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시(written poetry)'의 전통으로부터 탈피하기- ‘말하기’ 혹은 ‘노래하기’의 시 : 시는 문자 매체로 향유되는 양식인가? 그러니까 시는 눈으로 읽고 묵독하는 정적인 독서의 향유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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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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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시(written poetry)'의 전통으로부터 탈피하기- ‘말하기’ 혹은 ‘노래하기’의 시 : 시는 문자 매체로 향유되는 양식인가? 그러니까 시는 눈으로 읽고 묵독하는 정적인 독서의 향유물인...
‘문자시(written poetry)'의 전통으로부터 탈피하기- ‘말하기’ 혹은 ‘노래하기’의 시 : 시는 문자 매체로 향유되는 양식인가? 그러니까 시는 눈으로 읽고 묵독하는 정적인 독서의 향유물인가? 이 의문으로부터 이 연구 계획이 시작되었다.
1. 시 혹은 노래는 프랙탈 층위에서 공통적으로 ‘말’의 고유성을 갖는다. 시는 본래적으로 ‘시가(詩歌)’라고 불려졌다. 그런데 근, 현대시는 노래에서 곡조가 떨어지고 가사(말)만 남은 양식으로 설명된다.과연 그러한가? 우리말이 가진 고유한 음성성, 목소리는 근(현)대시의 근대적 ‘쓰기’(문자시)의 전통에서 사라져버린 것인가? 우리말 어감을 살렸다고 정지용 등을 일컬을 때, 그것은 문자시에 구속된 ‘의미’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말의 음성성, 목소리의 영역이다. 우리시의 본래의 영역인 ‘시가’를 복원하는 길은 없는가?
2. 말과 노래의 중간 영역이 있다.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처럼, 말을 노래하는 판소리의 ‘창’이 있다. ‘창’과 ‘아니리’의 교체가 판소리의 고유 양식이라고 하는데, ‘창/아니리’ 역시 말을 노래하는 영역이다. 말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 이 같은 ‘레치타티보(recitativo)’류의 양식은 말을 노래화 하는 기술이자 말과 노래, 시와 음악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중간’ 경역이다.
3. 그렇다면, 시를 노래로 부르는 영역이 있다. 우리 고유 시가가 그렇다. 시가뿐 아니라 고대 산문 역시 리듬이 잠재된 운문 형태의 말이다. 이 시와 산문의 차이를 궁극적으로 가르는 것은 리듬의 존재성이다. 시뿐 아니라 산문도 리듬을 가진다. 문제는 사유의 행진이냐 노래의 춤이냐이다.
4. 그렇다면 우리는 ‘리듬이란 무엇인가’를 논해야 한다. 3음보, 4음보 식의 기계적 율격을 여기서 논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리듬이, 이미지, 음성성(음향), 은유라는 시를 설명하는 고유한 기능들과 맺는 관계를 주목한다.
5. 리듬 문제는 결국 반복과 후렴의 문제로 되돌아가고 이는 시 양식 고유의 ‘원환적 말의 표현 기술’ 문제인 은유와 연결된다. ‘꽥꽤거리고 헉헉거리고 날뛰는’ 트리스탄적 이미지에 대한 지젝의 헌사는, 이상이 「실화」에서 보여준 ‘프로파카당스적 이미지’와, 미샤 엘만의 연주를 읽는 이상의 수다와 ‘질주’의 음향에 대한 이상의 강박증에서 재확인된다. 여기서 우리는 ‘말을 가지고 말을 놀고 말을 초월하는’ 이 리토르넬로적 아방가르드 정신, 음악의 절대정신을 향한 말의 질주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6. 말은 ‘음악’과 ‘담론’ 사이에 존재한다. 말이 음악을 지향하면서 말은 죽음을 초월하기 위한 제의를 준비한다. 이 문제는 말을가지고 말을 노는 놀이, 서정시, 판소리, 고전시가 등의 ‘말을 가지고 어떻게 죽음을 초월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을 완성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시가 「헌화가」, 「제망매가」, 「처용가」 등, 설화 「만파식적」 등, 무가 「바리데기」, 판소리 「춘향전」, 「심청전」 등. 이 문제는 모차르트(오페라의 주제들)와 춘향가를 잇는 사다리이며, 바그너(트리스탄과 이졸데)와 심청전을 연결하는 모나드적 주제들이기도 하다.
7.「춘향전」, 「심청전」 등 판소리의 ‘사랑’과 ‘죽음’과 ‘초월’의 주제는 말의 ‘타자화 되기’의 말의 질서 속에 놓인다. 이는 저술을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보다 논증적이고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문제들을 제기할 것으로 생각된다. 모차르트와 바그너적 주제들과 판소리의 주제를 연관지어 논할 것이다.
8. ‘공동체의 영원한 아이러니’로 이름붙였던 ‘말’의 집단성과 구술성과 부족주의에 대한 논의로 확장할 것이다. 서사무가에서 발원하여 영,정 시대 평민문화의 장을 열고 마감했던 판소리의 말에서 근대문학은 무엇을 빚지고 무엇을 잃었는가를 확인할 것이다. 그래서 근대 개화기의 시가들, 창가, 신체시, 가사 이른바 ‘개화기 양식’의 시가적 전통을 우리는 판소리와 근대시의 ‘말’을 잇는 고리로 이해할 것이다.
이는 그 동안의 근대시사를 보는 시각, 담론들을 분석, 해체하는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노래로부터 말이 분리된다고 믿는 담론들을 분석하고,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우리가 그토록 완고하게 고집하고 있는 ‘문자시의 전통’이 생겨났는가를 논증할 것이다
9.노래로부터 분리된 근대시의 형해와 같은 골격을 우리는 다시 점검하게 될 것이다. 노래를 회복하고자 김소월은 어떻게 노래했는지를, 만해는 어떻게 사유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10. 노래로부터 분리된 시를 원래대로 복원하고자 한 이상, 정지용, 김영랑, 김기림 같은 1930년대 시인들을 우리는 다시 주목할 것이다. 이들에게서 음성성, 구술성, 발성의 목소리를 다시 발굴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고대시가의 말과 노래들의 계보에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