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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10,1사건": 기억의 변경에서 변경의 기억으로 = October 1st Incident in Memory From the Frontier of Memory to Memory of 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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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10.1사건``에 대한 기억의 전유를 둘러싸고 유가족, 사회, 국가 사이에서 전개되었던 ``기억``과 ``망각``, ``대항기억`` 사이의 투쟁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0.1사건``은 1960년 피학살자유족회에 의해서 전개되었던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10.1사건`` 자체보다는 ``10.1사건``과 연루되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10.1사건``이 기억의 중심이 아니라 변경(가장자리)에 있었던 것은 현재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구·경북의 보도연맹사건이 대체로 ``10.1사건``에서 발단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결국 ``10.1사건``이 기억 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전국적으로 폭발한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에서는 ``10.1사건``은 중심에 서지 못하게 되어, 이제 ``10.1사건``은 기억의 변경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억 운동의 변경에 서 있다. 2010년에 진실화해위가 ``대구 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서를 발표함으로써 이제 ``10.1사건``은 국가의 공식적 기억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0월항쟁유족회와 일부 시민단체·연구단체가 주도하는 현재의 ``10.1사건``에 대한 기억 운동은 10.1사건에 대한 기억을 지역사회로까지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1960년의 기억 운동과 다른 점인데, 이는 대구 지역사회 자체가 1960년과는 다른 ``기억 체제``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월항쟁유족회는 ``10.1사건``에 대한 ``변경의 기억``에 서서 전체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와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의 중심``에 서서 지역사회에 ``10.1사건``에 대한 기억을 확장해 가야 하는 과제의 경계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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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10.1사건``에 대한 기억의 전유를 둘러싸고 유가족, 사회, 국가 사이에서 전개되었던 ``기억``과 ``망각``, ``대항기억`` 사이의 투쟁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0.1사건``은 1960년 ...

    이 논문은 ``10.1사건``에 대한 기억의 전유를 둘러싸고 유가족, 사회, 국가 사이에서 전개되었던 ``기억``과 ``망각``, ``대항기억`` 사이의 투쟁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0.1사건``은 1960년 피학살자유족회에 의해서 전개되었던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10.1사건`` 자체보다는 ``10.1사건``과 연루되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10.1사건``이 기억의 중심이 아니라 변경(가장자리)에 있었던 것은 현재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구·경북의 보도연맹사건이 대체로 ``10.1사건``에서 발단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결국 ``10.1사건``이 기억 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전국적으로 폭발한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에서는 ``10.1사건``은 중심에 서지 못하게 되어, 이제 ``10.1사건``은 기억의 변경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억 운동의 변경에 서 있다. 2010년에 진실화해위가 ``대구 10월사건 관련 민간인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서를 발표함으로써 이제 ``10.1사건``은 국가의 공식적 기억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0월항쟁유족회와 일부 시민단체·연구단체가 주도하는 현재의 ``10.1사건``에 대한 기억 운동은 10.1사건에 대한 기억을 지역사회로까지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1960년의 기억 운동과 다른 점인데, 이는 대구 지역사회 자체가 1960년과는 다른 ``기억 체제``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월항쟁유족회는 ``10.1사건``에 대한 ``변경의 기억``에 서서 전체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와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억 운동의 중심``에 서서 지역사회에 ``10.1사건``에 대한 기억을 확장해 가야 하는 과제의 경계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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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examined the fights of "memory" and "counter-memory" for monopolizing the memory of the "October 1st Incident" that have been carried out among the families of the victims, the society, and the state. The Incident positioned itself in the center of the memory movements addressing civilian mass slaughter that were launched by the Survivors Organization in the 1960``s. It was true, though, that the focus of the memory at that time was on those massacred on the ground of their involvement in Bodoyeonmang (the National Guidance League). It could be said that the memory of the October 1st Incident stayed at the edges then, too. Given that the Bodoyunmang Incident was surely touched off by the October 1st Incident, it can be safely said that the latter Incident lies at the center of the memory movements after all. The October 1st Incident, however, did not find itself at the center of the memory movements on the civilian genocide(mass killings) that had been bursting out nationwide in a democratized Korea. Now the Incident is edged out not only in terms of memory but also in the memory movements. With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ttee pronouncing its decision to investigate the victims of the October 1st Incident in Daegu in 2010, the state came to memorize the victims of the Incident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Further, this decision prompted the formation of the "Association of Bereaved Families of Civilian Victims of the October Protest" and its active movement as memory. Still, the memory movements carried out by the Survivors Organization of the October Protest and some civic groups have not been spread to the local society. Here is the difference from those launched by the Kyungbuk (Daegu) Association of the Bereaved in the 1960s. This is largely due to the fact that the local society now forms a ``memory regime`` different from that in the 1960``s. Therefore, the Survivors Organization of Civilian Victims of the October Protest is now faced with the two tasks: the o ne o f leading the memory of October 1st Incident to develop the entire movement as memory dealing with civilian victims; the other, to spread the memory movements addressing civilian massacres in the lo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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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d the fights of "memory" and "counter-memory" for monopolizing the memory of the "October 1st Incident" that have been carried out among the families of the victims, the society, and the state. The Incident positioned itself in the c...

