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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唐代 高句麗 표기 기피현상 - 隋唐 墓誌銘의 國名 표기 분석을 중심으로 - = Avoiding the Name “Koguryo” during the Tang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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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is paper, I analyzed the memorial inscriptions from the Tang Period and found avoidance of country names such as Koguryo, Turk (突厥),Baekje, and others. The Chinese officials, scholars, and intellectuals wrote the epitaphs of their own, which included the generals and colonels who participated in the invasion of Koguryo, Turk (突厥),Baekje, Kochang, and other areas. I found that there were few examples of designating Koguryo as Koguryo or as Koyo, which was the Koguryo name during the Tang Period. This name appeared in 3.8% of 79 expressions. Instead, Koguryo was expressed as Koguryo, Joseon,Samhan, Buyeo, Jinhan, Dongyi, Hyeondo, Gujong, Doyi, Baekrang,Gyeru, Guyi, Laklang, Hyeoyi, Mahan, Yemaek, Chenggu, Obu,Yocheon, Yohae, and others, or in 96.2% of the 79 examples.
    This trend of naming the country through other names in the Tang Period also applied to Turk, Baekje, and the Sogdians. For example, in the memorial inscriptions in the Tang Period. Turk was expressed as Hiungno (Xiongnu), Heomyun, Hunyung, and Hunro. Baekje was expressed as Yo, Yoyang, and Samhan. But Tibet (Tobeon), Georan (Qitai), and Hai were called by their own names, and other names and the country name appeared frequently.
    The trend to latter. Koguryo by other names was due to the Chinese avoidance and hatred of Koguryo, which had defeated Chinese dynasties, such as Sui and T’ang, in the sixth and seventh centuries.
    And the Chinese acknowledged Koguryo and considered Koguryo,Chosun, Samhan, Buyo, Jinhan as the same country which had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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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paper, I analyzed the memorial inscriptions from the Tang Period and found avoidance of country names such as Koguryo, Turk (突厥),Baekje, and others. The Chinese officials, scholars, and intellectuals wrote the epitaphs of their own, which ...

    In this paper, I analyzed the memorial inscriptions from the Tang Period and found avoidance of country names such as Koguryo, Turk (突厥),Baekje, and others. The Chinese officials, scholars, and intellectuals wrote the epitaphs of their own, which included the generals and colonels who participated in the invasion of Koguryo, Turk (突厥),Baekje, Kochang, and other areas. I found that there were few examples of designating Koguryo as Koguryo or as Koyo, which was the Koguryo name during the Tang Period. This name appeared in 3.8% of 79 expressions. Instead, Koguryo was expressed as Koguryo, Joseon,Samhan, Buyeo, Jinhan, Dongyi, Hyeondo, Gujong, Doyi, Baekrang,Gyeru, Guyi, Laklang, Hyeoyi, Mahan, Yemaek, Chenggu, Obu,Yocheon, Yohae, and others, or in 96.2% of the 79 examples.
    This trend of naming the country through other names in the Tang Period also applied to Turk, Baekje, and the Sogdians. For example, in the memorial inscriptions in the Tang Period. Turk was expressed as Hiungno (Xiongnu), Heomyun, Hunyung, and Hunro. Baekje was expressed as Yo, Yoyang, and Samhan. But Tibet (Tobeon), Georan (Qitai), and Hai were called by their own names, and other names and the country name appeared frequently.
    The trend to latter. Koguryo by other names was due to the Chinese avoidance and hatred of Koguryo, which had defeated Chinese dynasties, such as Sui and T’ang, in the sixth and seventh centuries.
    And the Chinese acknowledged Koguryo and considered Koguryo,Chosun, Samhan, Buyo, Jinhan as the same country which had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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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필자는 당대 묘지명의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 고구려의 당대 표기인 ‘고려(高麗)’라는 단어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현상에 주목하였다. 본고는 이 기록을 정리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해볼 필요성을 느끼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분석하고 정리한 것이다.
    당대에 편찬된 『수서』와 당대를 다룬 『구당서』, 『신당서』, 『당회요』의 고구려 표기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실제 국호를 언급한 사료는 『구당서』와 『신당서』에 각각 36개와 19개였다. 양자를 합하면 55개로 전체의 33.7%이다. 반면 “요(遼)를 정벌한다”는 뜻을 지닌 “伐遼”, “征遼”, “요동을 정벌한다”라는 뜻을 지닌 “伐遼東”, “伐遼左”, “征遼東” 등 고구려를 “요”, “요동” 등 다른 별칭으로 표기한 기록은 모두 107개이며 65.6%이다.
    唐代 묘지명에서도 삼한(18회), 九種(9회), 현도(7회), 遼(5회), 동이(4회), 요갈(遼碣)․조선․鳥夷․진한(3회), 白狼․요양․요좌(2회), 계루․九夷․낙랑․島夷․玄夷․마한․小貊․鴨錄․예맥․朱蒙之緖․청구․五部․遼川․遼海(1회) 등 다양한 별칭이 사용되었고 고구려의 唐代 표기인 ‘고려’는 단 세 차례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돌궐을 흉노․獫狁․葷戎․獯戎․山戎 등으로 표기한 것과 일치한다. 고구려와 돌궐은 망국이었기 때문에 실명보다 별칭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같은 상황의 고창이 실명으로 표기되었고, 唐에 복속된 거란과 奚도 실명 표기가 보인다는 점에서 망국을 별칭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구려를 지칭하는 단어가 다른 국가의 별칭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표현이 묘지명에 사용되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유형별로 보면 예맥․소맥․계루․오부처럼 고구려를 연상시키는 단어도 있지만, 동이․도이․조이․현이․구이처럼 동방의 이민족을 지칭하거나 낙랑․현도․백랑․요․요갈․요양․요좌․요천․요해 등 전한 이래의 군현명이나 각종 지명을 사용한 예가 많았다. 전자는 동방 이민족에 대한 蔑稱이고 후자는 고구려의 영토가 중국의 옛 군현이었음을 상기시키는 표현인 것 같다. 반면 고구려를 삼한․마한․진한․조선 등으로 칭한 것은 당대 중국인들이 고구려가 한국고대의 여러 나라와 역사적 친연성 혹은 연속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본적 표기 원칙과 일치한다. 즉 당대 조정과 지배층 사회에서 고구려가 고대한국의 여러 나라와 역사적․문화적 친연성 혹은 계승관계에 있음을 인정했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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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당대 묘지명의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 고구려의 당대 표기인 ‘고려(高麗)’라는 단어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현상에 주목하였다. 본고는 이 기록을 정리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해볼 필...

