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일제강점기 조선고적조사사업과 한국고고학사 = Joseon Historical Remains Survey Work in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and History of Korean Archeolog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3351271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일본인 연구자가 실시한 고고학 조사와 연구를 한국고고학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일제강점기 고고학 조사는 제국대학 관학자 그룹,조선총독부 관료 그룹, 유물 수집가와 같은 아마추어 비전문가 그룹, 조선인 연구자 그룹 등 실로 다양한 입장과 계통에서 수행되었다. 조선고적조사사업은 이러한 조사 주체와 방식의 변화에 따라 크게 1909년 세키노 다다시의 조사 이전과 이후, 1916년 고적조사위원회 설치, 1921년 고적조사과의 신설, 1931년 조선고적연구회의 설립이라는 기점으로 시기를 구분 할 수 있다. 고적조사는 철저하게 실무와 연구가 ‘계급’적으로 구분되어 실시되었다. 제국대학 교수 중심의 고고학 연구자는 당시 일본고고학을 지배하던 개념이나 인식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조선에 대입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시종일관 계통론이라는 관점으로 조선의 고적조사 결과를 해석했다. 또한 고적조사사업은 『조선반도사』와 『조선사』 편수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는데, 역사서의 편찬 목적이나 내용에 맞춰 고적조사사업이 기획되었고 다시 역으로 조사 결과는 편찬 목적이나 집필 내용을 미리 전제해 놓고 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상황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고고학 연구자는 소위 ‘실증주의’라는 방법을 도구로 삼았으나 그들이 도달한 역사적 사실은 임나일본부의 실재나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연구는 과학적이라 말하기 어렵고, 이 점이 고적조사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고적조사 결과는 모두 일본어로 서술되었는데,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연구자와 학회를 위한 것이었으며, 한흥수와 같은 특수한 조선인 연구자를 제외하면 그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것이었다. 또 제국대학의 교수들은 이 자료를 일본인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용으로 활용했다.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주체와 성격, 활용의 측면에서 일제강 점기 고고학은 한국고고학의 ‘前期’로 인식하기보다 ‘前史’로, 또 식민지 고고학, 제국주의 고고학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번역하기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일본인 연구자가 실시한 고고학 조사와 연구를 한국고고학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일제강점기 고고학 조사는 제국대학 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일본인 연구자가 실시한 고고학 조사와 연구를 한국고고학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일제강점기 고고학 조사는 제국대학 관학자 그룹,조선총독부 관료 그룹, 유물 수집가와 같은 아마추어 비전문가 그룹, 조선인 연구자 그룹 등 실로 다양한 입장과 계통에서 수행되었다. 조선고적조사사업은 이러한 조사 주체와 방식의 변화에 따라 크게 1909년 세키노 다다시의 조사 이전과 이후, 1916년 고적조사위원회 설치, 1921년 고적조사과의 신설, 1931년 조선고적연구회의 설립이라는 기점으로 시기를 구분 할 수 있다. 고적조사는 철저하게 실무와 연구가 ‘계급’적으로 구분되어 실시되었다. 제국대학 교수 중심의 고고학 연구자는 당시 일본고고학을 지배하던 개념이나 인식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조선에 대입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시종일관 계통론이라는 관점으로 조선의 고적조사 결과를 해석했다. 또한 고적조사사업은 『조선반도사』와 『조선사』 편수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는데, 역사서의 편찬 목적이나 내용에 맞춰 고적조사사업이 기획되었고 다시 역으로 조사 결과는 편찬 목적이나 집필 내용을 미리 전제해 놓고 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상황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고고학 연구자는 소위 ‘실증주의’라는 방법을 도구로 삼았으나 그들이 도달한 역사적 사실은 임나일본부의 실재나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연구는 과학적이라 말하기 어렵고, 이 점이 고적조사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고적조사 결과는 모두 일본어로 서술되었는데,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연구자와 학회를 위한 것이었으며, 한흥수와 같은 특수한 조선인 연구자를 제외하면 그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것이었다. 또 제국대학의 교수들은 이 자료를 일본인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용으로 활용했다.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주체와 성격, 활용의 측면에서 일제강 점기 고고학은 한국고고학의 ‘前期’로 인식하기보다 ‘前史’로, 또 식민지 고고학, 제국주의 고고학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very important issue is how to perceive archeological survey and researches conducted by Japanese researchers in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in respect of Korean archeology history. Generally, Korean archaeology researchers describe the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as a starting point when arranging the history of archeology. While they don’t explicitly express whether the archaeological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was ‘the former period’ or ‘pre-history’, they certainly mention the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right at the start. Most of the archaeological survey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were supervised by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nd the professors under the imperial university of Japan were commissioned and conducted survey and research. The data and results produced by them were described in Japanese, and it was not for Koreans but for Japanese researchers and associations, and was circulated only within its circle. Furthermore, some of the professors of the imperial university at that time used this materials for educational purpose to foster Japanese researchers in Japan or Korea. In respect of principal agent and characteristic, and utilization of Joseon historical remains survey work, it is inappropriate to understand the archaeological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as ‘the former period’ of the Korean archaeology history. Most Japanese researchers boast that the excavation was conducted very objectively at that time and that the report was described in advanced way and scientifically. However, the archaeological survey carried out by the colonizer in a colony is always to be reconstructed and manipulated in accordance with the purpose and ideology of the principal agent. Therefore, archaeological survey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should be necessarily reconsidered in terms of Korean archeology. In that sense, archeolog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should be handled in respect of ‘pre-history’ or colonial archeology, and imperialism archeology, rather than recognizing it as ‘the former period’ of Korean archeology.
      번역하기

