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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성종대의 여진인 “來朝” 연구 = A Study of the Jurchen Envoy in Seongjong’s Reign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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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827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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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examines what relationship Joseon would set up between the Joseon and Jurchen focusing on the status of Jurchen envoy in King Seongjong’s reign where the system of Joseon was completed. In this time, there were 344 Jurchen envoys as King Seongjong succeeded the Jurchen policy of inherited King. This paper studied how Joseon controlled the Jurchen envoy and why Joseon accept it by analysing the status of Jurchen envoy in trend, power and time. As a result, the intention of Joseon is the most important factor for the Jurchen envoy. Joseon would construct the self-centered order through Jurchen envoy while accepting the order of Ming.
    As accepting Jurchen Envoy, Joseon made the reception rule and time of envoy. These rules and time are very similar to what Ming had. There were most Jurchen envoys in November, December and January to attend Dongii and Zhengcho conratulatory rites. Various policies and rites were completed in Seongjong’s reign. In this time, reformation including envoy frequency, people, and time was finished, too. Therefore, this era has a strong influence on later 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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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s what relationship Joseon would set up between the Joseon and Jurchen focusing on the status of Jurchen envoy in King Seongjong’s reign where the system of Joseon was completed. In this time, there were 344 Jurchen envoys as King ...

    This Study examines what relationship Joseon would set up between the Joseon and Jurchen focusing on the status of Jurchen envoy in King Seongjong’s reign where the system of Joseon was completed. In this time, there were 344 Jurchen envoys as King Seongjong succeeded the Jurchen policy of inherited King. This paper studied how Joseon controlled the Jurchen envoy and why Joseon accept it by analysing the status of Jurchen envoy in trend, power and time. As a result, the intention of Joseon is the most important factor for the Jurchen envoy. Joseon would construct the self-centered order through Jurchen envoy while accepting the order of Ming.
    As accepting Jurchen Envoy, Joseon made the reception rule and time of envoy. These rules and time are very similar to what Ming had. There were most Jurchen envoys in November, December and January to attend Dongii and Zhengcho conratulatory rites. Various policies and rites were completed in Seongjong’s reign. In this time, reformation including envoy frequency, people, and time was finished, too. Therefore, this era has a strong influence on later 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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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조선의 제도가 완비된 성종대의 여진인 내조의 현황을 중심으로 조선이 여진인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성종대에는 이전 왕대의 여진 정책을 계승하여 재위 연간 344회에 이르는 여진인 내조가 있었다. 따라서 성종대 여진인 내조의 현황을 그 시간의 추이 과정과 세력별, 월별 등으로 분석하여 조선이 여진인의 내조를 통제하는 양상과 수용 의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여진인의 내조는 조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고, 이를 통해 조선은 명의 질서를 인정하는 가운데 다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여진인의 내조를 수용하여, 이들에 관한 접대규정 및 내조 시기 등을 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 및 시기 등은 명이 여진인에게 행한 것과 거의 같은 양상을 보인다. 특히 여진인의 내조 시기가 11월, 12월, 1월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여진인이 동지와 정조의 하례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성종대는 각종 제도와 의례의 완비와 맞물려 여진인의 내조 횟수, 인원, 시기 등을 재정비하는 시기였고, 후대 왕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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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조선의 제도가 완비된 성종대의 여진인 내조의 현황을 중심으로 조선이 여진인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성종대에는 이전 왕대의 여진 정...

    본 연구는 조선의 제도가 완비된 성종대의 여진인 내조의 현황을 중심으로 조선이 여진인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성종대에는 이전 왕대의 여진 정책을 계승하여 재위 연간 344회에 이르는 여진인 내조가 있었다. 따라서 성종대 여진인 내조의 현황을 그 시간의 추이 과정과 세력별, 월별 등으로 분석하여 조선이 여진인의 내조를 통제하는 양상과 수용 의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여진인의 내조는 조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고, 이를 통해 조선은 명의 질서를 인정하는 가운데 다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여진인의 내조를 수용하여, 이들에 관한 접대규정 및 내조 시기 등을 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 및 시기 등은 명이 여진인에게 행한 것과 거의 같은 양상을 보인다. 특히 여진인의 내조 시기가 11월, 12월, 1월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여진인이 동지와 정조의 하례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성종대는 각종 제도와 의례의 완비와 맞물려 여진인의 내조 횟수, 인원, 시기 등을 재정비하는 시기였고, 후대 왕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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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전해종, "한중관계사연구" 일조각 1970

