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말기 조선 내에서 이루어진 노무동원은 일제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65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그 숫자가 조선 밖으로의 동원인 약 85만 명보다 압도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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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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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말기 조선 내에서 이루어진 노무동원은 일제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65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그 숫자가 조선 밖으로의 동원인 약 85만 명보다 압도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공식적인 통계자료이고 이후 진행된 각종 조사에 의해 조선 밖으로의 동원을 200만 명까지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조선 내에서 이루어진 노무동원이 압도적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의 신문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경남지역에서도 1938년 근로보국대와 학생근로보국대가 결성되었으며, 국민총동원정신운동의 일환으로 노무동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때의 노무동원은 정신운동의 일환이기에 하루 정도의 짧은 기간으로 이루어졌다. 둘째, 특이한 점은 경남지역에서는 일반인들의 노무동원과 학생들의 노무동원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부산지역에서는 학생들의 노무동원만 이루어지고 일반인들에 대한 노무동원을 기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일본인중심의 대도시였기에 그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1941년부터 총력운동의 국민근로보국대로 개편되고 국민개로운동이 전개되면서 부산지역을 포함하여 경남지역에서는 대대적인 노무동원이 이루어졌다. 비로소 부산지역에서도 일반인들이 노무동원되기 시작하였음을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부산․경남지역의 전면적인 노무동원이 1941년을 기점으로 실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넷째, 북부 조선 지역의 노무동원을 위해 할당한 노동자를 경남의 각 군․면․읍 단위에서 확보하여 호송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째,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일본 북해도라든지 일본본국의 노동력을 조선인을 통해 보충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 이른 시기부터 모집과 알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부족하나마 경남지역의 노무동원이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고 거의 유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