      The very important issue is how to perceive archeological survey and researches conducted by Japanese researchers in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in respect of Korean archeology history. Generally, Korean archaeology rese...

      The very important issue is how to perceive archeological survey and researches conducted by Japanese researchers in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in respect of Korean archeology history. Generally, Korean archaeology researchers describe the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as a starting point when arranging the history of archeology. While they don’t explicitly express whether the archaeological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was ‘the former period’ or ‘pre-history’, they certainly mention the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right at the start. Most of the archaeological survey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were supervised by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nd the professors under the imperial university of Japan were commissioned and conducted survey and research. The data and results produced by them were described in Japanese, and it was not for Koreans but for Japanese researchers and associations, and was circulated only within its circle. Furthermore, some of the professors of the imperial university at that time used this materials for educational purpose to foster Japanese researchers in Japan or Korea. In respect of principal agent and characteristic, and utilization of Joseon historical remains survey work, it is inappropriate to understand the archaeological surve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as ‘the former period’ of the Korean archaeology history. Most Japanese researchers boast that the excavation was conducted very objectively at that time and that the report was described in advanced way and scientifically. However, the archaeological survey carried out by the colonizer in a colony is always to be reconstructed and manipulated in accordance with the purpose and ideology of the principal agent. Therefore, archaeological survey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should be necessarily reconsidered in terms of Korean archeology. In that sense, archeolog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should be handled in respect of ‘pre-history’ or colonial archeology, and imperialism archeology, rather than recognizing it as ‘the former period’ of Korean archeology.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시기 구분
      • Ⅲ.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성격과 특징
      • Ⅳ. 맺음말
      • Ⅰ. 머리말
      • Ⅱ.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시기 구분
      • Ⅲ.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성격과 특징
      • Ⅳ. 맺음말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2016년 9월 학술세미나 : 한국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일본의 근대기록 활용 사례 -오가와 게이키치 기록을 중심으로"

      2 신주백, "한국 역사학의 기원" Humanist 2016

      3 전경수, "평양정권이 숙청한 인류학자 한흥수(1909~?) -굴절과 파행의 고려인류학" 근대서지학회 11 : 2015

      4 장신, "조선총독부의 朝鮮半島史편찬사업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3) : 349-387, 2009

