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한국 고대의 인구를 추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이용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운데 『삼국유사』의 기록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의 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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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Korean
『삼국유사』 ; 『삼국지』 ; 진한조 ; 삼국 ; 호구 ; 인구 ; 삼국 전성시기 ; 『Samguk-Yusa』 ; 『Samgukji』 ; Jinhan Articles ; the Three Kingdoms ; number of houses and families ; population ; The Three Kingdoms' heyday
KCI등재
학술저널
399-44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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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 고대의 인구를 추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이용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운데 『삼국유사』의 기록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존의 고대 인구사 연구 경향이 주로 두 사서 가운데 한 가지 자료만을 선택하여 논지를 펼쳤던 것에 반해, 필자는 두 자료를 공히 이용하여 고대 인구를 살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Ⅱ장에서는 『삼국유사』고구려·변한백제·진한조 등 삼국 관련 조목의 구성을 살펴보았는데, 이들 조목의 내용이 사실상 국가의 기원 설명에 중점을 두고 있음과 세 조목이 거의 흡사한 구성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Ⅲ장에서는 삼국의 전성시기에 대한 추정을 시도하였는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전성시기가 흔히 삼국의 마지막 단계인 최전성기 혹은 멸망기라 불리는 시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다만 진한조의 ‘全盛時期 京中’이라는 구절의 해석이 문제가 되었는데, 고구려조와 변한백제조의 문장 구조와 동일한 방식대로 ‘신라전성기에 17만 8936호가 있었다. 수도에는 1360방 ~’의 순서로 해석하여 호구수의 공간적 범위를 ‘경중’이 아닌 신라 전체의 범위로 인식하였다.
Ⅳ장에서는 『삼국유사』전성시기 호구 정보의 작성 시기를 추정하였는데, 역사서의 편찬과 율령의 반포 그리고 불교의 전파를 중요 기준점으로 삼았다. 그 결과 고구려와 백제는 4세기, 신라는 6세기 무렵의 정보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필자는 비교적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고구려를 통해 추정이 합당한 것인지 검토해 보았는데, 『삼국지』와 기타 사료의 편린 속에서 찾아지는 4세기 고구려의 호구는 대략 17만 호 정도였으며, 이는 『삼국유사』의 21만여 호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삼국유사』의 21만여 호 정보가 4세기 고구려의 호구라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멸망기의 69만여 호 역시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manuscript purposes to examine records in『Samguk-Yusa』from the different angle that is one of the two books, 『Samguk-Sagi』and『Samguk-Yusa』that are used the most essentially in presuming the ancient population of Korea. While the exist...
This manuscript purposes to examine records in『Samguk-Yusa』from the different angle that is one of the two books, 『Samguk-Sagi』and『Samguk-Yusa』that are used the most essentially in presuming the ancient population of Korea. While the existing demographic history research has a tendency to argue by choosing only one records from two history books, the author states frankly that both two materials should be used for examining the ancient population.
In Chapter Ⅱ it is conducted to examine the construction of the items related with the Three Kingdoms such as Koguryo, Pyonhan-Baekje, Jinhan Articles in『Samguk-Yusa』and the result of examination is confirming that contents of these items emphasizes the explanation of the national origin virtually and that three items are exactly alike as the construction forms. In addition there is an attempt to the presumption of The Three Kingdoms’ heyday in Chapter Ⅲ, and the fact is checked that the heyday of the Three Kingdoms in『Samguk-Yusa』is different period from the Three Kimdoms’ last stage so called the greatest prosperity time or collapse time usually. The phrase ‘The heyday in the capital(全盛時期京中)’ in Jinhan Articles has merely the trouble to interpret but it can be understood as the identical interpretation method of Koguryo Articles and Pyonhan-Baekje Articles so it is interpreted as ‘There are 178,936 houses at the heyday of Silla and there are 1,360 houses in capital~’ in orderly manner that means the spatial bounds of the number of houses and families is recognized not ‘in the capital’ but all bounds of the Silla.
In Chapter Ⅳ, a point of the time is presumed when the information about the number of houses and families at the heyday in『Samguk-Yusa』was written out and framing time factors as important basic point is the compilation of history book, the law distribution and the spread of Buddhism. As the result presumption is that the information about Koguryo and Baekje around 4th century A.D. and Silla around 6th century A.D. may be recorded in 『Samguk-Yusa』. The author has examined whether the presumption through Koguryo with a lot of existing records relatively is suitable or not and has concluded that there is no remarkable contrast between the facts that the number of houses and families in Koguryo around 4th century is about 170,000 through『Samgukji』and other historical materials and is about 210,000 in『Samguk-Yusa』. In fact considering the diverse variables, it is not impossible numerical value that the number of 690,000 houses in collapse time of Koguryo in『Samguk-Sagi』as if 170,000 houses was in Koguryo around 4th century in『Samguk-Yusa』.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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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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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 |
| 200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4-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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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1.69 | 1.69 |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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