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1930년대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애정에 기반한 부부와 그 자녀로 이루어진 근대적 소가정이 이상적 가족 모델로 강조되고 있었다. 이 시기 신문 기사 속에서 ‘대가족제’에 대한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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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Korean
소가정 ; 식민지/근대 ; 서구화 ; 조선시대 ; 경제적 독립 ; small family ; colonial-modernity ; westernization ; Chos?n society ; economic independence
KCI등재
학술저널
175-20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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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1930년대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애정에 기반한 부부와 그 자녀로 이루어진 근대적 소가정이 이상적 가족 모델로 강조되고 있었다. 이 시기 신문 기사 속에서 ‘대가족제’에 대한 담론을 보면 조선 재래의 대가족제는 새로운 경제,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개조되어야 할 대상으로 폐단과 악습의 상징이었다. 조선의 대가족제는 ‘부모 중심’의 가족으로 ‘부부 중심’의 소가정의 대립항으로 설정되었다. 대가족제 현대사회의 반대인 과거 시대의 유물이고, 서양이 아닌 동양의 문화이며, 도시가 아닌 농촌, 공업국이 아닌 농업국에 많은 것으로 논의되었다. 서구화가 진행되면 자연히 사라지고, 자본주의에 맞는 소가정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발전을 위해 폐지되어야 할 이러한 대가족제는 불화와 폐단의 근원이라고 지목되기도 했다. 조부모, 부모, 자녀의 3대 가족이 함께 사는 대가족은 가족 수와 무관하게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만드는 구조였다. 부부 사이의 애정에 입각한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대가족제에서 만들어진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고 이야기되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부부 중심의 소가정을 만들려면 독립생활이 가능해야 했다. 대가족제는 부모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되었지만, 정작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독립이 안되는 아들 때문에 소가정을 꾸려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부모가 결혼한 아들을 데리고 사는 현실이 노출되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단가족/소가정은 조선의 재래 ‘대가족제’의 대립항이자,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주장되고, 이를 위해 경제적 독립을 하고 나태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조선인들이 독립적 경제 능력을 갖지 못해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는 상황에서, 대가족제가 소멸되고 단가족/소가정을 이루는 일은 요원한 형편이었다.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대가족제’의 폐단에 대한 기사들은 그것을 극복하여 소가정의 현대생활로 나아가자고 강조했지만, 극복이 이야기되는 사이에 극복불능의 상태만이 누설되고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odern small family, constituted of a loving married couple and their children, was being emphasized as the ideal family model in the colonized Chosǒn society during the 1920s and 1930s. The newspaper articles during this period described the lar...
The modern small family, constituted of a loving married couple and their children, was being emphasized as the ideal family model in the colonized Chosǒn society during the 1920s and 1930s. The newspaper articles during this period described the large family system as a symbol of the harmful practices of the past which must be abandoned for the society to keep up with the new economy and the new era. The concept of “parents-centered” large family system was established as the opposition to that of the “couple-centered” small family system. The large family system was discussed as a relic of the past period as well as a non-Western “Oriental” culture, which largely existed in rural areas rather than in cities, in agricultural countries rather than in industrial countries. According to the newspaper articles, it would naturally disappear with the westernization of the society, and the small family system which suited capitalism would replace it. It must be abolished for the development of the nation because it was the root of the social discord and evil. Regardless of the actual number of the family members, the large family structure in which three generations lived together would cause conflicts among the members. The solution to the problems caused by the large family system was to form small families based on the love between married couples. However, the premise to form a small family was the economic independence of the married couple. While the large family system was discussed as if it was maintained because of the parents, what was being exposed was that they had to keep their married children under their wings due to their sons’ lack of economic independence. While it was emphasized that married men should achieve economic independence without being idle in order to establish the ideal small families, what was being revealed was that there were many who lived off their parents after marriage. The newspaper articles about the evil of the large family system in the colonized Chosǒn society stressed that they had to break away from the outmoded family system. At the same time, however, they were exposing the incapacity to do so.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정지영, "질서의 구축과 균열 : 조선후기 호적과 여성들" 서강대출판부 2015
2 홍양희, "조선총독부 판사, 노무라 초타로(野村調太郞)의 조선 사회 인식 ―가족제도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한국가족법학회 23 (23): 61-8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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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혜경,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 창비 2006
5 홍양희, "식민지 사법관료의 가족 ‘관습’ 인식과 젠더 질서 -『관습조사보고서』의 호주권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사학회 (79) : 161-195, 2008
6 김미란(Kim Mi ran), "서구 ‘소가정’ 모델과 1920년대 중국의 대가족 담론" 5 (5): 2017
7 "부산일보"
8 "매일신보"
9 "동아일보"
10 "대한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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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정지영, "‘조선시대의 가장권’에 대한 지식의 착종: 식민주의의 지적 유산에 대한 비판적 논의" 동북아시아문화학회 1 (1): 81-9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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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정지영, "Rethinking the “Large Family” Thesis of Chosŏn Korea:Postcolonial Critic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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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朝 康熙 연간 曆算學을 통한 ‘西學’과 程朱學의 折衷
안동 유림 李壽琰의 『疏廳日錄』을 통해 본 1881년 嶺南萬人疏의 재구성
1930년대 延吉敎區의 가톨릭 少年運動 - 탈시시오회(Tarsitiusvereins)를 중심으로 -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
| 2016-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 |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76 | 0.76 | 0.84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8 | 0.79 | 1.814 | 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