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consented understanding on the beginning paragraph of the description of King Gwanggaeto’s invasion on Baekje in 396 in his Stele, the entry of Sin-myo(辛卯) year, despite of not a little scholars suggested their own interpretation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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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식 (동국대학교)
2020
Korean
The Stele of King Gwanggaeto ; Goguryeo ; Baekje ; Shilla ; Wa(=Japan) ; the theory of pre-positioned paragraph ; 광개토왕비 ; 고구려 ; 백제 ; 왜 ; 前置文說
KCI등재
학술저널
251-27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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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 consented understanding on the beginning paragraph of the description of King Gwanggaeto’s invasion on Baekje in 396 in his Stele, the entry of Sin-myo(辛卯) year, despite of not a little scholars suggested their own interpretations on...
There is no consented understanding on the beginning paragraph of the description of King Gwanggaeto’s invasion on Baekje in 396 in his Stele, the entry of Sin-myo(辛卯) year, despite of not a little scholars suggested their own interpretations on it. In this article we examined the problems of the existing understandings in grammar and style as well as in the context, and tried to suggest an alternative interpretation. The important problems of the existing interpretations are like these; 1) cannot find the direct reason or motive of the invasion, 2) the sentences or phrases in the paragraph don’t match well each other, 3) the interpretations of the words like 來·渡·破 are against grammar, 4) the punctuations neglected the 4 word phrase style which is in fashion at the time and also prevails in the inscription. Following the classical Chinese grammar and 4 word phrase style we punctuated the paragraph like this;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破, 百殘▨▨(新)羅, 以爲臣民. This punctuation shows that the word 破 cannot be a verb but a part of place name, as after the word 來渡 (come across the sea or river) should come the arrival place. According to the punctuation this paragraph can be interpreted like this; both Baekje and Shilla were subordinates (of Goguryeo) since early times. But when Wa(=Japan) came to ▨破 in the Sin-myo(辛卯) year, Baekje (tried to invade) Shilla to make their own subordinate. With this interpretation we can cleary understand the reason or motive of Goguryeo’s invasion on Baekje. The beginning paragraph of the description of invasion on Baekje in 396 was neither a praise of achievements of Japanese army nor a Goguryeo-centric world view having no relation with the invasion on Baekje as some scholars suggested. On the contrary, this paragraph tells the important change of the political circumstances in the Korean peninsula which led to Goguryeo’s invasion on Baekje.
이 논문에서는 <광개토왕비> 영락 6년 백제 원정 기사 서두 부분의 이른바 신묘년 기사에 대한 기존 해석들의 문제점을 영락 6년 기사 전체의 맥락과 한문 문법적 측면에서 검토하고, 이...
이 논문에서는 <광개토왕비> 영락 6년 백제 원정 기사 서두 부분의 이른바 신묘년 기사에 대한 기존 해석들의 문제점을 영락 6년 기사 전체의 맥락과 한문 문법적 측면에서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 보았다. 기존 해석의 중요한 문제점들은 영락 6년의 백제 원정 원인을 서술하였을 신묘년 기사의 내용에서 실제 백제 원정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다는 점, 신묘년 기사 내부의 문장들이 서로 순조롭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來·渡·破 등의 글자에 대한 해석이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점, <광개토왕비> 전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4자구를 기본으로 하는 문장 형식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이상의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신묘년 기사를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破, 百殘▨▨(新)羅, 以爲臣民.’으로 나누어 읽고, 이를 ‘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부터 속민으로 계속 조공하였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破에 건너오자 백제는 (왜와 함께) 신라를 (쳐서) 신민으로 삼으려 하였다.’는 내용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에 의하면 신묘년 기사는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안정된 상황에서 신묘년에 왜가 ▨破에 건너온 것을 계기로 백제가 왜와 연결하여 신라를 공격하(려고 계획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하였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되며, 이는 바로 뒤에 서술되는 광개토왕의 백제 원정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기존의 연구들은 신묘년 기사에 대해 백제 원정의 직접적 원인과는 관련 없는 왜나 고구려의 위상을 강조하거나 실제 사실로 볼 수 없는 고구려인들의 허구적인 대외인식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신묘년 기사는 백제에 대한 원정으로 귀결되게 되는 광개토왕 초기의 한반도 내외의 주요 정치세력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동향을 거시적으로 제시하는 귀중한 사료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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