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후보

      이승만의 역할인식과 1950년대 후반의 한미관계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091087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1950년대 후반 한미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기존 연구들은 안보와 국내정치, 그리고 경제의 다양한 측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해 내고 있다. 본 논문은 이승만의 역할인식을 주된 변수로 하고 북송문제를 둘러 싼 한미일관계를 역사적 사례로 하여 이 주제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니 데탕트의 정책적 환경에서 미국의 변화하는 대한정책과 이승만의 입장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의 차이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국내정치와 경제문제를 둘러 싼 충돌 이외에 한일관계에 대한 외교적 마찰이 그 주된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이 한일회담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이승만은 이에 대해 저항적이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북송문제에 대한 사료적 분석은 오히려 이승만의 적극적인 해결 모색에 대해 일본과 미국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한미일관계 내에서의 한국의 상대적 소외의 결과를 가져왔던 기본적인 요인은 이승만이 설정한 역할인식과 그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인식간의 괴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의 한미일관계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번역하기

      1950년대 후반 한미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기존 연구들은 안보와 국내정치, 그리고 경제의 다양한 측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해 내고 있다. 본 논문은 이승만의 역할인식을 주된 변수...

      1950년대 후반 한미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기존 연구들은 안보와 국내정치, 그리고 경제의 다양한 측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해 내고 있다. 본 논문은 이승만의 역할인식을 주된 변수로 하고 북송문제를 둘러 싼 한미일관계를 역사적 사례로 하여 이 주제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니 데탕트의 정책적 환경에서 미국의 변화하는 대한정책과 이승만의 입장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의 차이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국내정치와 경제문제를 둘러 싼 충돌 이외에 한일관계에 대한 외교적 마찰이 그 주된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이 한일회담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이승만은 이에 대해 저항적이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북송문제에 대한 사료적 분석은 오히려 이승만의 적극적인 해결 모색에 대해 일본과 미국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한미일관계 내에서의 한국의 상대적 소외의 결과를 가져왔던 기본적인 요인은 이승만이 설정한 역할인식과 그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인식간의 괴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의 한미일관계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orean-US relations were aggravated in the late-1950s, and the studies on this issue pointed out strategic, political, and economic factors of the conflict. This article, which is using Syngman Rhee s role conception as the main variable, and the case of Korean-US-Japanese relations regarding the problem of repatriation as a historical case, tries to provide a more systematic explanation. In the so-called mini-detente environment after the mid-1950s, many differences had emerged between Eisenhower s changing Korea policy and Syngman Rhee s position. Diplomatic conflicts on Korea-Japan relations, in addition to domestic and economic problems, are regarded as the main source of confrontation, and it is argued that Rhee had been resistant to the Korea-Japan talk whereas Japan the United States were affirmative to it. However, the archival analysis of the repatriation problem shows that Rhee was very active to solve it while Japanese and American governments were rather passive. The fundamental factor lading to Korea s isolation in Korean-US-Japanese relations was the distance between Syngman Rhee s role conception and US and Japanese perception on it, and the factor is still significant in the contemporary trilateral relationship.
      번역하기

      Korean-US relations were aggravated in the late-1950s, and the studies on this issue pointed out strategic, political, and economic factors of the conflict. This article, which is using Syngman Rhee s role conception as the main variable, and the case...

      Korean-US relations were aggravated in the late-1950s, and the studies on this issue pointed out strategic, political, and economic factors of the conflict. This article, which is using Syngman Rhee s role conception as the main variable, and the case of Korean-US-Japanese relations regarding the problem of repatriation as a historical case, tries to provide a more systematic explanation. In the so-called mini-detente environment after the mid-1950s, many differences had emerged between Eisenhower s changing Korea policy and Syngman Rhee s position. Diplomatic conflicts on Korea-Japan relations, in addition to domestic and economic problems, are regarded as the main source of confrontation, and it is argued that Rhee had been resistant to the Korea-Japan talk whereas Japan the United States were affirmative to it. However, the archival analysis of the repatriation problem shows that Rhee was very active to solve it while Japanese and American governments were rather passive. The fundamental factor lading to Korea s isolation in Korean-US-Japanese relations was the distance between Syngman Rhee s role conception and US and Japanese perception on it, and the factor is still significant in the contemporary trilateral relationship.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Ⅱ. 예비적 검토 Ⅲ. 정향적 변수: 이승만의 역할인식 Ⅳ. 한일회담과 북송문제의 사례 Ⅴ. 결론 〈참고문헌〉 〈초록〉 〈Abstract〉
      • Ⅰ. 서론 Ⅱ. 예비적 검토 Ⅲ. 정향적 변수: 이승만의 역할인식 Ⅳ. 한일회담과 북송문제의 사례 Ⅴ. 결론 〈참고문헌〉 〈초록〉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Carlsnaes, Walter., ""Foreign Policy," in W. Carlsnaes, et. al., eds., Handbook of International Relations," Sage. 2002

      2 이원덕, "한일 과거사 처리의 원점: 일본의 전후처리 외교와 한일회담"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3 신욱희, "한미동맹의 내부적 역동성: 분석틀의 모색,”『" 7 : 2-, 2001

      4 이철순, "이승만정권기 미국의 대한정책 연구(1948-1960)," 2000.

