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청 제국의 전환점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까지 ‘滿洲族’이 중심이 되는 淸 帝國을 만들고자 한 康熙帝의 활동을 벨비스트(Ferdinand Verbiest, 南懷仁, 1623-1688), 부베(Joachim Bou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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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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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청 제국의 전환점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까지 ‘滿洲族’이 중심이 되는 淸 帝國을 만들고자 한 康熙帝의 활동을 벨비스트(Ferdinand Verbiest, 南懷仁, 1623-1688), 부베(Joachim Bouvet, 白晉, 1656-1730), 젤비용(Jean François Gerbillon, 張誠, 1645-1707), 르콩뜨(Louis Le Comte, 李明, 1655-1728), 리파(Matteo Ripa, 馬國賢, 1682-1745) 등 5명의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조명하였다.
강희제의 제국 지배에 대한 구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北京을 청 제국의 수도로서 보다 확실하게 정착시키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사실 북경은 이미 그가 즉위하기 전부터 明代의 북경과는 다른 모습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위에 강희제는 만주족의 기질을 반영한 暢春園을 조성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군주가 직접 각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새로운 개념의 수도를 만들었고, 이러한 방식은 이후 황제들에게 계승되어 청 제국의 특성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청 제국에 대한 청사진은 旗人들 중에서도 滿洲八旗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과 만주어에 대한 공격적이면서도 적극적인 구상으로도 나타났다. 만주팔기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경제적 지원 외에 부정기적으로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는데 반해 漢軍八旗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그 입지를 좁혀갔다. 나아가 만주어를 청 제국의 중심언어로 자리잡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주어의 위상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중국의 고전을 번역하고, 만주어 사전을 편찬하였다. 강희제가 가졌던 청사진은 만주족을 정점에 두고 중앙 집권화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청 제국의 미래에 대한 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만주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국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 전제조건이었고, 그것을 강조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였다. 그것을 위해서 활용한 것이 대규모 사냥이었다. 청의 군주는 이렇게 채택한 사냥을 연례행사로 정착시키면서 만주족의 특성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선택한 사냥은 만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써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몽골족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활용하였다. 준가르의 갈단과 내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준가르와 잠재적 동맹자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던 할하몽골과의 관계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7세기 후반 할하몽골을 영향력 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청 조정은 상당히 신중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할하몽골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상쇄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냥을 활용하였다.
이처럼 청 제국의 전환점인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강희제는 만주족이 중심이 되는 제국 운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였고, 군주는 대규모 사냥을 통해서 직접 對面하면서 시범과 모범을 보여 만주족의 특성을 강조해 나갔다. 이렇게 강조된 특성들은 이후 ‘늘 있어왔던’ 만주족 고유의 특성과 전통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였다. 따라서 18세기 후반에 만주족의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는 언급 속에 등장하는 만주족의 특성 등은 강희제가 온 몸으로 구현한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만주족의 정체성이 강조된 기반 위에서 이후 청 제국의 확대와 성공이 가능하였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