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처음 공개된 실물 인쇄 조보(1577년 발행)는 세계 최초의 상업적 활자본 일간 신문으로 평가된다. 본고는 이러한 민간 인쇄 조보의 가치에 주목하되, 특별히 인쇄 조보를 유통시킨 주...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2017년에 처음 공개된 실물 인쇄 조보(1577년 발행)는 세계 최초의 상업적 활자본 일간 신문으로 평가된다. 본고는 이러한 민간 인쇄 조보의 가치에 주목하되, 특별히 인쇄 조보를 유통시킨 주...
2017년에 처음 공개된 실물 인쇄 조보(1577년 발행)는 세계 최초의 상업적 활자본 일간 신문으로 평가된다. 본고는 이러한 민간 인쇄 조보의 가치에 주목하되, 특별히 인쇄 조보를 유통시킨 주체와 유통 방식, 보도 매체로서의 장점과 조보 독서의 매체문화사적 의미에 관해 살펴보고자 했다. 본고는 생계유지를 위해 인쇄 조보를 제작해 유통시켰다고 한 이들을 상업과 운송에 관한 실무능력이 뛰어났던, 퇴직한 경주인(京主人)과 기인(其人)들로 보았다. 이들은 당시 인쇄 조보의 유통을 위해 우역(郵驛)과 역참(驛站) 제도를 적극 활용했고, 서적 구입과 비슷한 경로로 조보를 구해 읽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런 사정을 조보 관련 여러 문집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고는 16세기 말에 인쇄 조보가 나올 수 있었던 유ㆍ무형적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유형적 요인으로는 첫째, 인쇄술의 발달, 둘째, 역참과 우역 제도처럼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령 및 우편망의 발달을 들 수 있다. 무형적 요인으로는 첫째, 정보 가치가 있는 사건에 대한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려는 의식의 사회적 작동 정도, 둘째, 주기적인 정보 확보가 중요한 사대부 지식인 사회의 존재 유무를 들었다. 인쇄 조보가 필사 조보보다 우수한 이유는 양자 간의 대비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인쇄 조보는 필사 조보와 달리 내용 변개가 어렵기 때문에 정확성,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고, 가독성과 시사성, 주기성이 강해 충분히 구독자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또한 대량 생산을 통해 보다 많은 조보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매체문화사적으로 볼 때, 인쇄 조보는 조선 사회에 커다란 지식 및 정보 공유를 가능케 한 매체다. 현재 기적적으로 발견된 인쇄 조보는 낱장 문서 9장에 국한되어 있어 인쇄 조보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인쇄 조보가 세계 최초의 ‘활판인쇄 상업 일간신문’로서의 지위를 온전히 평가받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까지 종합적인 추가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2017, the world's first commercial daily print newspaper was discovered. This newspaper Jo-Bo(朝報) was originally published in 1577. This study is aimed at attending to the value of the printed report, especially to examine distribution method a...
