대학교대학원 2015

    17 "일성록"

    18 "일득록"

    19 김선경, "유형원의 이상국가 기획론-재정부문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25 : 177-222, 2004

    20 윤대식, "유형원의 개혁론 : 진보인가 복고인가"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18 (18): 2006

    21 정호훈, "우하영의 학문과 『천일록』의 사상사적 위상 -17・18세기 경세학의 흐름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48) : 155-199, 2014

    22 "왕조실록"

    23 이정철, "연암일파북학사상연구" 일지사 1995

    24 "여지도서"

    25 "승정원일기"

    26 송시열, "송자대전"

    27 이익, "성호전집․ 藿憂錄"

    28 양응수, "백수집"

    29 유형원, "반계수록"

    30 이정철, "반계 유형원의 전제개혁론(田制改革論)과 그 함의" 한국역사연구회 (74) : 453-486, 2009

    31 정구복, "반계 유형원의 생애와 사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32 최윤오, "반계 유형원의 봉건‧군현론과 공전제" 국학연구원 (161) : 245-286, 2013

    33 홍대용, "담헌집"

    34 안병직, "다산의 정치경제 사상" 창작과 비평사 1990

    35 한원진, "남당집"

    36 "국조문과방목"

    37 수원박물관, "국역輯說 Ⅱ(리․정)" 수원박물관 2015

    38 수원박물관, "국역輯說 Ⅰ(원․형)" 수원박물관 2013

    39 김성윤, "경세론에서 본 실학" 한국실학학회 26 : 169-212, 2013

    40 여주이씨역대인물지간행위원회, "麗州李氏歷代人物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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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강문식, "韓國學報 82" 일지사 1996

    43 李奭祚, "輯說 欽安堂遺稿"

    44 박지원, "燕巖集"

    45 裵祐晟, "正祖年間 武班軍營大將과 軍營政策" 서울대학교 24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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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이정철, "正祖代政局동향과 華城城役의 추이" 19 : 1996

    48 최형국, "正祖代 華城 방어체제에 따른壯勇營의 군사조련과 무예훈련" 중앙사학연구소 38 : 125-15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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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송찬섭, "正祖代 壯勇營 屯田의 설치와 운영" 32 : 2001

    51 조준, "松堂集"

    52 李泰鎭, "朝鮮後期의 政治와 軍營制變遷" 韓國硏究院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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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송양섭, "朝鮮後期 屯田 硏究" 경인문화사 2006

    55 김용섭, "朝鮮後期 土地改革論의 推移"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62 : 1989

    56 金俊爀, "朝鮮 正祖代 壯勇營 硏究" 중앙대학교 2007

    57 황미숙, "18세기 말 수원 사대부, 李奭祚의 華城 진흥책" 한국역사민속학회 (49) : 236-268, 2015

    58 염정섭, "18세기 말 華城府 수리시설 축조와 屯田 경영" 한국농업사학회 9 (9): 55-96, 2010

    59 송양섭, "18세기 屯田의 守令收取制 확산과 그性格" 고려사학회 (11) : 2001

    60 김용섭, "18,9 世紀 農業實情과 새로운 農業經營論"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9 : 1972

    61 송양섭, "17세기 군영문 둔전의 확대와 경영형태의 변화" 한국역사연구회 36 : 2000

    62 정호훈, "17세기 體制 改革論의 전개와 周禮" 한국실학학회 10 : 151-19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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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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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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