      5 김대환,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사업에서 후지타료사쿠(藤田亮策)의 역할–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공문서의 검토–" 한국상고사학회 91 (91): 121-141, 2016

      6 이성주, "제국주의시대 고고학과 그 잔적" 한국대학박물관협회 47 : 1995

      7 사카노 토오루, "제국과 인류학자(1884-1952)" 민속원 2013

      8 최석영, "일제의 조선 「식민지 고고학」과 식민지 이후" 서강대학교출판부 2015

      9 아라키준, "일제식민지기 금관총 출토유물을 둘러싼 다층적 경합" 한국사연구회 (174) : 267-320, 2016

      10 양시은, "일제시기 만주사·조선사 인식" 동북아역사재단 2009

      1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2016년 9월 학술세미나 : 한국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일본의 근대기록 활용 사례 -오가와 게이키치 기록을 중심으로"

      2 신주백, "한국 역사학의 기원" Humanist 2016

      3 전경수, "평양정권이 숙청한 인류학자 한흥수(1909~?) -굴절과 파행의 고려인류학" 근대서지학회 11 : 2015

      4 장신, "조선총독부의 朝鮮半島史편찬사업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3) : 349-387, 2009

      5 김대환,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사업에서 후지타료사쿠(藤田亮策)의 역할–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공문서의 검토–" 한국상고사학회 91 (91): 121-141, 2016

      6 이성주, "제국주의시대 고고학과 그 잔적" 한국대학박물관협회 47 : 1995

      7 사카노 토오루, "제국과 인류학자(1884-1952)" 민속원 2013

      8 최석영, "일제의 조선 「식민지 고고학」과 식민지 이후" 서강대학교출판부 2015

      9 아라키준, "일제식민지기 금관총 출토유물을 둘러싼 다층적 경합" 한국사연구회 (174) : 267-320, 2016

      10 양시은, "일제시기 만주사·조선사 인식" 동북아역사재단 2009

      11 차순철, "일제강점기의 신라고분조사연구에 대한 검토" 국립문화재연구소 (39) : 95-130, 2006

      12 정인성, "일제강점기의 낙랑고고학" 한국고고학회 2010

      13 이기성, "일제강점기‘금석병용기’에 대한 일고찰" 한국상고사학회 68 (68): 25-44, 2010

      14 김대환, "일제강점기 조사된 경주 지역 적석목곽묘, in 일제강점기 고고학조사와 그 성격" 영남고고학회 2012

      15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신라고분 발굴조사 관련 자료집"

      16 김대환, "일제강점기 금관총의 조사와 의의" 국립중앙박물관 20 : 2014

      17 이순자,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사업 연구" 경인문화사 2009

      18 양시은, "일제강점기 고구려 발해 유적조사와 그 의미 :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고구려발해학회 38 : 155-192, 2010

      19 이성주, "일제강점기 고고학조사와 그 성격, in 일제강점기 고고학조사와 그 성격" 영남고고학회 2012

      20 윤상덕, "일제강점기 경주지역 횡혈식 석실분 조사에 대하여, in 일제강점기 고고학조사와 그 성격" 영남고고학회 2012

      21 吉井秀夫, "일제강점기 경주 신라 고분의 발굴조사, in 신라고분 100년 발굴조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6

      22 함순섭, "일제강점기 鳥居龍藏의 경주 월성 및 대구 달성 조사에 대하여, in 일제강점기 고고학조사와 그 성격" 영남고고학회 2012

      23 이기성, "일제강점기 ‘石器時代’의 조사와 인식" 한국고대학회 (33) : 5-30, 2010

      24 정인성, "일제강점기 ‘慶州古蹟保存會’와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 대구사학회 95 : 1-39, 2009

