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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峰 奇大升의 歷史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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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지금까지 기대승에 대한 연구는 李滉과 쟁론을 벌였던 理氣四七論辨에 집중하거나, 이황 또는 李栗谷과의 관계 설정 속에서 기대승이라는 인물의 일단을 엿보려는 단편적이고, 주변부적인 시각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우선 기대승이란 인물이 지닌 역사적 위상을 밝혀낸 뒤에라야 그의 성리학 연구가 갖는 역사적 의미도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 오히려 상식적인 문제의식이라 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기대승의 역사적 위상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가늠해 보려고 한 것이다. 연산군 때부터 명종조에 이르기까지 무려 네 차례의 士禍를 겪으면서 사림세력들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을사사화 이후 실권을 잡은 윤원형과 이량의 무리들은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신진 사림을 제거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그 격랑 속에서 사림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기대승이었다. 그는 윤원형과 이량, 그리고 김개의 탄핵을 극복해 가면서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갔다. 기대승의 역사의식은 그가 경연에서 언급한 바 있는 ‘復古’라는 한 단어로 상징될 수 있다. 복고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론 요⋅순⋅우⋅탕의 시대로 대표되는 ‘至治’를 말한다. 동방에서 그 聖學의 맥을 계승한 것이 바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학통이라는 점에서 道統論을 강조하였다. 조광조는 실제 정치에서 至治를 실현하려다가 희생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후세에서 그를 추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기대승 자신도 조광조의 행적을 따르기 위해서 위험이 수반되는 신진 사림의 중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대승은 조선 중기 조광조의 처형으로 단절된 성리학의 도통을 지켜내어 후배들에게 이어준 허리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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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기대승에 대한 연구는 李滉과 쟁론을 벌였던 理氣四七論辨에 집중하거나, 이황 또는 李栗谷과의 관계 설정 속에서 기대승이라는 인물의 일단을 엿보려는 단편적이고, 주변부적인 ...

      지금까지 기대승에 대한 연구는 李滉과 쟁론을 벌였던 理氣四七論辨에 집중하거나, 이황 또는 李栗谷과의 관계 설정 속에서 기대승이라는 인물의 일단을 엿보려는 단편적이고, 주변부적인 시각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우선 기대승이란 인물이 지닌 역사적 위상을 밝혀낸 뒤에라야 그의 성리학 연구가 갖는 역사적 의미도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 오히려 상식적인 문제의식이라 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기대승의 역사적 위상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가늠해 보려고 한 것이다. 연산군 때부터 명종조에 이르기까지 무려 네 차례의 士禍를 겪으면서 사림세력들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을사사화 이후 실권을 잡은 윤원형과 이량의 무리들은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신진 사림을 제거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그 격랑 속에서 사림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기대승이었다. 그는 윤원형과 이량, 그리고 김개의 탄핵을 극복해 가면서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갔다. 기대승의 역사의식은 그가 경연에서 언급한 바 있는 ‘復古’라는 한 단어로 상징될 수 있다. 복고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론 요⋅순⋅우⋅탕의 시대로 대표되는 ‘至治’를 말한다. 동방에서 그 聖學의 맥을 계승한 것이 바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학통이라는 점에서 道統論을 강조하였다. 조광조는 실제 정치에서 至治를 실현하려다가 희생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후세에서 그를 추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기대승 자신도 조광조의 행적을 따르기 위해서 위험이 수반되는 신진 사림의 중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대승은 조선 중기 조광조의 처형으로 단절된 성리학의 도통을 지켜내어 후배들에게 이어준 허리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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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Until now, the study of Ki Dae-seung(1527-1572) have been focused on Igi-sachil-nonbyoen(理氣四七論辨: an argument on li & ch'i in Neo-Confucianism) with Yi Hwang(1501-1570) and also fragmentary aspects of Ki Dae-seung's whole life related to other famous scholars such as Yi Hwang & Yi yulgok (1536-1584) etc. If we need to study of Ki Dae-seung precisely, we should have overall studied the historical status of Ki's at first. This thesis aims that. From Yeonsan'gun through king Myeongjong, Sarim(士林: Neo-Confucian literati) was suffered by four times Sahwa(士禍: the literati purges). Nevertheless, Yun Wonhyeong and Yi ryang having political power since Eulsa-sahwa(乙巳士禍; 1545) planed to get rid of the remnants of Sarim. In the middle of that dangerous circumstance, Ki Dae-seung became a key member to lead the rest of Sarim. Overcoming the impeachment from Yun Wonhyeong, Yi ryang, and Kim Gae, Ki Dae-seung kept holding his own belief on social and historical justice. Ki's historical consciousness could be represented in a word, "Bokgo"(復古: returning to the ancient paradise or instruction of earlier Confucian sages). The ultimate goal of "Bokgo" is to embody "Jichi"(至治: ideal governance ruled by Confucian sage kings in old China) in this world again. Ki Dae-seung thought that the scholars who succeeded to the scholarship of past Chinese sages are Jeong Mong-ju, Gil Jae, Kim Sukja, Kim Jongjik, Kim Gwengpil, and Jo Kwangjo. Sarim including Ki called the scholarly line "Dotong"(道統: orthodox line of Neo-Confucianism in Joseon). So, Ki Dae-seung urged to officially hold a memorial service for them. Therefore Ki Dae-seung didn't resist to be a leader of Sarim. In the end, Ki Dae-seung was a core person like waist in the human body to protect and convey the Dotong to the younger of S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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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il now, the study of Ki Dae-seung(1527-1572) have been focused on Igi-sachil-nonbyoen(理氣四七論辨: an argument on li & ch'i in Neo-Confucianism) with Yi Hwang(1501-1570) and also fragmentary aspects of Ki Dae-seung's whole life related to ot...

