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영산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상당히 발달하였 다. 마한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고조선계 유민의 유입과 그 문화의 영향이 짙 게 나타난다. 그에 비추어 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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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국 (강원대학교)
2025
Korean
Mahan ; Shinmijeguk ; burial jars ; Yeongsan River basin ; 마한 ; 신미제국 ; 옹관 ; 영산강유역
KCI등재
학술저널
39-75(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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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영산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상당히 발달하였 다. 마한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고조선계 유민의 유입과 그 문화의 영향이 짙 게 나타난다. 그에 비추어 볼 ...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영산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상당히 발달하였 다. 마한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고조선계 유민의 유입과 그 문화의 영향이 짙 게 나타난다. 그에 비추어 볼 때 우월한 세력 집단의 존재가 상정되는데, 적어도 4개의 거대 세력 집단이 있었고 이를 각각 하나의 ‘國’으로 비정해 볼 수 있다. 2~3세기 영산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앞 시대에 비해 쇠퇴한 양상이다. 전반적인 물질문화의 변동이 확인되는 가운데 지역의 세력 집단이 재편되는 흐름이다. 3 세기 후반 들어 거대 분구묘에 대형 옹관이 매장되는 특징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동력은 호서지역 마한 세력과의 교류에 있었다고 판단한다.
진서 장화전에 등장하는 마한 신미제국은 거의 모든 연구자가 전남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신미제국은 일본서기의 ‘침미다례’ 또는 <양직공도>의 ‘지 미’와 같은 실체 논의되기도 하는데, 이 글에서는 별개로 파악하였다. 영산강 유 역 물질문화의 변동과 지형지세에 비추어 볼 때 신미제국은 전남 지역 안에서도 영산강 내해 안쪽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280년대 신미제국이 국제무대에 등장함 은 영산강 유역에서 거대 분구묘와 대형 옹관이 등장하는 추이와 일치한다. 3세 기 영산강 유역의 세력 집단은 이웃한 마한 세력과의 중장거리 교역 및 상호 긴 밀한 교류를 통해 성장하였고, 그러한 배경에서 신미제국과 낙랑·대방군과의 교 섭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From the 2nd century BC to the 1st century AD, the material culture of the Yeongsan River basin underwent significant development. Among all the regions of Mahan(馬韓), this area was the most influenced by the mig...
From the 2nd century BC to the 1st century AD, the material culture of the Yeongsan River basin underwent significant development. Among all the regions of Mahan(馬韓), this area was the most influenced by the migration of refugees from Gojoseon(古朝鮮) and their culture. Given this, it is presumed that a dominant power group existed in the region, with at least four major political entities, each of which could be considered a ‘state.’ However, in the 2nd and 3rd centuries, the material culture of the Yeongsan River basin experienced a decline compared to the previous period. The overall cultural landscape shifted, and the region's power groups underwent reorganization. In the latter half of the 3rd century, large burial jars began to appear in tumuli, a phenomenon believed to be linked to interactions with Mahan forces in the Hoseo region.
Most researchers agree that the Shinmijeguk(新彌諸國), mentioned in the the Janghwajeon(張華傳) of the Jinshu(晉書), was located in the Jeonnam region. While Shinmijeguk is sometimes equated with ‘Chimmidarye(忱彌多禮)’ in the Nihonshoki(日本書紀) or ‘Jimi(止迷)’ in the Liangzhigongtu(梁職貢圖), this article treats it as a distinct place name. Considering the changes in material culture and the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the Yeongsan River basin, it is believed that Shinmijeguk was situated within the inland sea of the Yeongsan River in the Jeonnam region.
The emergence of Shinmijeguk in international exchanges during the 280s aligns with the rise of large tumuli and burial jars in the Yeongsan River basin. In the 3rd century, the region's power groups grew through medium- to long-distance trade and close interactions with neighboring Mahan forces. Within this context, it is understood that Shinmijeguk established connections with Lo-Lang and Daebang command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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