In 2017, the world's first commercial daily print newspaper was discovered. This newspaper Jo-Bo(朝報) was originally published in 1577. This study is aimed at attending to the value of the printed report, especially to examine distribution method and subject of the printed report Jo-Bo(朝報), the merits of the media, and the meaning of the history of the media culture. This paper sees those who have produced and distributed print newspaper(朝報) for their livelihood as retired government official in Seoul(京主人) and commercial official Gi-In(其人) who had excellent proficiency in commerce and transportation. At the time, they used the postal networks and system for the distribution of printed newspapers, and newspaper readers obtained and read the report by a similar channel to the purchase of books. This paper examines two of the tangible and intangible factors that the printing press could have produced at the end of the 16th century. The tangible factors include, firstly, the development of typography, and secondly, the development of regular and systematic messengers and postal networks. Intangible factors include, first, the degree of social operation of the consciousness to convey knowledge of events with information value to others, and second, the existence of a society, which is important for the nobleman, to secure periodic information. In addition, the reason why the civilian printing press is superior to the manuscriptal press can be seen through the contrast between the two. Unlike the manuscriptal press, the printing press is difficult to change the contents, thus ensuring accuracy and publicity, and the readability, suggestiveness, and periodicity are strong enough to attract subscribers' satisfaction. In addition, mass production can inform more news readers. In terms of media and cultural history, the printing newspaper Jo-Bo(朝報) is a medium that allows great knowledge and information sharing to the Joseon society. The necessity of issuing printing press continued to be raised among intellectuals in later years. A few years ago miraculously found printing press Jo-bo is currently limited to nine sheets of paper, making it difficult to fully understand the reality of printing newspapers. In order for Printing newspaper Jo-Bo(朝報) to be fully appreciated as the world's first print typographical daily newspaper, further discussions need to be carried out in other field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洪大容, "「桂坊日記」 乙未年(1775) 4月 9日, 『湛軒書』 內集 卷2"
2 "「己卯錄 補遺」, 『大東野乘』, 卷上"
3 정창권,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사계절 102-, 2003
4 최정태, "한국의 官報" 아세아문화사 1994
5 우정사업본부, "한국우정 130년사: 1권 1884∼1981" 우정사업본부 41-42, 2014
6 최준, "한국신문사" 일조각 1960
7 성준덕, "한국신문사" 신문학회 1955
8 모리스 쿠랑, "한국서지와 문화" 신구문화사 3-, 1974
9 진기홍, "한국문화사대계Ⅲ: 과학기술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70
10 유탁일, "한국고소설론" 아세아문화사 358-, 1991
1 洪大容, "「桂坊日記」 乙未年(1775) 4月 9日, 『湛軒書』 內集 卷2"
2 "「己卯錄 補遺」, 『大東野乘』, 卷上"
3 정창권,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사계절 102-, 2003
4 최정태, "한국의 官報" 아세아문화사 1994
5 우정사업본부, "한국우정 130년사: 1권 1884∼1981" 우정사업본부 41-42, 2014
