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 신라 중대는 1백년의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8세기 후반 혜공왕 연간부터 심각한 정치적 불안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빛나는 문화적 성취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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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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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 ; 전제왕정 ; 전제정치 ; 진골귀족세력 ; 지배블럭 ; 경덕왕 ; 혜공왕 ; Shilla ; Middle Era of Shilla ; Despostism ; Despotic Kingdom ; Jingol Aristocratic Class ; Ruling Bloc ; King Kyeongduk ; King Hea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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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통일 이후 신라 중대는 1백년의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8세기 후반 혜공왕 연간부터 심각한 정치적 불안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빛나는 문화적 성취를 주...
통일 이후 신라 중대는 1백년의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8세기 후반 혜공왕 연간부터 심각한 정치적 불안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빛나는 문화적 성취를 주조해낸 바로 그 시기, 신라체제가 붕괴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계에서는 이 중대를 전제왕정의 시기로 규정한다. 전제왕정이 붕괴되고 귀족세력의 부활하면서 체제적 불안이 일반화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사료들은 신라의 국왕들이 전제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료제와 물리력이 있어서도 완전히 장악하지도 못했다. 국왕과 귀족세력들은 대립적이기 보다 지배블럭을 구성하는 정치적 동반자로 활동했다. 이런 점에서 신라 중대 정치를 전제정치로 규정하거나 이 시기의 정치적 역동을 전제왕정과 귀족세력과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역사적 허구에 가까운 것이다. 신라 중대에 빛나는 문화적 성취와 체제적 해체가 동시적으로 발생한 것은 국왕의 정치적 동반자인 귀족세력이 국가통합을 위협할 정도로 자립화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적 성취와 정치적 불안 모두 이들 귀족세력 성장의 모순적 결과인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iddle era(中代) of the Shilla dynasty(新羅) had enjoyed peace and prosperity during about 1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e era of King Kyeongduk (景德王) and King Haegong (惠恭王)have been praised as the most s...
The middle era(中代) of the Shilla dynasty(新羅) had enjoyed peace and prosperity during about 100 years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e era of King Kyeongduk (景德王) and King Haegong (惠恭王)have been praised as the most shining time of Shilla when giving birth of the Bulkuksa (佛國寺), the Sukgulam (石窟庵), and the Mystery Bell of the Great King Sungduk (聖德大王神鐘). On Beginning of the ear of King Haegong , however, the kingdom have suffered continued revolts, and then its decline started leading the lower era(下代) of immanent dissolution. The mainstream circle of history have defined the era as a kind of ‘despotism’ or ‘despotic monarchy,’ and they have argue the reason of the dynasty dissolution is for the collapse of despotism and the rebirth of the aristocratic class which was called “Jingol (眞骨).” The both have been considered as political rivals, competing for political hegemony by the mainstream history. Nevertheless, the arguments do not have convincing evidence enough to persuade other scholars. The historical materials show the kings of Shilla was less “despotic,” even failing to have full control on bureaucracy and private forces of the aristocratic class. In reality, they was political partners, closely sharing the political and economic interests over the subjugated class, constituting “the ruling bloc” of the kingdom. The aristocratic class were exclusively positioned on top ranks of bureaucracy and enjoyed enormous wealth due to their prerogative status. The position and wealth made it possible the construction of temples as the Bulkuksa , and, at the same time, to mobilize the private soldiers for revolts. In that point, it would be near to the illusion of history that the politics of the middle era is defined as one of despotism, and that the political dynamics of the era is taught as the confrontation of the despotic kingdom and the aristocratic class. The reason why the shining cultural achievements and the decline/collapse of political stability occurred coincidently would be for the contradictious consequences of the uncontrolled development of the aristocratic clas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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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내지연장주의’와 조선총독부의 ‘문화정치’ : 3·1독립운동 이후 하라 수상의 「조선통치사견」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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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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