    This study examined the fights of "memory" and "counter-memory" for monopolizing the memory of the "October 1st Incident" that have been carried out among the families of the victims, the society, and the state. The Incident positioned itself in the center of the memory movements addressing civilian mass slaughter that were launched by the Survivors Organization in the 1960``s. It was true, though, that the focus of the memory at that time was on those massacred on the ground of their involvement in Bodoyeonmang (the National Guidance League). It could be said that the memory of the October 1st Incident stayed at the edges then, too. Given that the Bodoyunmang Incident was surely touched off by the October 1st Incident, it can be safely said that the latter Incident lies at the center of the memory movements after all. The October 1st Incident, however, did not find itself at the center of the memory movements on the civilian genocide(mass killings) that had been bursting out nationwide in a democratized Korea. Now the Incident is edged out not only in terms of memory but also in the memory movements. With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ttee pronouncing its decision to investigate the victims of the October 1st Incident in Daegu in 2010, the state came to memorize the victims of the Incident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Further, this decision prompted the formation of the "Association of Bereaved Families of Civilian Victims of the October Protest" and its active movement as memory. Still, the memory movements carried out by the Survivors Organization of the October Protest and some civic groups have not been spread to the local society. Here is the difference from those launched by the Kyungbuk (Daegu) Association of the Bereaved in the 1960s. This is largely due to the fact that the local society now forms a ``memory regime`` different from that in the 1960``s. Therefore, the Survivors Organization of Civilian Victims of the October Protest is now faced with the two tasks: the o ne o f leading the memory of October 1st Incident to develop the entire movement as memory dealing with civilian victims; the other, to spread the memory movements addressing civilian massacres in the lo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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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송건호,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길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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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소영, "해방 직후 경북지역의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In 한국근현대지역운동사1" 여강 1993

    4 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한국혁명재판사 4: 경상남북도피학살자유족회사건편"

    5 역사정의실천연대,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희생자전국유족회 대구연수회의 소감"

    6 이무열,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의 이해, 그 두 번째" 18 : 2006

    7 이동진, "한국전쟁과 제노사이드: 경북 영천군을 사례로" 5 (5): 2012

    8 경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NGO센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최종결과보고서: 경북 영천시" 2009

    9 구대선, "한국전 양민학살 제보 105곳 접수"

    10 이창현, "한국의 민간인 학살사건 재판연구 -경주 내남면 학살사건 재판사례를 중심으로-" 고려사학회 (39) : 293-3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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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한국혁명재판사 4: 경상남북도피학살자유족회사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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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경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NGO센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최종결과보고서: 경북 영천시" 2009

    9 구대선, "한국전 양민학살 제보 105곳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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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채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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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정태영, "조봉암과 진보당" 한길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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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김주완, "1950년 마산의 참극"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 2009

    74 허미옥, "1946년 10월 대구항쟁, 사진 첫 공개" 참언론대구시민연대

    75 유지웅, "1945년 10월, 60년전 대구 그날은" 인터넷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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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함종호, "10월 민중항쟁은 복권되어야 한다" 12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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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10-07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1-50) ->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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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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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9 1.09 1.1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6 1.11 1.7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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