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논쟁은 조선 후기의 고승이었던 백파(白坡)과 초의(草衣) 사이에서 촉발된 선(禪)에 대한 교리논쟁을 말한다. 이 논쟁이 주목받는 것은 논쟁이 촉발된 이후 반론과 재반론이 거듭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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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논쟁은 조선 후기의 고승이었던 백파(白坡)과 초의(草衣) 사이에서 촉발된 선(禪)에 대한 교리논쟁을 말한다. 이 논쟁이 주목받는 것은 논쟁이 촉발된 이후 반론과 재반론이 거듭되면서 ...
선문논쟁은 조선 후기의 고승이었던 백파(白坡)과 초의(草衣) 사이에서 촉발된 선(禪)에 대한 교리논쟁을 말한다. 이 논쟁이 주목받는 것은 논쟁이 촉발된 이후 반론과 재반론이 거듭되면서 무려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논쟁이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례는 한국불교 1700년의 역사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백파는 1811년 경 선문수경(禪門手鏡)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선(禪)의 종류를 조사선, 여래선, 의리선으로 구분하고 이를 삼종선(三種禪)이라고 했다. 그러나 백파의 주장은 곧바로 반론에 직면했다. 당대의 고승이었던 초의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라는 저술을 통해 백파의 주장을 반박했기 때문이다. 이 후 이 논쟁은 성철에 이르기까지 7명의 고승이 참여하였으며, 논쟁과 관련된 저술도 6권이나 집필되었다.이상과 같은 선문논쟁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논쟁이 특정 인물이나 문중에 치우치지 않고 불교적 교리논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백파와 초의는 서로 문파가 달랐기 때문에 자칫 문중간의 대립으로 전개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논쟁에 참여했던 인물 중에는 백파의 문도도 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초의를 두둔했다. 이것은 당대 교단이 가족적 질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에 대한 고민과 비판정신이 살아 있었음을 보여준다.둘째, 선문논쟁은 당대 승려들에게 일대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파는 당시 이미 정설이 된 선론(禪論)에 안주하지 않고 삼종선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물론 이는 거센 반발에 직면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당대 승려들에게 선리(禪理)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종지에 대한 자각을 촉하는 계기가 되었다.셋째, 선문논쟁은 조선 후기 불교계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교단은 억불이라는 시대적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야 말로 불교의 새로운 중흥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선문논쟁이다. 삼종선과 이종선 논쟁을 100년 가까이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살아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Seonmun nonjaeng(禪門論爭) refers to the dispute on the tenets of Zen Buddhism sparked by the two prominent Buddhist monks of the late Joseon Dynasty, Baekpa(白坡) and Choui(草衣). The dispute is noticeable, because it continued more than one ...
Seonmun nonjaeng(禪門論爭) refers to the dispute on the tenets of Zen Buddhism sparked by the two prominent Buddhist monks of the late Joseon Dynasty, Baekpa(白坡) and Choui(草衣). The dispute is noticeable, because it continued more than one century, alternating attacks and counterattacks. Even looking back over the entire history of Korean Buddhism spanning seventeen centuries, the dispute is considered as a rare case. Baekpa wrote a book titled Seonmun sugyeong(禪門水鏡)_in 1811, in which he classified Zen into the following three and called them three Zens: pattiarchal Zen, tathagata Zen and theoretical Zen. His argument, however, soon faced a counterattack. Choui, another prominent monk of that time, refuted Baekpa's argument in his book, Seonmun sabyeon-maneo(禪門四辨漫語). Afterwards, seven highly virtuous monks including Seongcheol participated in the dispute, and up to six books were published in relation to the dispute. The dispute on the tenets of Zen is meaningful in three aspects. First, the dispute developed into the dispute on Buddhist tenets without being lopsided toward a particular person or a clan. As Baekpa and Choui came from different clans, there was a possibility that the dispute might develop into the confrontation between two different clans. However, of Baekpa's followers who participated in the dispute, some supported Choui. This shows that the religious body at that time put more values on religious norms than on family order.Second, the dispute provided an opportunity to urge Buddhist monks at that time to reflect upon themselves. Paekpa refused to remain complacent about the established tenet of Zen and presented a new tenet called three Zens. His argument provoked harsh counterattacks, but served as an opportunity to lead monks at the time to have interest in the tenets of Zen, and urge them to realize the fundamental meaning of the tenet. Third, the dispute serves as a basis for the assessment of the Buddhist circle of the late Joseon Dynasty. As has been widely noted, Buddhism was suppressed in the Joseon period. Some, however, argue that Buddhism flourished again in the late Josen period. It is the dispute on the tenets of Zen that gives weight to their argument. One century-old dispute over two versus three Zens indicates that Buddhist monks ceaselessly inquired into their identitie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영태, "한국불교사 개설" 경서원 1993
2 최성열, "초의선사의 선문사변만어 분석 in: 천태사상과 동양문화" 불지사 1997
3 성본, "초의 스님이 제시한 선불교의 본질" (19) : 1996
4 조계종교육원, "조계종 표준 금강경" 조계종출판사 2009
5 김종명, "불교 연구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교훈 in: 논쟁으로 보는 불교철학" 예문서원 2002
6 한기두, "백파의 선문수경" 4 : 1969
7 김방룡, "백파의 삼종선 사상 및 조선후기 불교계에 끼친 영향" 한국동양철학회 24 (24): 25-46, 2005
8 최일범, "백파선사:삼종선 논쟁 일으킨 종문의 거인 in: 한국불교 인물사상사" 민족사 1997
9 임종욱, "백파 스님의 삼종선과 『선문수경』" (19) : 1996
10 退翁性撤, "韓國佛敎의 法脈" 장경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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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退翁性撤, "韓國佛敎의 法脈" 장경각 1976
11 한기두, "草衣의 四辨漫語" 5 : 1970
12 김준형, "草衣禪師 in: 한국불교인물사상사" 민족사 1990
13 白坡亘璇, "禪門手鏡"
14 草衣意恂, "禪門四辨漫語"
15 한기두, "朝鮮末期의 禪論 in: 韓國禪思想硏究" 동국대학교출판부 1984
16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下篇"
17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上篇"
18 "『鎮州臨濟慧照禪師語錄』 (大正藏47)"
19 "『祖庭事苑』 (大正藏64)"
20 "『圓悟錄』 (大正藏47)"
21 "『中論』 (大正藏30)"
提婆達多 破僧伽의 지지세력 고찰 Ⅱ- 비핵심동조자를 중심으로 -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8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2-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9-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6-04-29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韓國禪學(한국선학) -> 禪學(선학) | ![]() |
| 2016-02-04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Korean Seon Studies -> The Korean Society for Seon Studies | ![]() |
| 2016-02-03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Seon Studies -> Journal of Seon Studies | ![]() |
| 2016-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2-01-01 | 등재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
| 2009-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8-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7-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
| 2005-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68 | 0.68 | 0.6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59 | 0.56 | 1.142 | 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