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전략·정책이 태평양전쟁기(1941년~1945년, 이하 전시기)에 활동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담당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되었음에 주목하여 그 전략·정책의 결정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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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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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전략·정책이 태평양전쟁기(1941년~1945년, 이하 전시기)에 활동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담당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되었음에 주목하여 그 전략·정책의 결정과정에 그들이 어떻게 얽혀있었으며 그 결과로서 무엇을 낳았는지에 대해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 전문가’들이 대부분인 그들에 의해 입안·추진된 기획 가운데 대한정책과 대일정책이 패키지(package)형태로 한 묶음이 되어 대한정책이 대일정책에 대한 종속변수와 같이 설정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양국에 대한 태도(attitude)도 제로섬(Zero-sum)적으로 연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측면이 전후 미국의 한국과 일본에 대한 점령통치양상에서 보이는 ‘패전국(일본)에서의 민주화와 해방지역(남한)에서의 억압통치’라는 역설적 대조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획이 전후에 예상되는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에 대한 선제적 포석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냉전’의 기원(origin)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전략·정책결정과정에서 대한정책과 대일정책이 패키지형태로 한 묶음이 되어 고려되고 있었고 양국에 대한 태도도 제로섬적으로 연동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미국의 전후점령정책의 한일비교가 없지는 않지만, 그 정책이 패키지형태의 산물이며 제로섬적 관계였다는 점에 착목한 연구는 없었다. 또한 그 정책들이 이미 전시기에 기획·추진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 연구도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첫째, 전후 한미관계에 대한 연구에 한정하더라도 종래의 일국사적 시야에 한정된 연구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한국과 일본의 패키지화를 시야에 넣은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럴 때만이 미국의 전후계획, 즉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틀 속에서 ‘한국문제’가 어떤 위상을 가졌으며, 그것이 어째서 일본의 식민지 전후처리의 차원에서 검토되었는지, 따라서 배상문제 및 영토문제 등을 둘러싸고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 시나 한일국교정상화과정에서 어째서 양국의 견해가 대립·굴절된 양상을 띠면서 미국과 얽힐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해 미국의 중재를 양국이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전략·정책에 대한 연구는 종래와 같이 전후에 한정해서는 그 의도 및 배경을 충분히 밝혀낼 수 없다. 최소한 전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전략기획은 이미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부터 가동되기 시작했으며, 위에서 언급한 국무부 동아시아담당 전문가들은 1942년부터 전략기획의 핵심부서였던 국무부 전후계획위원회 극동반(East Asia Unit)에 참가하여 전후 동아시아전략·정책의 입안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결정과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그들이 설정한 전략목표 및 방법, 동아시아 인식, 국제법적 규범의식 등에 대한 사고를 읽어내야만 전후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외교정책결정과정 및 외교행태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국무부에 민간인으로서 참가하여 전시기의 전략기획에서 그 중심역할을 수행한 브레이크슬리(G. Blakeslee), 볼튼(H. Borton), 피어리(R. Fearey) 등이 관계한 각종 공식서류 및 각각의 회고록, 구술자료 등을 비롯한 사적 자료 등을 광범위하게 포괄하여 그들이 어떠한 동아시아 인식, 국제법적 규범의식 등을 가지고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전략·정책결정과정에 관여하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분석·추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