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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말 근대초 프랑스 소극(farce)에 나타난 빈민의 형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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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우선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약 150여개의 소극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속에서 걸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할 그리고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연결시켜 이를 바라보고자 한다. 우선 2장에서는 소극의 전개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소극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의 축제나 결혼식과 같은 잔치가 있을 때 공연되었다. 소극은 단독으로 공연되기도 했으며 혹은 성사극 혹은 교훈극 등과 함께 공연되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극이 매우 간단한 무대 장치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이는 배우들의 대사를 중시하게 만들었으며, 그 속에서 빈민들의 살아있는 말과 더 나아가 일반 대중들이 원했던 빈민의 형상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로 중세의 도상학에서 걸인은 맨발과 넝마를 걸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성직자들로부터 옷을 제공받더라도 그것을 팔아버리고 넝마를 고집했다. 이는 넝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 자선을 베풀게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떠돌아다니는 걸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막대기와 배낭이었는데 이 역시 상징적, 기능적 의미에서 걸인을 특징지었다. 이러한 모습은 소극의 무대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한 예이다.
      3장에서는 걸민들의 신체적 불구와 기적에 대한 의견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걸인의 외양에서 주요한 것은 그의 신체였다. 그들은 병, 노쇠 혹은 빈곤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이는 흔히 구걸을 끌기 위한 직업적 기술로 이용되었다. 걸인이 그의 신체적 약점을 과시하고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서도 반감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신체불구의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측면이 잘 드러난다. 직업적 전략으로서의 신체불구라는 주제는 종종 중세의 종교극에서 기적에 의해 치료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걸인들은 이러한 기적적 치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 예로 성인의 유품을 오세르에서 투르로 이전하는 동안에 발생했던 기적적인 치료에 대해 그들은 이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들 중의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제여 우리는 안락한 게으름 속에서 삽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며 모두들 우리를 동정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합니다. 즉 우리는 하루하루를 안락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육체적 노동을 해야만 합니다”. 페앙 가티노의 전기에서도 걸인의 생활이 행복하다는 주제는 등장하고 발전되었다. “그는 그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고 항상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기적적인 치료는 우리의 생활을 더 힘들게 할 뿐입니다.” 두 명의 중풍환자는 따라서 도망가기로 결심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한 명의 중풍환자와 한 명의 맹인은 구걸의 정당화로서의 신체불구를 원하며 노동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적에 대한 두려움은 소극에서도 잘 나타나며 실제로 걸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단히 만족하며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4장에서는 관객들의 심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왜 소극에 빈민이 자주 나오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한 예로 우리는 13세기 하반기의 소극 󰡔소년과 장님󰡕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극에서는 거짓으로 장님인척 하는 걸인을 한 소년이 유인하여 그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는 걸인의 위선적인 태도를 확연히 드러내 보임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자발적이지 못한 걸인을 멸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여러 명의 장님 거지들에게 몽둥이를 주고 뜰에 풀어놓은 돼지를 서로 쫓게 하여 잡은 거지에게 돼지를 주는 유희는 중세말까지도 자주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보시에 흔히 덧붙여지는 조롱이나 멸시를 걸인의 구원의 자격을 시험해 보는 것이나 보시에 대한 대가로 생각했다.
      전반적으로 소극에 나타난 빈민의 이미지는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일을 거부하고, 남을 속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문에 빈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 극을 보는 관객들의 눈에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들에 대한 연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서민의 눈에 자신들도 언제든지 그런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을 편하게 웃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인상을 일부러 줌으로써 자신들의 웃음을 정당화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칼뱅이 연극상연을 금지하고자 했던 것은 소극이 전혀 노동의 가치를 서민들에게 고취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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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약 150여개의 소극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속에서 걸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할 그리고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연결시켜 이를 바라보고자 한다. 우선 2장에서는 ...

      우선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약 150여개의 소극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속에서 걸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할 그리고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연결시켜 이를 바라보고자 한다. 우선 2장에서는 소극의 전개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소극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의 축제나 결혼식과 같은 잔치가 있을 때 공연되었다. 소극은 단독으로 공연되기도 했으며 혹은 성사극 혹은 교훈극 등과 함께 공연되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극이 매우 간단한 무대 장치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이는 배우들의 대사를 중시하게 만들었으며, 그 속에서 빈민들의 살아있는 말과 더 나아가 일반 대중들이 원했던 빈민의 형상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로 중세의 도상학에서 걸인은 맨발과 넝마를 걸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성직자들로부터 옷을 제공받더라도 그것을 팔아버리고 넝마를 고집했다. 이는 넝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 자선을 베풀게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떠돌아다니는 걸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막대기와 배낭이었는데 이 역시 상징적, 기능적 의미에서 걸인을 특징지었다. 이러한 모습은 소극의 무대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한 예이다.
      3장에서는 걸민들의 신체적 불구와 기적에 대한 의견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걸인의 외양에서 주요한 것은 그의 신체였다. 그들은 병, 노쇠 혹은 빈곤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이는 흔히 구걸을 끌기 위한 직업적 기술로 이용되었다. 걸인이 그의 신체적 약점을 과시하고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서도 반감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신체불구의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측면이 잘 드러난다. 직업적 전략으로서의 신체불구라는 주제는 종종 중세의 종교극에서 기적에 의해 치료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걸인들은 이러한 기적적 치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 예로 성인의 유품을 오세르에서 투르로 이전하는 동안에 발생했던 기적적인 치료에 대해 그들은 이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들 중의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제여 우리는 안락한 게으름 속에서 삽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며 모두들 우리를 동정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합니다. 즉 우리는 하루하루를 안락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육체적 노동을 해야만 합니다”. 페앙 가티노의 전기에서도 걸인의 생활이 행복하다는 주제는 등장하고 발전되었다. “그는 그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고 항상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기적적인 치료는 우리의 생활을 더 힘들게 할 뿐입니다.” 두 명의 중풍환자는 따라서 도망가기로 결심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한 명의 중풍환자와 한 명의 맹인은 구걸의 정당화로서의 신체불구를 원하며 노동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적에 대한 두려움은 소극에서도 잘 나타나며 실제로 걸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단히 만족하며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4장에서는 관객들의 심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왜 소극에 빈민이 자주 나오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한 예로 우리는 13세기 하반기의 소극 󰡔소년과 장님󰡕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극에서는 거짓으로 장님인척 하는 걸인을 한 소년이 유인하여 그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는 걸인의 위선적인 태도를 확연히 드러내 보임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자발적이지 못한 걸인을 멸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여러 명의 장님 거지들에게 몽둥이를 주고 뜰에 풀어놓은 돼지를 서로 쫓게 하여 잡은 거지에게 돼지를 주는 유희는 중세말까지도 자주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보시에 흔히 덧붙여지는 조롱이나 멸시를 걸인의 구원의 자격을 시험해 보는 것이나 보시에 대한 대가로 생각했다.
      전반적으로 소극에 나타난 빈민의 이미지는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일을 거부하고, 남을 속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문에 빈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 극을 보는 관객들의 눈에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들에 대한 연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서민의 눈에 자신들도 언제든지 그런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을 편하게 웃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인상을 일부러 줌으로써 자신들의 웃음을 정당화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칼뱅이 연극상연을 금지하고자 했던 것은 소극이 전혀 노동의 가치를 서민들에게 고취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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