    필자는 당대 묘지명의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 고구려의 당대 표기인 ‘고려(高麗)’라는 단어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현상에 주목하였다. 본고는 이 기록을 정리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해볼 필요성을 느끼고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분석하고 정리한 것이다.
    당대에 편찬된 『수서』와 당대를 다룬 『구당서』, 『신당서』, 『당회요』의 고구려 표기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실제 국호를 언급한 사료는 『구당서』와 『신당서』에 각각 36개와 19개였다. 양자를 합하면 55개로 전체의 33.7%이다. 반면 “요(遼)를 정벌한다”는 뜻을 지닌 “伐遼”, “征遼”, “요동을 정벌한다”라는 뜻을 지닌 “伐遼東”, “伐遼左”, “征遼東” 등 고구려를 “요”, “요동” 등 다른 별칭으로 표기한 기록은 모두 107개이며 65.6%이다.
    唐代 묘지명에서도 삼한(18회), 九種(9회), 현도(7회), 遼(5회), 동이(4회), 요갈(遼碣)․조선․鳥夷․진한(3회), 白狼․요양․요좌(2회), 계루․九夷․낙랑․島夷․玄夷․마한․小貊․鴨錄․예맥․朱蒙之緖․청구․五部․遼川․遼海(1회) 등 다양한 별칭이 사용되었고 고구려의 唐代 표기인 ‘고려’는 단 세 차례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돌궐을 흉노․獫狁․葷戎․獯戎․山戎 등으로 표기한 것과 일치한다. 고구려와 돌궐은 망국이었기 때문에 실명보다 별칭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같은 상황의 고창이 실명으로 표기되었고, 唐에 복속된 거란과 奚도 실명 표기가 보인다는 점에서 망국을 별칭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구려를 지칭하는 단어가 다른 국가의 별칭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표현이 묘지명에 사용되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유형별로 보면 예맥․소맥․계루․오부처럼 고구려를 연상시키는 단어도 있지만, 동이․도이․조이․현이․구이처럼 동방의 이민족을 지칭하거나 낙랑․현도․백랑․요․요갈․요양․요좌․요천․요해 등 전한 이래의 군현명이나 각종 지명을 사용한 예가 많았다. 전자는 동방 이민족에 대한 蔑稱이고 후자는 고구려의 영토가 중국의 옛 군현이었음을 상기시키는 표현인 것 같다. 반면 고구려를 삼한․마한․진한․조선 등으로 칭한 것은 당대 중국인들이 고구려가 한국고대의 여러 나라와 역사적 친연성 혹은 연속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본적 표기 원칙과 일치한다. 즉 당대 조정과 지배층 사회에서 고구려가 고대한국의 여러 나라와 역사적․문화적 친연성 혹은 계승관계에 있음을 인정했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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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학회 (26) : 157-218, 2011