6 최준, "한국신문사" 일조각 1960
7 성준덕, "한국신문사" 신문학회 1955
8 모리스 쿠랑, "한국서지와 문화" 신구문화사 3-, 1974
9 진기홍, "한국문화사대계Ⅲ: 과학기술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70
10 유탁일, "한국고소설론" 아세아문화사 358-, 1991
11 조성기, "창선감의록" 문학동네 143-, 2010
12 차배근, "중국 邸報의 기원과 발달 과정에 대한 소고 : 우리나라 조보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21 : 53-99, 1984
13 백승철, "조선후기 상업사 연구 - 상업론 상업정책" 혜안 217-258, 2000
14 신양선, "조선중기 서지사 연구-16세기 관찬서를 중심으로" 혜안 2012
15 박평식, "조선전기의 行商과 지방교역" 연세대 국학연구원 (77-79) : 331-360, 1993
16 朴正圭, "조선왕조시대의 전근대적 신문에 관한 연구 : 朝報와 그 유사물의 특성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1982
17 옥영정, "조선시대 인쇄관청의 活字印刷 匠人 연구 - 均字匠을 중심으로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47) : 71-94, 2009
18 김동철,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461-, 1996
19 이헌창,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472-477, 1996
20 김영주, "조선시대 민간인쇄 조보(朝報)의 언론사적 의의" 한국언론정보학회 85 (85): 7-29, 2017
21 김영주, "조선시대 민간 인쇄 조보의 언론사적 의의" 영천역사문화박물관 30-35, 2019
22 이민희, "조선과 중국의 서적중개상과 서적 유통문화 연구" 국학연구원 (141) : 323-363, 2008
23 김경수, "조보의 발행과 그 성격" 한국사학회 (58ㆍ59) : 723-755, 1999
24 김영주, "조보(朝報)에 대한 몇 가지 쟁점 - 필사조보의 기원, 명칭, 폐간시기, 기문기사 성격과 민간인쇄조보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회 43 (43): 247-281, 2008
25 정진석, "압수당한 항일시와 조보" (322) : 108-114,
26 원재영, "쉽게 읽는 서울사" 서울역사편찬원 55-56, 2019
27 이연순, "미암 유희춘의 일기문학" 혜안 68-87, 2012
28 베르너 파울슈티히, "근대 초기 매체의 역사: 매체로 본 지배와 반란이 사회 문화사" 지식의 풍경 325-326, 2007
29 "顯宗實錄 卷4, 顯宗 2年 2月 乙未條"
30 奇大升, "論思錄 下卷, 高峯全書"
31 柳希春, "眉庵日記 丁卯年(1567) 10月9日, 『眉巖集』 卷5"
32 柳希春, "眉巖日記, 辛未年 十月 十四日, 十五日, 十九日"
33 차상찬, "朝鮮新聞發達史" 개벽사 (4) : 2-12, 1935
34 李廷龜, "廢逐錄(下), 『月沙集』 卷15"
35 "仁祖實錄 卷25, 仁祖 9年 7月 庚辰條"
36 "中宗實錄 卷21, 中宗 9年 10月 甲寅條"
37 유영옥, "『頤齋亂藁』를 통해 본 '朝報'의 유통과 함의" 동양한문학회 33 (33): 237-266, 2011
38 "<來關秩>, 「改修日記謄錄」, 『日記廳謄錄』 丙寅(1746) 五月日"
39 李廷龜, "<贈兵曹參判南公墓碣銘 幷序 「墓碣銘(下)」, 『月沙集』 卷47"
40 柳壽垣, "<論免稅保率之類>, 『迂書』 卷7"
41 李玄逸, "<與趙子冕>, 「書」, 『葛庵集』 別集 卷3"
42 尹拯, "<與成汝中>, 「書」, 『明齋遺稿』 卷16"
43 盧守愼, "<聞赦>, 「詩」, 『蘇齋集』 卷3"
44 林悌, "<答李咸陵君>, 「書」, 『白湖全書』 卷16"
45 金尙憲, "<答趙尙州子長>, 「書牘」, 『淸陰集』 卷40"
46 閔遇洙, "<答李幼文>, 「書」, 『貞菴集』 卷5"
47 宋浚吉, "<答南仲輝>, 「書」, 『同春堂集』 卷13"
48 李肯翊, "<禁令>, 「政敎典故」, 『練藜室記述』 別集 卷13"
49 丁若鏞, "<田制>, 「地官修制」, 『經世遺表』 卷7"
50 李詹, "<楮生傳>, 『東文選』 卷101"
51 盧守愼, "<憶弟有感[三月]>, 「詩」, 『蘇齋集』 卷3"
52 李玄逸, "<寄子栽>, 「書」, 『葛庵集』 卷17"
53 金景善, "<初二日>, 「留館錄」 1833年 1月, 『燕轅直指』 卷4"
54 奇大升, "<先生前答上狀 李判府事宅>, 「兩先生往復書」 卷3, 『高峯全書』"
55 "<傳敎ㆍ啓辭等>, 「改修日記謄錄」, 『日記廳謄錄』 丙寅年(1746) 5月24日"
56 趙慶南, "<丁巳年 二月條>, 「續雜錄」(一), 『大東野乘』"
57 권기성, "18세기 야담의 현실인식과 새로운 현처담의 등장 - 「조보」의 서사구성 분석을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소 (67) : 309-334, 2018
58 옥영정, "16세기 후반~17세기 조선의 목활자인쇄와 출판문화적 의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72) : 21-46, 2015
59 옥영정, "16세기 목활자 인쇄와 조보인쇄의 가치" 영천역사문화박물관 44-46, 2019
60 이민희,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 관계 연구(국문학회 우수학술상 수상 도서)" 도서출판 역락 34-64, 2007
‘한국-베트남 고전문학의 이해와 문화소통’(Ⅰ) 특집을 간행하며
베트남 고전산문 및 베트남 제재의 한국 고전산문 연구현황 검토
베트남에서의 한국문학 소개 및 연구 - 현황과 향후 과제 -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54 | 0.54 | 0.56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59 | 0.58 | 0.973 | 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