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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장로교의 전주 신흥학교ㆍ기전여학교 설립과 발전(1901-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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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호남에 세운 여러 미션스쿨 존재 목적의 우선순위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불신자인 아이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도를 통해서 기독교인이 된 가정에 속한 아이들을 교육하여 이들을 기독교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 정책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선교회가 자주 선언한 구호는 ‘불신자에게는 전도를, 그리고 신자에게는 교육을’(Evangelize the heathen and educate the Christians)이었다. 1901년과 1902년에 전주에서 호남 최초의 기독교계 학교로 탄생한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는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1937년에 공식적으로 폐교될 때까지 각각 36년, 35년간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전북 지역 학교교육의 요람 역할을 감당했다. 이 시기 이 두 학교에서 시행된 교육의 역사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 남장로교 교육선교의 몇 가지 특징들이 있었다.
      첫째,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의 교육선교는 장로교 한국선교회의 공식 선교정책인 네비우스 정책을 따라 자립하고 자치하고 자전하는 교회를 세운다는 원칙에 부합하려 했다. 따라서 자치의 역량을 가진 토착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를 길러내는데 역점을 두었다. 학교를 직접 전도의 현장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인인 학생들이 영적으로,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인식한 것이다. 둘째, 토착성과 현지성을 강조하는 이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주 지역 교육선교를 주도한 선교사들은 기독교 교육과 민족주의 의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고, 학생들을 그렇게 지도했다. 이는 나라를 잃은 한국인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선교와 학교 존립, 운영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외국인 선교사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정치사회문제에 교회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비정치주의 원칙을 19세기와 20세기 초반 내내 견지한 미국 남장로교회의 공식 입장이 선교지에서도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셋째, 선교회의 이런 공식 입장과는 달리, 3ㆍ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에서 드러나듯, 전주의 기독교학교들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한국인 교사와 학생들은 기독교신앙과 민족의식을 결합하는데 거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3ㆍ1운동 이후 지식인 사이에 정착된 계몽주의적 점진적 민족개조운동이 이 학교 출신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넷째, 이런 민족주의적 지향성에도 불구하고, 남장로교가 운영했던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는 신앙의 정체성을 타협할 수 없는 우선순위로 보고, 이것이 위협받을 때에는 학교 운영 자체를 포기할 만큼 철저한 ‘기독교’ 학교였다. 신사참배 강요가 강화되던 시기에 일부 한국인 지도자와 학부모가 폐교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들이 이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신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것, 즉 제자와 자녀의 진로 문제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폐교를 불사한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의지, 폐교 순간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생들의 태도는 손양원의 신사참배 저항 등 일제 강점기 호남의 저항신앙의 맥을 이으며 호남기독교의 유산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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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호남에 세운 여러 미션스쿨 존재 목적의 우선순위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불신자인 아이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도를 통해서 기독교인이 된 가정에 속...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호남에 세운 여러 미션스쿨 존재 목적의 우선순위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불신자인 아이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도를 통해서 기독교인이 된 가정에 속한 아이들을 교육하여 이들을 기독교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 정책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선교회가 자주 선언한 구호는 ‘불신자에게는 전도를, 그리고 신자에게는 교육을’(Evangelize the heathen and educate the Christians)이었다. 1901년과 1902년에 전주에서 호남 최초의 기독교계 학교로 탄생한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는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1937년에 공식적으로 폐교될 때까지 각각 36년, 35년간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전북 지역 학교교육의 요람 역할을 감당했다. 이 시기 이 두 학교에서 시행된 교육의 역사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 남장로교 교육선교의 몇 가지 특징들이 있었다.
      첫째,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의 교육선교는 장로교 한국선교회의 공식 선교정책인 네비우스 정책을 따라 자립하고 자치하고 자전하는 교회를 세운다는 원칙에 부합하려 했다. 따라서 자치의 역량을 가진 토착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를 길러내는데 역점을 두었다. 학교를 직접 전도의 현장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인인 학생들이 영적으로,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인식한 것이다. 둘째, 토착성과 현지성을 강조하는 이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주 지역 교육선교를 주도한 선교사들은 기독교 교육과 민족주의 의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고, 학생들을 그렇게 지도했다. 이는 나라를 잃은 한국인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선교와 학교 존립, 운영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외국인 선교사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정치사회문제에 교회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비정치주의 원칙을 19세기와 20세기 초반 내내 견지한 미국 남장로교회의 공식 입장이 선교지에서도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셋째, 선교회의 이런 공식 입장과는 달리, 3ㆍ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에서 드러나듯, 전주의 기독교학교들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한국인 교사와 학생들은 기독교신앙과 민족의식을 결합하는데 거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3ㆍ1운동 이후 지식인 사이에 정착된 계몽주의적 점진적 민족개조운동이 이 학교 출신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넷째, 이런 민족주의적 지향성에도 불구하고, 남장로교가 운영했던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는 신앙의 정체성을 타협할 수 없는 우선순위로 보고, 이것이 위협받을 때에는 학교 운영 자체를 포기할 만큼 철저한 ‘기독교’ 학교였다. 신사참배 강요가 강화되던 시기에 일부 한국인 지도자와 학부모가 폐교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들이 이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신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것, 즉 제자와 자녀의 진로 문제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폐교를 불사한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의지, 폐교 순간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생들의 태도는 손양원의 신사참배 저항 등 일제 강점기 호남의 저항신앙의 맥을 이으며 호남기독교의 유산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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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교육선교 정책
      • Ⅱ.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초기 개척 과정과 전주 선교지부의 탄생
      • Ⅲ. 전주 신흥학교 및 기전여학교의 설립과 운영(1901-1937)
      • Ⅳ. 맺음말: 1901-1937년 남장로교 전주지역 교육선교의 특징과 의의
      • 참고문헌
      • Ⅰ. 머리말: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교육선교 정책
      • Ⅱ.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초기 개척 과정과 전주 선교지부의 탄생
      • Ⅲ. 전주 신흥학교 및 기전여학교의 설립과 운영(1901-1937)
      • Ⅳ. 맺음말: 1901-1937년 남장로교 전주지역 교육선교의 특징과 의의
      • 참고문헌
      • 한글초록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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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1923

