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8세기 조선의 무예 보급과 그 확산에 대한 시론이다. 본고에서는 『御營廳中旬謄錄』이라는 자료를 이용하여 18세기 중후반 어영청에서 보급, 활용되던 무예의 경향성을 짚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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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은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2007
Korean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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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이 논문은 18세기 조선의 무예 보급과 그 확산에 대한 시론이다. 본고에서는 『御營廳中旬謄錄』이라는 자료를 이용하여 18세기 중후반 어영청에서 보급, 활용되던 무예의 경향성을 짚어보...
이 논문은 18세기 조선의 무예 보급과 그 확산에 대한 시론이다. 본고에서는 『御營廳中旬謄錄』이라는 자료를 이용하여 18세기 중후반 어영청에서 보급, 활용되던 무예의 경향성을 짚어보았다. 지금까지 조선후기 무예에 대한 연구는 주로 『武藝諸譜』및 『武藝諸譜飜譯續集』과 『武藝圖譜通志』를 위주로 하여 무예의 발전과정 및 정착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즉 거시적인 안목으로 무예의 흐름을 통관하는 연구에 집중한 편이었다. 반면에 조선에서 어떤 무예가 얼마나 보급되어 활용되었는지, 또는 正祖가 『무예도보통지』에서 마련한 무예의 모범이 당대에 어느 정도 수용되었고 그 파급 효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미비한 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작성한 이 논문에서 크게 주목한 사항은 두 가지다.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전후한 시기에 어영청에서는『무예도보통지』에 정리된 24기 무예가 대부분 보급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하여 다양한 무예가 일률적으로 보급된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가운데 주로 용검․평검․제독검이 확산되어 있었고, 우리의 예상과 달리 마상무예의 합격자가 많지 않았다. 또한 어영청에 소속된 군인 가운데 직급에 따라 무예 수용의 차이가 뚜렷하였다. 將官이나 將校 가운데 무예 과목으로 상을 탄 사람이 저조했고 활쏘기에서 집중적으로 상을 받았다. 이에 비해 군병들은 월등하게 각종 무예 시험으로 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끝으로 조선의 무예 연구는 보다 다양한 자료들을 발굴, 활용하여 미시적 분석이 진행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 때서야 비로소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이해도 한층 높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주제어>
무예, 중순, 어영청중순등록,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도보통지, 24기, 장관, 장교, 군총, 활쏘기, 어영청, 마상기예
흠차통령절직수병유격장군(欽差統領浙直水兵遊擊將軍) 1) 계공(季 公)의 청덕비(淸德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