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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전북지역’ 진출 과정과 추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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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82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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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전통적인 시각에서 전북 권역은 백제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백제 전 시기에 걸쳐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백제의 일부로 써 중요한 지역이 되기 이전 전북 권역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1~3세기 사이의 전북 지역은 백제가 아니라 마한의 일원으로 지역별 소정치체들이 산재하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 이 와는 별개로 전북 동부권에는 가야와 연계된 세력이 존속하였다는 고고학적 인 증거가 나타난다. 따라서 고대 시기 전북 권역의 실재적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추 적과 이해가 필요하다. 나아가 지역 분산적인 형태의 다양한 정치체들이 어 떠한 과정을 거쳐 백제라는 하나의 국가적 틀 속으로 흡수·통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전북지역사라는 시각에서 접근이 요구된다. 이것은 결국 중앙 중심 의 백제사 인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며, 특히 고대 시기의 전북 권 역의 역사·문화적 원천 모습에 좀 더 접근하여 지역의 다양성을 강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고대 국가 백제와 전북 권역의 마한 그리고 가야 세력이 어떻게 존재하였고, 또 그들이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우선 2장 에서는 백제에게 복속하기 이전 시기 전북 지역의 존재 양상을 간략하게 알 아보았고, 3장은 전라도 지역이 언제 백제와 조우하여 그 영향권 아래 들어 가게 되는 지를 추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백제의 웅진 천도 이 후 백제가 전라도 지역을 어떻게 재복속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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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인 시각에서 전북 권역은 백제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백제 전 시기에 걸쳐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백제의 일부로 써 중요한 지역이 되기 이전 전북 권...

      전통적인 시각에서 전북 권역은 백제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백제 전 시기에 걸쳐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백제의 일부로 써 중요한 지역이 되기 이전 전북 권역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1~3세기 사이의 전북 지역은 백제가 아니라 마한의 일원으로 지역별 소정치체들이 산재하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 이 와는 별개로 전북 동부권에는 가야와 연계된 세력이 존속하였다는 고고학적 인 증거가 나타난다. 따라서 고대 시기 전북 권역의 실재적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추 적과 이해가 필요하다. 나아가 지역 분산적인 형태의 다양한 정치체들이 어 떠한 과정을 거쳐 백제라는 하나의 국가적 틀 속으로 흡수·통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전북지역사라는 시각에서 접근이 요구된다. 이것은 결국 중앙 중심 의 백제사 인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며, 특히 고대 시기의 전북 권 역의 역사·문화적 원천 모습에 좀 더 접근하여 지역의 다양성을 강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고대 국가 백제와 전북 권역의 마한 그리고 가야 세력이 어떻게 존재하였고, 또 그들이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우선 2장 에서는 백제에게 복속하기 이전 시기 전북 지역의 존재 양상을 간략하게 알 아보았고, 3장은 전라도 지역이 언제 백제와 조우하여 그 영향권 아래 들어 가게 되는 지를 추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백제의 웅진 천도 이 후 백제가 전라도 지역을 어떻게 재복속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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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From the traditional perspective, the Jeonbuk region has been understood as part of Baekje. However, this aspect does not apply throughout the pre-Baekje period.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grasp the reality of Jeonbuk area before becoming an important area as part of Baekje. However, the remaining records show that the Jeonbuk area between the 1st and 3rd centuries was not a Baekje but a part of Mahan, where certain localities were scattered. Apart from this, there is archeological evidence that the forces associated with Gaya survived in the eastern part of Jeonbuk. Therefore, in order to know the actual state of the Jeonbuk area in ancient times, new tracking and understanding is necessary.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approach from the perspective of Jeonbuk regional history on how various politics in the form of regional dispersion were absorbed and integrated into a national framework called Baekje. This will eventually lead to a departure from the central center's perception of Baekje history, In particular, it can help to strengthen the diversity of the region by getting closer to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ources of the Jeonbuk region in ancient times. This paper examines the existence of the ancient national Baekje, Mahan and Gaya forces of the Jeonbuk region, and how they merged. First, in Chapter 2, we briefly reviewed the existence of Jeonbuk area before the subjugation to Baekje. Chapter 3 estimated when the Jeolla Province area would encounter Baekje and fall under its sphere of influence. And in the last chapter, we looked at how Baekje was re-submitted to Jeolla Province after Baekje moved to Wo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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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the traditional perspective, the Jeonbuk region has been understood as part of Baekje. However, this aspect does not apply throughout the pre-Baekje period.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grasp the reality of Jeonbuk area before becoming an import...

