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の誕生というのは近代の人人に神秘で珍しいものであった。だから、初めは東西を問わず、新しい文化の現狀を說明してくれる단金者が必要だったのである。西洋では無聲映畵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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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산 (고려대학교)
2013
-
800
KCI등재
학술저널
141-17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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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畵の誕生というのは近代の人人に神秘で珍しいものであった。だから、初めは東西を問わず、新しい文化の現狀を說明してくれる단金者が必要だったのである。西洋では無聲映畵から有芦映畵へと技術が發達するにつれて、映畵解說者の姿は消えてしまった。しかし、日本と韓國の場合は、「二重三重に飜譯された近代」に迎える立場だったので、異質的な 文化を理解させてくれる解說者が必要だった。この解說者が新しい西洋文化の受容において架橋の役割をした「解說弁土」である。一方、異質的な文化は土着文化と融合しながらもう一つの文化を創造する。この論文では、まず、日本の弁士を中心に活動寫眞の初期においての解說弁土と專門性を確保した職業弁土の成立を檢討している。そして日本の傳統芸能と活動寫眞が融合してどんな公演樣式と發聲方式を創出しているのかを探ってみた。1世代の弁士たちは傳統劇での口上言いや西洋を體驗した近代の知識人であり、彼らは各各の個性と地域性を生かして弁土の話術を造った。特に、寫し繪の文化と傳統劇での口上によっては解說弁土を誕生きせ、浪花節の音曲は弁土の話術を定着きせるのに大きな影響を與えた。また、ちんどん屋の宣傳の方式は近代の廣告代理業である廣目屋に受け續がれて、映畵の弘報からパフォ-マンスとなった。日本の活動寫眞は傳統芸能の樣式を基にして弁土という獨特の樣式を創出し、映像の發達とともに弁土の芸も上達になったのが確認できた。それから、朝鮮の解說弁士の成立を再確認して、金時の狀況を再照明してみた。今までの朝鮮弁士に關する硏究では解說弁士と演技弁士を一括的に扱っていて、能弁の有名人としての弁士の發言さえ演行として認めていた。舍時の朝鮮は日本の支配下にいたし、映畵の製作の段階に入れなかった。だから、朝鮮の弁土は解說弁土の方式に止まるしかなかっ たし、主觀的で創造的な演行を見せてく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すなわち、1910年までの朝鮮には西洋の映畵解說者や日本の口上を眞似するほどの解說弁土がいたが、弁士の眞面白が見せられる環境て。はなかっともちろん、以後から登場する「演技弁土」を通しては、日本との影響關係と朝鮮弁士の正體性が確認できる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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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프레더릭 S. 밀러(Frederick S. Miller)의 한국시가론
후기 근대의 공포와 재앙의 상상력 -편혜영의『재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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