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延邊地域으로의 高句麗 勢力 浸透 및 支配의 實相 = The Invasion and Domination of Koguryo Powers in the Yanbian Area before the 4th Centur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4528691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URL 복사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culture of the early Iron epoch in maritime areas (沿海洲) and Yanbian (延邊), which are now in the northeastern part of North Korea,was divided into the Dankyul (團結)-Krounovka culture and the Poltse culture of the maritime area. The bearers of these cultures had developed their own into the complex societies in the second and first centuries B.C.E. And also they may be compared to ethnic groups such as the Northern Okjo (北沃沮), the Yilou (挹婁), the Dankyul-Krounovka culture, and the Poltse culture of the maritime areas.
    According to the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Koguryo campaigned progressively North Okjo from 28 B.C.E. into the first century A.D., in managing fortresses in the Yanbian area centered in Hunchun (琿春). In Yanbian area we can confirm the remains of fortresses through the 108 mountain fortresses (山城) and flatland fortresses (平地城). But among these fortresses, only from 10 th 28fortresses were built by Koguryo. This show that Koguryo dominated the Yanbian area not by the mountain fortress system, that is the military system, but by the flatland fortresses system. Koguryo’s effective assimilation policy in the Yanbian area completely dissimilated the traditional Dankyul-Krounovka Culture.
    번역하기

    The culture of the early Iron epoch in maritime areas (沿海洲) and Yanbian (延邊), which are now in the northeastern part of North Korea,was divided into the Dankyul (團結)-Krounovka culture and the Poltse culture of the maritime area. The bear...

    The culture of the early Iron epoch in maritime areas (沿海洲) and Yanbian (延邊), which are now in the northeastern part of North Korea,was divided into the Dankyul (團結)-Krounovka culture and the Poltse culture of the maritime area. The bearers of these cultures had developed their own into the complex societies in the second and first centuries B.C.E. And also they may be compared to ethnic groups such as the Northern Okjo (北沃沮), the Yilou (挹婁), the Dankyul-Krounovka culture, and the Poltse culture of the maritime areas.
    According to the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Koguryo campaigned progressively North Okjo from 28 B.C.E. into the first century A.D., in managing fortresses in the Yanbian area centered in Hunchun (琿春). In Yanbian area we can confirm the remains of fortresses through the 108 mountain fortresses (山城) and flatland fortresses (平地城). But among these fortresses, only from 10 th 28fortresses were built by Koguryo. This show that Koguryo dominated the Yanbian area not by the mountain fortress system, that is the military system, but by the flatland fortresses system. Koguryo’s effective assimilation policy in the Yanbian area completely dissimilated the traditional Dankyul-Krounovka Culture.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東北韓-연해주-延邊 등지의 초기철기시대의 문화는 크게 ‘團結-끄로우노프까文化圈’과 ‘沿海洲의 뽈체문화권’이 공존한 바, 이들 하담자들은 문헌자료 상 ‘北沃沮’와 ‘挹婁’에 대비될 수 있다.
    고구려의 북옥저 ‘伐滅’은 B.C. 28 년의 세력 침투 책동을 始點으로 A.D. 1 C 말 太祖王 대에까지 점진적으로 진행된 ‘經略’이었다. 이는 당시 고구려의 전략적 구상과 점점 거세어지는 읍루 세력의 군사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을 찿던 북옥저인들의 자구 노력이 맞물린 결과이다.
    中後期(4 C A.D. 이후) 이전 고구려 북옥저 고지 지배는 琿瑃의 ‘柵城’을 중심거점으로 한 平地城中心體制였다.
    연변 지역에 대한 실효적 ‘高句麗化’ 정책은 장기간 연변 지역 고유문화로 자리 잡아온 바 있던 단결-끄로우노프까 문화의 전통을 완전히 단절시켜 버렸다. 연변 지역에서 북옥저와 고구려 지배기의 문화가 심한 斷層性을 드러내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 연유 한다
    번역하기

    東北韓-연해주-延邊 등지의 초기철기시대의 문화는 크게 ‘團結-끄로우노프까文化圈’과 ‘沿海洲의 뽈체문화권’이 공존한 바, 이들 하담자들은 문헌자료 상 ‘北沃沮’와 ‘挹婁’에 대...

