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5세기 朝鮮과 明 사이에서 시행되었던 외교와 관련된 제반 의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흔히 조공-책봉체제의 典範으로 간주되는 이 시기의 양국관계의 내용 및 본질을 파악하는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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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5세기 朝鮮과 明 사이에서 시행되었던 외교와 관련된 제반 의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흔히 조공-책봉체제의 典範으로 간주되는 이 시기의 양국관계의 내용 및 본질을 파악하는 단서...
본 연구는 15세기 朝鮮과 明 사이에서 시행되었던 외교와 관련된 제반 의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흔히 조공-책봉체제의 典範으로 간주되는 이 시기의 양국관계의 내용 및 본질을 파악하는 단서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현재 조선과 명 양국간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연구는 表箋문제, 遼東攻伐, 女眞문제 등의 외교적 갈등 및 4郡 6鎭의 개척, 朝貢貿易, 使臣왕래를 통한 文化交流 등을 중심으로 상당수가 이루어졌다. 반면에 양국간의 외교적 관계를 외형상 그리고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儀禮的인 내용과 성격에 대한 검토는 거의 없다. 그런데 조선은 건국직후부터 事大를 국제외교의 기본축으로 설정했고, 국내의 통치에서는 ‘禮治’를 내세웠다. 따라서 의례를 통한 국내외 체제의 설정은 단순히 형식적인 측면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현실적 측면이 상당히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검토는 15세기 정치사와 대외관계사 이해에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對明儀禮는 15세기 내내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명의 국내외적인 정세와 조선 내부의 정치적 변동, 그리고 역대 국왕의 의례에 대한 인식 등 여러 요소에 의해 시기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비쳐진 것이다. 이러한 대명의례는 건국 후 1세기 동안의 浮沈과정을 겪었고, 15세기 말『국조오례의』의 편찬으로 정리되었다.『국조오례의』편찬은 대명의례의 규범적 정비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후 16세기의 대명외교는 부분적인 변화가 있더라도 여기서 크게 변화하지 않는 전범으로 작용했다.
15세기에 표출된 대명의례에는 조공-책봉이라는 조선과 명사이의 형식적 외교관계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과 명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다양한 국제관계의 갈등 및 해소가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5세기 조선과 명 양국간 외교관계속에서 나타난 의례적 내용 및 그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과 의례의 조정, 그리고 그를 둘러싼 조선의 대명인식 등을 검토하여 전근대 조공-책봉관계의 구체적인 실례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검토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고려사』에 보이는 대명의식의 검토를 바탕으로 연대기에 나타난 공민왕대 이후 국왕의 책봉 및 양국사신들의 왕래에서 보이는 각종 의식을 종합하여 조선시대 대명의례 제정의 역사적 배경 및 그 기반을 검토하였다.
조선초기 명과 관련된 국가의례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王과 王妃, 王世子의 誥命 및 冊封過程을 살펴보았다. 이같이 의례적인 책봉과정은 당시 양국간의 국제인식 및 정치적인 의지를 살펴보는 중요한 단서로 파악하였다.
明使와 관련된 의례․의식은 이미『高麗史』에 보이고 있다. 그런데 같은 대명의례라 할지라도 이보다 늦게 편찬된『세종실록』오례와『국조오례의』의 빈례와 가례에 보이는 각종 明使관련 의식은 이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차별성의 천착은 15세기 기간동안 대명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찾아보는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고 판단된다. 한편 명에서 入朝한 조선의 사신을 어떻게 대우했는가의 문제를 당대 이후 명초에 이르기까지 편찬된 예서의 賓禮 및 嘉禮條에 보이는 각종 ‘使臣儀’ 를 검토해 보았다.
명조정에서의 조선 사신의 위차는 조선초기 명과의 의례적 관계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것은 명의 대조선 인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건국초인 홍무제 단계와 연왕과 갈등을 벌였던 건문제, 성조와 그 이후의 시대 등 시기별로 명의 국내외 정세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아울러 조선의 祀典의 정비 및 祭天禮 치폐과정에서의 명의 압력과 조선의 이에 대한 대응 역시 중요한 명의 대조선 인식을 살피는 중요한 단서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동과 조선의 현실에서 당시의 치자들이 명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했으며 이것이 대명의례의 정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현상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실제로 이 작업을 감행했던 15세기 유자들의 대외인식을 검토하는 기초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