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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定齋 柳致明 종가 3대의 독립운동 = Independence Movement of Ryoo Chee-Myeong’s Head Family for Three Generations and its Historical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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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82645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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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정재 류치명(1777~1861)은 퇴계학맥의 정맥을 이은 대학자요, 1800년대 퇴계문화권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러한 위상을 가진 집안이었으므로, 역사적인 격변 시기에 주어지는 역사적 부담과 역할을 흘려 지날 수는 없었다. 외침에 맞서기 시작한 때는 류치명의 아들 류지호(1825~1904)부터다. 그를 이어 손자 류연박(1844~1925)과 류연성(1857~1919), 증손자 류동시(1886~1961)와 류동저(1892~1948)로 이어지는 3대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 연구는 이들 3대의 독립운동을 추적하고 그 역사적 위상을 정리하는 데 목표를 둔다.
      한국 독립운동의 출발점은 의병이다. 거기에 류지호가 참가하면서 정재 종가의 독립운동은 시작하였다. 1895년 12월 안동에서 의병이 일어날때, 류지호가 지도자로 움직였고, 아들 류연박은 그 이듬해까지 전개된 안동의진의 참모를 맡아 활약하였다.
      의병항쟁의 다음 단계가 구국계몽운동이다. 안동에서는 협동학교와 대한협회 안동지회 활동이 두드러졌다. 정재 종가 사람들은 협동학교에 기여하였다. 특히 나라를 잃은 뒤 협동학교 주역들이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만주로 이동하자, 협동학교를 도맡은 사람들이 바로 무실마을 전주류씨 문중이었다. 협동학교가 정재 종가로 이전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는 정재 종가의 성향이 위정척사에서 애국계몽운동으로 전환했음을 말해준다. 새로운 시대의 인물들을 키워내는 데 종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종가 주인 류연박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을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류연박·류연성 형제, 류연박·류동시 부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임동 챗거리시장에서 벌어진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계기를 만든 사람이 류동시이고, 그것을 꽃 피운 사람이 류연성이었다. 특히 류연성의 활약은 임동 만세운동이 전국에서도 보기 힘들만큼 강한 투쟁을 이끌어냈다. 같은 무렵에 류연박은 ’파리장서’에 참가하였다. 이는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유림들이 나서서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독립청원서’를 보낸 것이다. 여기에는 그의 류연박의 사위 김세동도 자금을 모아 힘을 보탰다.
      1920년대에 들어 류연박의 둘째 아들 류동저가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대를 이었다. 그는 안동청년회에 참가하여 강의하고, 토론을 이끌기도 했다. 특히 그가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의 총간사를 맡았다. 조선 노동공제회는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조직이다. 노동자도 아닌 양반 집안청년이 초기 노동운동을 이끈 것이다. 이 사실은 초기 노동운동이 단순한 노동운동이 아니라,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독립운동의 차원의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계몽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전환한다는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3세대가 192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저항운동을 지속해 나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재 종가는 퇴계문화권에서 가지는 역사적 위상이 대단히 높았다. 그 위상은 역사적 부담이기도 했다. 정재 후손 3대는 이를 결코 피하지 않고, 맞서 나갔다. 그 성격도 위정척사에서 애국계몽운동으로, 다시 사회운동이라는 3단계로 이어졌다. 이들의 활동은 나라를 지키고 되살리는 것이자, 역사적 책무를 다하려는 투쟁이었다. 정재 종가의 독립운동은 전통적인 유림 집안이 대를 이어가며 민족문제에 맞서 나간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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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 류치명(1777~1861)은 퇴계학맥의 정맥을 이은 대학자요, 1800년대 퇴계문화권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러한 위상을 가진 집안이었으므로, 역사적인 격변 시기에 주어지는 역사적 부담과 역...