    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2" 국사편찬위원회 1994

    3 계승범, "파병 논의를 통해 본 조선전기 對明觀의 변화" 대동문화연구원 (53) : 309-346, 2006

    4 김한규, "천하국가" 소나무 2005

    5 한성주, "조선전기 수직여진인 연구" 경인문화사 2011

    6 박정민, "조선 세조대 여진인 來朝와 귀속문제" 전북사학회 (41) : 77-116, 2012

    7 한성주, "조선 세조대 ‘女眞 和解事’에 대한 연구 - 申叔舟의 파견을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재단 (38) : 259-294, 2012

    8 강제훈, "조선 성종대 朝會儀式과 朝會 운영" 고려사학회 (27) : 45-81, 2007

    9 박정민, "조선 건국기의 여진인 來朝와 조선의 외교구상 -태조~태종대를 중심으로-" 호남사학회 (49) : 33-66, 2013

    10 김순남, "조선 成宗代의 建州三衛" 대동문화연구원 (68) : 223-253, 2009

    1 전해종, "한중관계사연구" 일조각 1970

    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2" 국사편찬위원회 1994

    3 계승범, "파병 논의를 통해 본 조선전기 對明觀의 변화" 대동문화연구원 (53) : 309-346, 2006

    4 김한규, "천하국가" 소나무 2005

    5 한성주, "조선전기 수직여진인 연구" 경인문화사 2011

    6 박정민, "조선 세조대 여진인 來朝와 귀속문제" 전북사학회 (41) : 77-116, 2012

    7 한성주, "조선 세조대 ‘女眞 和解事’에 대한 연구 - 申叔舟의 파견을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재단 (38) : 259-294, 2012

    8 강제훈, "조선 성종대 朝會儀式과 朝會 운영" 고려사학회 (27) : 45-81, 2007

    9 박정민, "조선 건국기의 여진인 來朝와 조선의 외교구상 -태조~태종대를 중심으로-" 호남사학회 (49) : 33-66, 2013

    10 김순남, "조선 成宗代의 建州三衛" 대동문화연구원 (68) : 223-253, 2009

    11 김순남, "조선 成宗代 兀狄哈에 대하여" 조선시대사학회 (49) : 35-63, 2009

    12 박정민, "세조대의 여진관계와 정책 -여진인 來朝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51) : 103-135, 2010

    13 정동훈, "명대의 예제 질서에서 조선국왕의 위상" 한국역사연구회 (84) : 251-292, 2012

    14 박옥걸, "고려시대 귀화인 연구" 국학자료원 1996

    15 이인영, "鮮初女眞貿易考" 8 : 1937

    16 王臻, "朝鲜前期与明建州女真关系研究" 中国文史出版社 2005

    17 한성주, "朝鮮前期 ‘字小’에 대한 고찰-對馬島 倭人 및 女眞 勢力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학회 (33) : 203-236, 2009

    18 정다함, "朝鮮初期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 · 藩屛 認識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 국학연구원 (141) : 221-26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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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남의현, "明代遼東支配政策硏究" 강원대학교출판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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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園田一龜, "明代建州女直史硏究, (續)" 國立書院 1953

    23 杨暘, "明代东北疆域研究" 吉林人民出版社 2008

    24 刁书仁, "成化年间明与朝鲜两次征讨建州女真" (2)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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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金九鎭, "13C~17C女眞 社會의 硏究: 金 滅亡 以後 淸 建國 以前까지 女眞社會의 組織을 中心으로" 고려대학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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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2 1.12 0.9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 0.83 1.73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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