      5 신승준, "이승만과 1950년대 후반기의 한일회담" 1999.

      6 김일영, "이승만 정부에서의 외교정책과 국내정치: 북진, 반일정책과 국내 정치경제와의 연관성" 39 : 3-, 1999

      7 자유당 선전부, "이승만 저 박마리아 역. 1954.『일본내막기 The Challenge of Today"

      8 "외무부 문서, 릴 번호 O-0014, 773.1 US 1959 한.National Archives. 611.95B,"

      9 "양자조약-외교/군사.______. 외무부 문서, 릴 번호 O-0013, 773.1 US 1959.______."

      10 차상철, "아이젠하워, 이승만, 그리고 1950년대의 한미관계" 13 : 2001.

      1 Carlsnaes, Walter., ""Foreign Policy," in W. Carlsnaes, et. al., eds., Handbook of International Relations," Sage. 2002

      2 이원덕, "한일 과거사 처리의 원점: 일본의 전후처리 외교와 한일회담"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3 신욱희, "한미동맹의 내부적 역동성: 분석틀의 모색,”『" 7 : 2-, 2001

      4 이철순, "이승만정권기 미국의 대한정책 연구(1948-1960)," 2000.

      5 신승준, "이승만과 1950년대 후반기의 한일회담" 1999.

      6 김일영, "이승만 정부에서의 외교정책과 국내정치: 북진, 반일정책과 국내 정치경제와의 연관성" 39 : 3-, 1999

      7 자유당 선전부, "이승만 저 박마리아 역. 1954.『일본내막기 The Challenge of Today"

      8 "외무부 문서, 릴 번호 O-0014, 773.1 US 1959 한.National Archives. 611.95B,"

      9 "양자조약-외교/군사.______. 외무부 문서, 릴 번호 O-0013, 773.1 US 1959.______."

      10 차상철, "아이젠하워, 이승만, 그리고 1950년대의 한미관계" 13 : 2001.

      11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사 자료집 36: 이승만관계서한자료집 9(1957-1960)』." 국사편찬위원회 1997

      12 "대한민국 외무부. 외무부 문서, 릴 번호 J-0001, J741"

      13 홍용표, "국가안보와 정권안보: 이승만 대통령의 안보정책을 중심으로, 1953-1960" 36 : 3-, 1997

      14 제 2집, "공보실. 1956.『대통령 이승만 박사 담화집』"

      15 李鍾元, "東アシア冷戰と韓米日關係" 東京大學出版會. 1996

      16 김현철, "“청일전쟁 시기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이상과 현실,” 국제관계연구회 편,『근대국제질서와 한반도』," 을유문화사. 2002

      17 정용욱, "“이승만 정부의 붕괴(3.15-4.26): 이승만정부의 대응 및 미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편,『한국현대사의 재인식 4: 1950년대 후반기의 한국사회와 이승만정부의 붕괴』," 오름.

      18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역사적 고찰: 식민주의, 냉전, 탈냉전,” 국제관계연구회 편,『동아시아 국제관계와 한국』," 을유문화사. 2003

      19 "“냉전기 미일동맹의 정치경제, 1954-1960년: 일본의 역할,” 문정인 오코노기 마사오 공편,『시장, 국가, 국제체제』," 아연출판부. 2002

      20 이완범, "“1950년대 후반기의 정치위기와 미국의 대응: 1958년의 국가보안법 개정 파동을 중심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 연구소 편,『한국현대사의 재인식 4: 1950년대 후반기의 한국사회와 이승만정부의 붕괴』," 오름. 1998

      21 Cohen, "W. 1993. The Cambridge History of American Foreign Relations Vol. IV America in the Age of Soviet Pow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45-1991

      22 McCormick, "United States Policy in the Cold War"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3 Jervis, "The Impact of the Korean War on the Cold War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4-,

      24 Keohane, "Small States in International Politics" 2-,

      25 Jervis, "Robert. 1976. Perception and Misperception in International Politics" Columbia University Press.

      26 Kalevi J. 1970, "National Role Conceptions in the Study of Foreign Policy" 3-,

      27 "Meredith. 1991. Race to the Swift State and Finance in Korean Industrializat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28 Kim, Stephen Jin-Woo, "Master of Manipulations: Syngman Rhee and the Seoul-Washington Alliance, 1953-1960" Yonsei University Press. 2001

      29 Macdonald, "Donald S. 1992. U.S.-Korean Relations from Liberation to Self-reliance" Westview Press.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5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20-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19-12-01 평가 등재후보 탈락 (계속평가)
      2018-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2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 1 1.924 0.32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