    2 윤용구, "중국 출토의 한국고대 유민자료 몇 가지" 한국고대사학회 32 : 293-326, 2003

    3 고구려연구재단, "중국 소재 고구려 관련 금석문 자료집" 고구려연구재단 2004

    4 모리야스 다카오, "당대 불교적 세계지리와 ‘호’의 실태, In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사계절출판사 2006

    5 宋基豪, "고구려 유민 高玄 墓誌銘"

    6 宋基豪, "고구려 유민 高氏夫人 墓誌銘" 53 : 2007

    7 魏收, "魏書" 中華書局 1974

    8 이성재, "高句麗의 西方政策 硏究" 국학자료원 2005

    9 盧泰敦, "高句麗 遺民史 硏究-遼東·唐內地 및 突厥方面의 集團을 중심으로, In 韓㳓劤博士停年紀念史學論叢" 知識産業社 1981

    10 李文基, "高句麗 遺民 高足酉 墓誌의 檢討" 역사교육학회 26 : 2001

    1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학회 (26) : 157-218, 2011

    2 윤용구, "중국 출토의 한국고대 유민자료 몇 가지" 한국고대사학회 32 : 293-326, 2003

    3 고구려연구재단, "중국 소재 고구려 관련 금석문 자료집" 고구려연구재단 2004

    4 모리야스 다카오, "당대 불교적 세계지리와 ‘호’의 실태, In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사계절출판사 2006

    5 宋基豪, "고구려 유민 高玄 墓誌銘"

    6 宋基豪, "고구려 유민 高氏夫人 墓誌銘" 53 : 2007

    7 魏收, "魏書" 中華書局 1974

    8 이성재, "高句麗의 西方政策 硏究" 국학자료원 2005

    9 盧泰敦, "高句麗 遺民史 硏究-遼東·唐內地 및 突厥方面의 集團을 중심으로, In 韓㳓劤博士停年紀念史學論叢" 知識産業社 1981

    10 李文基, "高句麗 遺民 高足酉 墓誌의 檢討" 역사교육학회 26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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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歐陽修, "新唐書" 中華書局 1975

    16 馬一虹, "從唐墓志看入唐高句麗遺民歸屬意識的變化-以高句麗末代王孫高震一族及權勢貴族爲中心" 1 : 2006

    17 范曄, "後漢書" 中華書局 1965

    18 沈約, "宋書" 中華書局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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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최진열, "唐人들이 인정한 高句麗人의 正體性 - 唐代墓誌銘에 보이는 高句麗의 別稱(朝鮮·三韓·扶餘) 分析을 중심으로 -" 동북아역사재단 24 (24): 209-25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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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吳鋼, "全唐文補遺 第一輯" 三秦出版社 1994

    28 吳鋼, "全唐文補遺 第六輯" 三秦出版社 1999

    29 吳鋼, "全唐文補遺 第八輯" 三秦出版社 2005

    30 吳鋼, "全唐文補遺 第五輯" 三秦出版社 1998

    31 吳鋼, "全唐文補遺 第二輯" 三秦出版社 1995

    32 吳鋼, "全唐文補遺 第七輯" 三秦出版社 2000

    33 周紹良, "全唐文新編 22" 吉林文史出版社 2000

    34 周紹良, "全唐文新編 21" 吉林文史出版社 2000

    35 周紹良, "全唐文新編 20" 吉林文史出版社 2000

    36 姜淸波, "入唐三韓人硏究" 曁南大學 2005

    37 盧泰敦, "三韓에 대한 認識의 變遷" 38 : 1982

    38 仇鹿鳴, "“攀附先世”與“僞冒士籍”-以渤海高氏爲中心的硏究" 2 : 2008

    39 김지영, "7세기 중반 거란의 동향 변화와 고구려-660년 거란의 이반을 기점으로-" 만주학회 (12) : 75-10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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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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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1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8 2.15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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