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1990년대 광주시민연대의 ‘5․18민중항쟁’ 세계화 활동 사례를 살펴보는 한편, 이들이 생산한 ‘5․18세계화’ 담론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있다. 나아가 ‘5․18세계화’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의 목적은 1990년대 광주시민연대의 ‘5․18민중항쟁’ 세계화 활동 사례를 살펴보는 한편, 이들이 생산한 ‘5․18세계화’ 담론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있다. 나아가 ‘5․18세계화’ ...
이 연구의 목적은 1990년대 광주시민연대의 ‘5․18민중항쟁’ 세계화 활동 사례를 살펴보는 한편, 이들이 생산한 ‘5․18세계화’ 담론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있다. 나아가 ‘5․18세계화’ 담론 생성의 사회적 배경과 ‘5․18세계화’ 담론으로 제기된 사회적 논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5․18민중항쟁’은 한국 사회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체제로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었다. 예컨대 이 사건은 시민 각자가 유신정권을 승계한 신군부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억압에 주체적인 역사의식으로 저항함으로써 그 실체와 속성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였다.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을 발현한 시민들은 마침내 자율적인 공동체를 구현함은 물론 기존의 국가 및 사회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와 인식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작동하였다.
한편 1993년 김영삼 정부는 5․13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5․18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5․18성역화’ 사업은 시민단체의 바람과는 달리 정부와 관(광주시)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여론 수렴과 시민 참여를 요구하는 ‘5․18성역화를 위한 시민연대모임’(이하 광주시민연대)이 1994년 출범하였다. ‘광주시민연대’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비롯하여 학자 및 법률가 등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토론회를 거쳐 ‘5․18성역화 사업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발표하였고 광주시는 ‘5․18성역화’ 사업에 이를 반영하였다.
광주시민연대의 특기할만한 점은 지역 간 갈등구조로 인해 ‘5․18민중항쟁의 민주적 정당성과 역사적 의의’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여전히 광주라는 지역에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회적인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5․18세계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활동이었다. 즉, 5․18민중항쟁의 진상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국외 민주세력과 연대를 모색하는 실천적 활동이 그것이다.
광주시민연대는 1994년 ‘5․18국제심포지엄’ 개최를 필두로 매년 국제행사를 개최하였다. 1998년에는 아시아인권위원회가 주도한 ‘아시아인권헌장 선언대회’를 유치하여『아시아인권헌장(Asian Human Rights Charter)』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헌장은 아시아의 인권과 평화 구축을 위해 150개 단체가 공동 참여하여 제정한 것이다. 이는 광주시민연대가 그동안 추진해 온 ‘5․18세계화’의 실질적인 결실이자 인권을 매개로 한 아시아 지역의 시민적 연대가 구체화된 경우라 하겠다.
광주시민연대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5․18세계화’를 위한 담론 생산과 그 실천을 위해 국제적 연대활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대내외 환경변화와 안정적인 재정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관련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광주시민연대가 처음으로 ‘5․18세계화’를 제창하고 5․18 관련 담론의 패러다임을 이끌었다는 점은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주요한 업적이라 하겠다. 이는 광주시민연대가 주도한 일련의 ‘5․18세계화’ 담론의 실천사례는 2000년 이후 5․18기념재단이 주도한 국제연대 활동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