      Until now, the study of Ki Dae-seung(1527-1572) have been focused on Igi-sachil-nonbyoen(理氣四七論辨: an argument on li & ch'i in Neo-Confucianism) with Yi Hwang(1501-1570) and also fragmentary aspects of Ki Dae-seung's whole life related to other famous scholars such as Yi Hwang & Yi yulgok (1536-1584) etc. If we need to study of Ki Dae-seung precisely, we should have overall studied the historical status of Ki's at first. This thesis aims that. From Yeonsan'gun through king Myeongjong, Sarim(士林: Neo-Confucian literati) was suffered by four times Sahwa(士禍: the literati purges). Nevertheless, Yun Wonhyeong and Yi ryang having political power since Eulsa-sahwa(乙巳士禍; 1545) planed to get rid of the remnants of Sarim. In the middle of that dangerous circumstance, Ki Dae-seung became a key member to lead the rest of Sarim. Overcoming the impeachment from Yun Wonhyeong, Yi ryang, and Kim Gae, Ki Dae-seung kept holding his own belief on social and historical justice. Ki's historical consciousness could be represented in a word, "Bokgo"(復古: returning to the ancient paradise or instruction of earlier Confucian sages). The ultimate goal of "Bokgo" is to embody "Jichi"(至治: ideal governance ruled by Confucian sage kings in old China) in this world again. Ki Dae-seung thought that the scholars who succeeded to the scholarship of past Chinese sages are Jeong Mong-ju, Gil Jae, Kim Sukja, Kim Jongjik, Kim Gwengpil, and Jo Kwangjo. Sarim including Ki called the scholarly line "Dotong"(道統: orthodox line of Neo-Confucianism in Joseon). So, Ki Dae-seung urged to officially hold a memorial service for them. Therefore Ki Dae-seung didn't resist to be a leader of Sarim. In the end, Ki Dae-seung was a core person like waist in the human body to protect and convey the Dotong to the younger of S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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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Root
      • 논문요약
      • I. 머리말
      • II. 明宗ㆍ宣祖 年間의 政局과 奇大升
      • 1. 當時의 政治地形
      • Root
      • 논문요약
      • I. 머리말
      • II. 明宗ㆍ宣祖 年間의 政局과 奇大升
      • 1. 當時의 政治地形
      • 2. 李樑의 기대승 탄핵 사건
      • 3. ‘己卯年 是非’의 확정 요구
      • 4. ‘至治’의 指向
      • III.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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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예원, "梁山甫의「孝賦」와 「小學」정신에 관하여" 한국한문교육학회 (31) : 469-495, 2008

      2 한국고문서학회,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1996

      3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동방미디어 2000

      4 정성희, "조선 道統論의 비판적 검토 — 金宗直을 중심으로 —" 한국유교학회 (31) : 147-174, 2008

      5 "국역 고봉전서 1~5" 민족문화추진회 2007

      6 황의동, "高峰의 道學사상 연구" 한국사상문화학회 (48) : 257-282, 2009

      7 고봉학술원, "高峰 奇大升 硏究" 이화 2009

      8 서인희, "靜菴 道學政治思想의 淵源 考察" 한국한문고전학회 20 (20): 245-270, 2010

      9 李秉烋, "朝鮮前期 士林派의 推移 속에서 본 金宏弼의 歷史的 座標" (34) : 2005

      10 "書經"

      1 한예원, "梁山甫의「孝賦」와 「小學」정신에 관하여" 한국한문교육학회 (31) : 469-495, 2008

      2 한국고문서학회,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1996

      3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동방미디어 2000

      4 정성희, "조선 道統論의 비판적 검토 — 金宗直을 중심으로 —" 한국유교학회 (31) : 147-174, 2008

      5 "국역 고봉전서 1~5" 민족문화추진회 2007

      6 황의동, "高峰의 道學사상 연구" 한국사상문화학회 (48) : 257-282, 2009

      7 고봉학술원, "高峰 奇大升 硏究" 이화 2009

      8 서인희, "靜菴 道學政治思想의 淵源 考察" 한국한문고전학회 20 (20): 245-270, 2010

      9 李秉烋, "朝鮮前期 士林派의 推移 속에서 본 金宏弼의 歷史的 座標" (34) : 2005

      10 "書經"

      11 "春秋左氏傳"

      12 "明宗實錄"

      13 "成宗實錄"

      14 "宣祖實錄"

      15 "宣祖修訂實錄"

      16 "仁祖實錄"

      17 "仁宗實錄"

      18 "中宗實錄"

      19 金恒洙, "16세기 후반 士林의 經世論"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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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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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48 0.48 0.4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4 0.42 1.058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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