      2 Stanley, Brian, Eerdmans 2009

      3 한인수, "호남교회 형성인물" 경건 2000

      4 브라운, 조지 톰슨, "한국선교이야기: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역사(1892-1962)" 동연 2010

      5 최기영,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3권: 애국계몽운동 II 문화운동" 독립기념관 2009

      6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의 역사 II" 기독교문사 2012

      7 박용화, "청소년 영성발달을 위한 기독교학교 종교교육의 실태조사 연구 : 전주신흥고등학교와 기전여자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9

      8 조재승, "전주신흥학교의 항일민족운동에 관한 연구" 전주대학교 대학원 2004

      9 100년사편찬위원회, "전주서문교회 100년사, 1893-1993" 전주서문교회 1999

      10 이덕주, "전주비빔밥과 성자이야기" 진흥 2007

      1 1923

      2 Stanley, Brian, Eerdmans 2009

      3 한인수, "호남교회 형성인물" 경건 2000

      4 브라운, 조지 톰슨, "한국선교이야기: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역사(1892-1962)" 동연 2010

      5 최기영,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3권: 애국계몽운동 II 문화운동" 독립기념관 2009

      6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의 역사 II" 기독교문사 2012

      7 박용화, "청소년 영성발달을 위한 기독교학교 종교교육의 실태조사 연구 : 전주신흥고등학교와 기전여자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9

      8 조재승, "전주신흥학교의 항일민족운동에 관한 연구" 전주대학교 대학원 2004

      9 100년사편찬위원회, "전주서문교회 100년사, 1893-1993" 전주서문교회 1999

      10 이덕주, "전주비빔밥과 성자이야기" 진흥 2007

      11 "전북대리회회록 (1910.1.25.)"

      12 이덕주, "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ㆍ순천 이야기" 진흥 2008

      13 "신흥 114년사"

      14 박혜진, "미북장로회선교부 관할 미션스쿨에 대한 한국인의 경영 참여" 한국기독교역사학회 (39) : 209-250, 2013

      15 김소정,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부의 아동선교(1892-1945) : 미션스쿨과 주일학교 운동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학제신학대학원 2014

      16 기전80년사 편찬위원회, "기전80년사" 기전여중고등학교, 기전여자전문대학 1982

      17 이재근, "‘고립에서 협력으로’: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 정책 변화, 1837-1940" 13 (13): 189-220, 2014

      18 McQueen, Anna, "‘Recognized’ Schools" 1923

      19 Crane, J. C., "What Does the Revival Amount To?" 1921

      20 Knox, Robert Mrs., "The Missionary Survey"

      21 Fulton, C. Darby, "Star in the East" Presbyterian Committee of Publication 1938

      22 Bull, William, "Personal Reports of the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aries in Korea 1892-1986, 제4권"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

      23 Reynolds, William D., "Our Korean Work. Chun-Ju Before and After the War" 1895

      24 "Minutes Ad Interim Committee(Chunju, November 4-5, 1936)"

      25 McCallie, H. D. Mrs., "In Memoriam Anabel Major Nisbet" 1920

      26 Swinehart, M. L., "Go Forward in Korea, The Missionary Survey" 1921

      27 Wasson, Alfred W., "Church Growth in Korea"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1934

      28 Reynolds, William D., "By Land and Sea. One Thousand Miles in Cho Sen" 1894

      29 Junkin, William, "Beginning Work in Korea" 1894

      30 Lee, Jaekeun, "American Southern Presbyterians and the Formation of Presbyterianism in Honam, Korea, 1892-1940: Traditions, Missionary Encounters, and Transformations" University of Edinburgh 2013

      31 Tate, Lewis B., "A Visit to Chyung-Ju" 1894

      32 Dupuy, L., "A Teacher's Institute in the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 1921

      33 Reynolds, William D., "A Mid-Winter Journey in Chosen" 1893

      34 박혜진, "1920∼30년대 미북장로회선교부 관할 중등학교 운영과 한국인 인계과정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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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4-21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Society For Korean Church History -> The Society of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Korea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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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43 0.43 0.5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 0.64 0.945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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