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써는 1920년대 초엽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처음 만나서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는다. 그의 권유로 『잉골슈타트의 공병들』을 집필하며 1928년에 완성한다. 1928년 드레스덴의 초연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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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써는 1920년대 초엽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처음 만나서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는다. 그의 권유로 『잉골슈타트의 공병들』을 집필하며 1928년에 완성한다. 1928년 드레스덴의 초연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지켜본 브레히트는 1929년 베를린-슆바우어담 극장에서의 공연을 계획하고 직접 연출을 맡는다. 브레히트는 처음부터 서사극적 실험극을 창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공병들과 처녀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이 실험극의 형식에 맞는 공연이 되도록 몽타주 기법을 사용한 개방적 연극형식을 선택하였다. 아울러 도발적으로 그려진 성에 대한 묘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관객을 교화하는 정치적 교훈극이 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베를린 공연이 초래한 스캔들의 파장을 수습해야 했던 플라이써는 장시간 고통과 침묵의 시간을 갖게 된다. 민중들의 실생활에 뿌리박혀 있는 관례와 풍습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 점은 브레히트의 의도에 부합하지만 대중의 교화를 기본적인 목표로 교훈극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브레히트와 의견을 달리한다. 오히려 상황적 희극성이 주는 명쾌한 희극적 민중극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12개의 장면으로 된 단막극”이면서 “희극”이라는 부제를 쓴 것이다. 권위를 내세워 사회적 약자에게 일방적인 주종관계를 요구하는 강자의 횡포가 군대사회 뿐만 아니라 남녀관계, 주인과 고용인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현상을 해학과 풍자로 비판하고 있다. 세태를 풍자하는 사회비판적 소재와 독립적인 장면배열 그리고 은유적 시어(詩語)를 고려한다면 1929년 판에서 브레히트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좌익성향이 득세하는 기운을 타고 1960년대 말에 민중극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다. 이시기에 브레히트의 연극과 호르바트의 민중극이 새롭게 부활한다. 민중에 관한 극보다는 민중을 위한 극으로 그들의 문제를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회비판적 민중극이 각광을 받게 된다. 1968년의 뮌헨 공연을 위해 파스빈더가 직접 개작하고 연출을 맡은 『일례로 본 잉골슈타트』역시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에서 가능한 일이었고 이로 인해 1970년대는 플라이써 문학의 부흥기로 접어든다. 1970년대 후반에 새로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입각한 여성문예학자들은 “여성적 글쓰기 방식”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여성작가들의 사회적 입지와 작품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데 집중한다. 이로써 플라이써의 작품도 삶과 사랑과 창작의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80, 90년대 연구논문들은 한결같이 산문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어서 작가의 대표작이면서 여류작가의 최초 민중극 『잉골슈타트의 공병들』에 나타난 여성적 관점을 연구하는데 소홀히 하였다. 1929년 판과 비교해서 1968년 판에서 알마와 베르타라는 두 여주인공의 성격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알마의 삶의 태도에서 적극적인 자기긍정과 자의식의 강화를 찾아 볼 수 있다. 공병들을 상대로 한 매춘이 사랑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알마는 더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꿈꾼다. 그곳에는 항상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알마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 작가는 여성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에 변화를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억류된 삶을 살지만 자유와 사랑을 꿈 꿀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알마와 베르타를 통해 작가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하층민들의 육체적 예속이 곧 정신적 부자유와 구속을 의마할 수 없다는 선언은 열악한 여성의 사회적 처우개선과 여성들 자신도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일익을 담당할 것을 권하는 메시지로 연결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