      정재 류치명(1777~1861)은 퇴계학맥의 정맥을 이은 대학자요, 1800년대 퇴계문화권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러한 위상을 가진 집안이었으므로, 역사적인 격변 시기에 주어지는 역사적 부담과 역할을 흘려 지날 수는 없었다. 외침에 맞서기 시작한 때는 류치명의 아들 류지호(1825~1904)부터다. 그를 이어 손자 류연박(1844~1925)과 류연성(1857~1919), 증손자 류동시(1886~1961)와 류동저(1892~1948)로 이어지는 3대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 연구는 이들 3대의 독립운동을 추적하고 그 역사적 위상을 정리하는 데 목표를 둔다.
      한국 독립운동의 출발점은 의병이다. 거기에 류지호가 참가하면서 정재 종가의 독립운동은 시작하였다. 1895년 12월 안동에서 의병이 일어날때, 류지호가 지도자로 움직였고, 아들 류연박은 그 이듬해까지 전개된 안동의진의 참모를 맡아 활약하였다.
      의병항쟁의 다음 단계가 구국계몽운동이다. 안동에서는 협동학교와 대한협회 안동지회 활동이 두드러졌다. 정재 종가 사람들은 협동학교에 기여하였다. 특히 나라를 잃은 뒤 협동학교 주역들이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만주로 이동하자, 협동학교를 도맡은 사람들이 바로 무실마을 전주류씨 문중이었다. 협동학교가 정재 종가로 이전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는 정재 종가의 성향이 위정척사에서 애국계몽운동으로 전환했음을 말해준다. 새로운 시대의 인물들을 키워내는 데 종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종가 주인 류연박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을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류연박·류연성 형제, 류연박·류동시 부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임동 챗거리시장에서 벌어진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계기를 만든 사람이 류동시이고, 그것을 꽃 피운 사람이 류연성이었다. 특히 류연성의 활약은 임동 만세운동이 전국에서도 보기 힘들만큼 강한 투쟁을 이끌어냈다. 같은 무렵에 류연박은 ’파리장서’에 참가하였다. 이는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유림들이 나서서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독립청원서’를 보낸 것이다. 여기에는 그의 류연박의 사위 김세동도 자금을 모아 힘을 보탰다.
      1920년대에 들어 류연박의 둘째 아들 류동저가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대를 이었다. 그는 안동청년회에 참가하여 강의하고, 토론을 이끌기도 했다. 특히 그가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의 총간사를 맡았다. 조선 노동공제회는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조직이다. 노동자도 아닌 양반 집안청년이 초기 노동운동을 이끈 것이다. 이 사실은 초기 노동운동이 단순한 노동운동이 아니라,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독립운동의 차원의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계몽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전환한다는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3세대가 192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저항운동을 지속해 나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재 종가는 퇴계문화권에서 가지는 역사적 위상이 대단히 높았다. 그 위상은 역사적 부담이기도 했다. 정재 후손 3대는 이를 결코 피하지 않고, 맞서 나갔다. 그 성격도 위정척사에서 애국계몽운동으로, 다시 사회운동이라는 3단계로 이어졌다. 이들의 활동은 나라를 지키고 되살리는 것이자, 역사적 책무를 다하려는 투쟁이었다. 정재 종가의 독립운동은 전통적인 유림 집안이 대를 이어가며 민족문제에 맞서 나간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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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의병항쟁에 나선 柳止鎬 · 淵博 부자
      • 3. 定齋 종가에 옮겨 온 協東學校
      • 4. 임동 챗거리(鞭巷)장터 3 · 1운동의 주역 柳淵成
      • 5. 巴里長書에 참가한 柳淵博
      • 1. 머리말
      • 2. 의병항쟁에 나선 柳止鎬 · 淵博 부자
      • 3. 定齋 종가에 옮겨 온 協東學校
      • 4. 임동 챗거리(鞭巷)장터 3 · 1운동의 주역 柳淵成
      • 5. 巴里長書에 참가한 柳淵博
      • 6. 사회운동에 나선 柳東著
      • 7. 맺음말
      • 참고문헌
      • 국문요약
      • 영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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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희곤, "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2 김희곤, "박상진자료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0

      3 조선총독부 경북경찰부, "고등경찰요사"

      4 金道鉉, "碧山先生倡義顚末 in 독립운동사자료집 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5 김창숙, "心山遺稿" 국사편찬위원회 1973

      6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3" 1971

      1 김희곤, "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2 김희곤, "박상진자료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0

      3 조선총독부 경북경찰부, "고등경찰요사"

      4 金道鉉, "碧山先生倡義顚末 in 독립운동사자료집 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5 김창숙, "心山遺稿" 국사편찬위원회 1973

      6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3"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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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5-20 학술지등록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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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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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9 0.59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2 1.442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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