      From the traditional perspective, the Jeonbuk region has been understood as part of Baekje. However, this aspect does not apply throughout the pre-Baekje period.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grasp the reality of Jeonbuk area before becoming an important area as part of Baekje. However, the remaining records show that the Jeonbuk area between the 1st and 3rd centuries was not a Baekje but a part of Mahan, where certain localities were scattered. Apart from this, there is archeological evidence that the forces associated with Gaya survived in the eastern part of Jeonbuk. Therefore, in order to know the actual state of the Jeonbuk area in ancient times, new tracking and understanding is necessary.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approach from the perspective of Jeonbuk regional history on how various politics in the form of regional dispersion were absorbed and integrated into a national framework called Baekje. This will eventually lead to a departure from the central center's perception of Baekje history, In particular, it can help to strengthen the diversity of the region by getting closer to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ources of the Jeonbuk region in ancient times. This paper examines the existence of the ancient national Baekje, Mahan and Gaya forces of the Jeonbuk region, and how they merged. First, in Chapter 2, we briefly reviewed the existence of Jeonbuk area before the subjugation to Baekje. Chapter 3 estimated when the Jeolla Province area would encounter Baekje and fall under its sphere of influence. And in the last chapter, we looked at how Baekje was re-submitted to Jeolla Province after Baekje moved to Wo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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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전북지역 고대 정치체의 상황
      • Ⅲ. 백제의 남방 진출과 전북지역의 양상
      • Ⅳ. 백제의 재진출과 전북지역의 추이
      •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 Ⅱ. 전북지역 고대 정치체의 상황
      • Ⅲ. 백제의 남방 진출과 전북지역의 양상
      • Ⅳ. 백제의 재진출과 전북지역의 추이
      • Ⅴ. 맺음말
      • <국문초록>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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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도학, "한성말 웅진시대 백제왕위계승과 왕권의 성격" (50·51) : 1985

      2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3 이현혜, "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 일조각 1998

      4 전종국, "한국 고대의 고고와 역사" 학연문화사 1997

      5 김기섭, "특집논문1 : 백제문화 활성화 방안 ; 백제 한성기(漢城期) 연구 동향과 과제" 백제문화연구소 (33) : 1-19, 2004

      6 "통전"

      7 전영래, "천관우선생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 1985

      8 전영래, "주류성·백강 위치 비정에 관한 신연구" 1976

      9 전북문화재연구원, "정읍 고사부리성"

      10 최완규, "전북지역 마한·백제묘제의 양상과 그 의미" 백제학회 (18) : 125-166, 2016

      1 이도학, "한성말 웅진시대 백제왕위계승과 왕권의 성격" (50·51) : 1985

      2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3 이현혜, "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 일조각 1998

      4 전종국, "한국 고대의 고고와 역사" 학연문화사 1997

      5 김기섭, "특집논문1 : 백제문화 활성화 방안 ; 백제 한성기(漢城期) 연구 동향과 과제" 백제문화연구소 (33) : 1-19, 2004

      6 "통전"

      7 전영래, "천관우선생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 1985

      8 전영래, "주류성·백강 위치 비정에 관한 신연구" 1976

      9 전북문화재연구원, "정읍 고사부리성"

      10 최완규, "전북지역 마한·백제묘제의 양상과 그 의미" 백제학회 (18) : 125-166, 2016

      11 "일본서기"

      12 주성지, "웅진시대 백제의 섬진강 수계 진출" 22 : 2003

      13 이근우, "웅진시대 백제의 남방경역에 대하여" 27 : 1997

      14 전용신, "완역 일본서기" 일지사 1989

      15 정구복, "역주 삼국사기 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16 이도학, "새로 쓰는 백제사" 푸른역사 1997

      17 천관우, "삼한의 국가형성, 하" 일지사 3 : 1976

      18 "삼국지"

      19 "삼국유사"

      20 "삼국사기"

      21 김주성, "벽골제의 축조와 변화"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1) : 267-292, 2015

      22 노중국,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988

      23 문안식, "백제의 흥망과 전쟁" 혜안 2006

      24 김근영, "백제의 중방성 설치와 그 의미" 마한백제문화연구소 33 : 39-6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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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이영식, "백제의 가야진출과정" 7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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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이도학, "백제고대국가연구" 일지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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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김영심, "문헌자료로 본 忱彌多禮의 위치" 백제학회 (9) : 67-9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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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임기환, "근초고왕 때 백제영토는 어디까지였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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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최범호, "『삼국사기』 완산주(完山州) 관련 기록의 재검토" 전북사학회 (48) : 5-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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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김규운, "5世紀 漢城期 百濟와 加耶 關係" 중앙문화재연구원 (9) : 115-141, 2011

      69 백승옥, "4~6세기 백제(百濟)와 가야제국(加耶諸國) -『일본서기(日本書紀)』관련기사 검토를 중심으로-" 백제학회 (7) : 57-78, 2012

      70 이인철, "1~3세기경 백제의 군사전략과 영토확장" 44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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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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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 0.4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5 0.43 1.181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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