    東北韓-연해주-延邊 등지의 초기철기시대의 문화는 크게 ‘團結-끄로우노프까文化圈’과 ‘沿海洲의 뽈체문화권’이 공존한 바, 이들 하담자들은 문헌자료 상 ‘北沃沮’와 ‘挹婁’에 대비될 수 있다.
    고구려의 북옥저 ‘伐滅’은 B.C. 28 년의 세력 침투 책동을 始點으로 A.D. 1 C 말 太祖王 대에까지 점진적으로 진행된 ‘經略’이었다. 이는 당시 고구려의 전략적 구상과 점점 거세어지는 읍루 세력의 군사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을 찿던 북옥저인들의 자구 노력이 맞물린 결과이다.
    中後期(4 C A.D. 이후) 이전 고구려 북옥저 고지 지배는 琿瑃의 ‘柵城’을 중심거점으로 한 平地城中心體制였다.
    연변 지역에 대한 실효적 ‘高句麗化’ 정책은 장기간 연변 지역 고유문화로 자리 잡아온 바 있던 단결-끄로우노프까 문화의 전통을 완전히 단절시켜 버렸다. 연변 지역에서 북옥저와 고구려 지배기의 문화가 심한 斷層性을 드러내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 연유 한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A. L. 수보티나, "한반도의 중도식 토기문화와 끄로우노프까 문화의 비교:옥저문화와 한반도의 상호교류에 대한 실증적 비교연구, In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8

    2 강인욱, "연해주 초기철기시대 끄로우노프까문화의 확산과 전파, In 국가형성에대한 고고학적 접근" 2007

    3 최몽룡, "시베리아의 선사고고학" 주류성 0-0, 2003

    4 朴京哲, "보론: 옥저·동예·읍루, In 한국사 2: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2" 한길사 1994

    5 강인욱, "발해의 기층문화 형성과정에 대하여: A.D. 2~5세기 말갈문화 형성을중심으로" 2008

    6 강인욱, "동아시아 고고학·고대사연구 속에서 옥저문화의 위치: 옥저·읍루문화권의 제기를 중심으로, In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8

    7 김재윤, "동북한과 중국 연변지구의 초기 철기시대문화: 단결-끄로우노프까 문화의 계통적 성격, In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8

    8 朴京哲, "고구려의 국가형성 연구" 高麗大學校 大學院 1997

    9 余 昊 奎, "鴨綠江 중상류 연안의 高句麗 성곽과 東海路" 역사문화연구소 (29) : 119-170, 2008

    10 朴京哲, "鴨綠江 中·上流流域 積石塚築造集團의 存在樣態" 32 : 2010

    1 A. L. 수보티나, "한반도의 중도식 토기문화와 끄로우노프까 문화의 비교:옥저문화와 한반도의 상호교류에 대한 실증적 비교연구, In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8

    2 강인욱, "연해주 초기철기시대 끄로우노프까문화의 확산과 전파, In 국가형성에대한 고고학적 접근" 2007

    3 최몽룡, "시베리아의 선사고고학" 주류성 0-0, 2003

    4 朴京哲, "보론: 옥저·동예·읍루, In 한국사 2: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2" 한길사 1994

    5 강인욱, "발해의 기층문화 형성과정에 대하여: A.D. 2~5세기 말갈문화 형성을중심으로" 2008

    6 강인욱, "동아시아 고고학·고대사연구 속에서 옥저문화의 위치: 옥저·읍루문화권의 제기를 중심으로, In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8

    7 김재윤, "동북한과 중국 연변지구의 초기 철기시대문화: 단결-끄로우노프까 문화의 계통적 성격, In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8

    8 朴京哲, "고구려의 국가형성 연구" 高麗大學校 大學院 1997

    9 余 昊 奎, "鴨綠江 중상류 연안의 高句麗 성곽과 東海路" 역사문화연구소 (29) : 119-170, 2008

    10 朴京哲, "鴨綠江 中·上流流域 積石塚築造集團의 存在樣態" 32 : 2010

    11 박경철, "鴨綠江 上流 臨江 -長白地域 積石塚築造集團의 存在樣態" 역사문화연구소 38 (38): 3-58, 2011

    12 이성제, "高句麗와 渤海의 城郭운용방식에 대한 기초적 검토 -延邊地域분포의 성곽에 대한 이해를 겸하여-" 고구려발해학회 34 : 159-188, 2009

    13 林起煥, "高句麗初期의 地方統治體制" 14 : 1987

    14 박경철, "高句麗人의 '國家形成' 認識 試論" 한국고대사학회 28 : 43-79, 2002

    15 朴京哲, "高句麗 軍事戰略 考察을 위한 一試論: 平壤遷都以後 高句麗 軍事戰略의 志向點을 中心으로" 40 : 1989

    16 李基白, "韓國史講座(Ⅰ): 古代篇" 1983

    17 姜仁旭, "靺鞨文化의 形成과 2~4 세기 挹婁·鮮卑·夫餘系文化의 관계" 33 : 2009

    18 盧泰敦, "渤海建國의 背景" 19 : 1981

    19 정석배, "沿海州의 考古學" 학연문화사 1996

    20 이현혜, "沃沮의 기원과 문화 성격에 관한 고찰" 한국상고사학회 70 (70): 41-67, 2010

    21 朴京哲, "扶餘의 國勢變動相 認識에 關한 試論" 39 : 2011

    22 劉子敏, "延邊通史(上): 古代篇" 香港亞洲出版社 2010

    23 이현혜, "Ⅳ. 동예와 옥저, In 한국사 4: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국사편찬위원회 1997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1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8 2.155 0.1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