      25 이기성, "일제강점기 ‘古都’의 고적조사 - 초기 고적조사를 중심으로 -" 호서사학회 (79) : 1-39, 2016

      26 김종준, "일제 시기 ‘역사의 과학화’ 논쟁과 역사학계 ‘관학아카데미즘’의 문제" 고려사학회 (49) : 297-334, 2012

      27 김용성, "일본인의 신라고분 조사" 한국고대학회 (33) : 31-58, 2010

      28 배형일, "일본의 발명과 근대" 이산 2006

      29 吉井秀夫, "일본고고학사에서 본 조선고적사업과 조선총독부박물관 -교토제국대학 고고학연구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30 신숙정, "우리나라 신석기문화 연구경향 : 1945년까지" 한국상고사학회 12 : 1993

      31 하지연, "오다 쇼고(小田省吾)의 한국근대사 연구와 식민사학" 한국근현대사학회 (63) : 71-105, 2012

      32 이희준, "신라·가야 고분 발굴사와 중·근세 고고학사를 읽고" 한국상고사학회 2015

      33 이병호, "식민지기 부여 지역 폐사지 조사와 일본인 고고학자 : —石田茂作과 藤澤一夫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고고학회 (98) : 168-199, 2016

      34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 2004

      35 에릭 홉스봄,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005

      36 吉井秀夫, "라) 교토대학 고고학연구실 소장 금관총 관련 자료와 그 성격, in 일제강점기 신라고분 발굴 조사 관련 자료집"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경주시 2011

      37 김대환, "금관총과 이사지왕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도록"

      38 정인성, "고적조사위원 오가와 게이키치(小川敬吉) 자료의 일본 현지 조사" 2016

      39 국립중앙박물관, "경주 금관총"

      40 장신, "경성제국대학 사학과의 자장(磁場)" 역사문제연구소 15 (15): 45-83, 2011

      41 이성시, "黑板勝美(구로이타 가쓰미)를 통해 본 식민지와 역사학"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문화연구원 23 : 1999

      42 이성주, "韓國考古學의 起源論과 系統論" 한국고고학회 (102) : 128-163, 2017

      43 정인성, "韓國考古學史에서 ‘原三國時代’와 김해패총" 한국고대학회 (46) : 165-192, 2015

      44 정인성, "關野貞의 낙랑유적 조사 ? 연구 재검토 - 일제강점기「古蹟調査」의 기억 1 -" 호남고고학회 24 : 139-156, 2006

      45 高田貫太, "考古學による日朝關係史硏究の現狀と課題" 考古學硏究會 59 (59): 2012

      46 吉井秀夫, "澤俊一とその業績について" 高麗美術館 (6) : 2009

      47 오영찬, "朝鮮古蹟硏究會의 설립과 운영 - 1931~1932년을 중심으로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55) : 223-251, 2011

      48 藤田亮策, "日本文化叢考" 刀江書院 1931

      49 이병호, "日帝强占期 百濟 故地에 대한 古蹟調査事業" 한국고대사학회 (61) : 113-155, 2011

      50 강인욱, "日帝强占期 咸鏡北道 先史時代유적의 조사와 인식" 한국상고사학회 61 (61): 5-34, 2008

      51 早乙女雅博, "新羅考古學硏究" 同成社 2010

      52 早乙女雅博, "新羅の考古學調査100年の硏究" 朝鮮史硏究會 39 : 2001

      53 정인성, "小川敬吉의 고적 조사 성과 재검토의 필요성, in 小川敬吉의 일제강점기 고적 조사 관련 자료집성 -대구·경북 지역-"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2016

      54 佐賀縣立名護屋城博物館, "小川敬吉資料展"

      55 오영찬,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樂浪古墳 資料와 硏究現況" 한국고대사학회 34 : 41-70, 2004

      56 정인성, "2. 일제강점기의 「조선고적조사사업」과 1909년 예비조사, in 1909년 「조선고적조사」의 기억" 국립문화재연구소 2016

      57 국립문화재연구소, "1909년 「朝鮮古蹟調査」의 기억 -『韓紅葉』과 谷井濟一의 조사기록" 2016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7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2 0.89 1.572 0.26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