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이성산성은 486년 삼년산성과 함께 개축된 굴산성으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까지 확보된 고고자료와 문헌기록, 연구성과 등을 종합해 보면, 청성・청산지역은 물론 옥천 서부지역, 보은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옥천 이성산성은 486년 삼년산성과 함께 개축된 굴산성으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까지 확보된 고고자료와 문헌기록, 연구성과 등을 종합해 보면, 청성・청산지역은 물론 옥천 서부지역, 보은 ...
옥천 이성산성은 486년 삼년산성과 함께 개축된 굴산성으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까지 확보된 고고자료와 문헌기록, 연구성과 등을 종합해 보면, 청성・청산지역은 물론 옥천 서부지역, 보은 성주리와 우진리 등에서 3~5세기까지 해당되는 주거지와 고분, 토기류가 출토되어 마한과 백제가 일찍부터 점유했다는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특히 서대리에서 조사된 도로유구가 이 시기부터 조성되어 신라가 점령한 때까지도 계속해서 활용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5세기 중~후반 사이에는 신라가 화령과 추풍령로를 통해 이성산성과 보은 일대로 진출했고, 그와 관련된 유적인 삼년산성, 대야리 고분군 등의 많은유적이 보은 시가지와 보청천변을 따라 분포해 있다. 이성산성도 서벽의 판축성벽이 5세기 말경에 축조되었고, 금구리 고분군이 조영되었는데, 산계리고분군도 이성산성 축성과 더불어 일찍부터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6세기 중반부터 7세기 전반에는 신라와 백제가 옥천과 보은 일대에서 격전을 벌였는데, 이때 이성산성의 서벽 판축성벽 외면에 석축이 쌓여지고, 산계리 고분군도 계속해서 축조되며, 황간과 영동, 금산 추부 일대에도 성곽과고분이 조영된다. 또한, 이성산성의 중심토루 내에서 출토된 이단투창고배로 보아 사벌국 내지 감문국과의 교류관계도 상정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계기는 근초고왕의 남정과 관련하여 낙동강 이서지역에서의 가야토기 확산의 결과로 보인다.
475년 백제 한성이 고구려에게 함락 당하면서 신라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해 삼년산성을 중심으로 이성산성 일대의 관방체계를 신속하게 구축하였다. 그리고 황간과 영동 등의 추풍령 일원과 화령 일대에서도 신라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당시의 정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성산성은 6세기 중반부터 후반 사이에 벌어졌던 옥천 일대의 전투에서도 최전방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항시 지원 체제를 갖춘 성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백제가 웅현성을 축성함으로서 신라에게 큰 타격이 가해졌지만, 내리서성 등을 사수하여 지배의 안정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남산신성 축성에도 주민을 동원시켰으며, 수취 체제에도 편입시켰다. 아울러 7세기 전반에 벌어진 가잠성 전투 때에도 보청천 일대를 사수하면서 인접 지역에 대한 지원과 팔음산과 추풍령로 통제에 한 축을 담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Okcheon Iseongsansung Fortress is point out as Gulsansung Fortress, which was renovated along with Samnyeonsansung Fortress in 486. House site, burial mounds, and earthenware from the 3rd to 5th centuries have been excavated in Cheongseong and Cheongs...
Okcheon Iseongsansung Fortress is point out as Gulsansung Fortress, which was renovated along with Samnyeonsansung Fortress in 486. House site, burial mounds, and earthenware from the 3rd to 5th centuries have been excavated in Cheongseong and Cheongsan areas as well as in the western Okcheon region and Boeun, supporting the fact that Mahan and Baekje were occupied early. In particular, it was revealed that the road infrastructure surveyed in Seodae-ri was built during this period and continued to be used until Silla occupied it.
Between the middle and late 5th century, Silla advanced to the Iseongsansung Fortress and Boeun areas via Hwaryeong and Chupungryeong-ro, and many ruins related to it, such as Samnyeonsansung Fortress and Daeyari Tombs Group, are distributed along the city and Bocheongcheon River side. The plate wall on the west wall of Iseongsansung Fortress was built around the end of the 5th century, and the Kumguri Tombs Group was constructed, and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Sangye-ri Tombs Group was built early along with the construction of Iseongsansung Fortress.
In the 6th and 7th centuries, Silla and Baekje fought in the Okcheon and Boeun areas. At this time, stone shafts were piled up on the outer surface of the plank wall of the west wall of Iseongsansung Fortress, the Sangye-ri Tombs Group continued to be built, and Fortress and tombs were also projected in the Hwanggan, Yeongdong, and Chubu areas of Geumsan. Also, it is now possible to imagine an exchange relationship with Sabeal Small Country or Gammun Small Country due to the ancient vessels excavated in the central mound of Iseongsansung Fortress. The reason for this appears to be the result of the spread of Gaya earthenware in the Nakdong River west area in connection with King Geunchogo southern punishment in the early days.
Tension in Silla reached its peak when Baekje Hansung fell to Goguryeo in 475, and a government system around Isseongsansung Fortress was quickly established around Samnyeonsansung Fortress. Isseongsansung Fortress played a role as a Fortress with a constant support system due to its geographical location close to the front line during the Battle of Okcheon that took place between the middle and late 6th century. In particular, Baekje dealt a big blow to Silla by forging Wunghyeon-seong Fortress, but it was also incorporated into the takeover system by maintaining stability of control. It is believed that it played a role in supporting neighboring regions and controlling Paleumsan Mountain and Chupung-ryeong by holding the Bocheongcheon River area during the 7th century.
참고문헌 (Reference)
1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합천 성산토성-7차 시굴・발굴조사" 2023
2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합천 성산토성-6차 시굴・발굴조사" 2022
3 박종익, "함안산성 출토목간" 2007
4 주보돈,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기초적 검토" (19) : 2000
5 김창호, "함안 성산산성" 1998
6 강종원, "한성백제사 다시보기" 2017
7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노치고개"
8 윤상덕, "중원의 삼국토기" 2022
9 성정용, "중원의 삼국토기" 2022
10 옥천군지편찬위원회, "옥천군지 2" 2001
1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합천 성산토성-7차 시굴・발굴조사" 2023
2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합천 성산토성-6차 시굴・발굴조사" 2022
3 박종익, "함안산성 출토목간" 2007
4 주보돈,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기초적 검토" (19) : 2000
5 김창호, "함안 성산산성" 1998
6 강종원, "한성백제사 다시보기" 2017
7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노치고개"
8 윤상덕, "중원의 삼국토기" 2022
9 성정용, "중원의 삼국토기" 2022
10 옥천군지편찬위원회, "옥천군지 2" 2001
11 충북문화재연구원, "옥천 테크노밸리 조성부지 내 유적" 2020
12 백종오, "옥천 이성산성의 성내 시설물 검토와 축조사적 의미" (87) : 2022
13 최관호, "옥천 이성산성의 발굴성과와학술적 가치" 2022
14 서정석, "옥천 이성산성의 발굴성과와 학술적 가치" 2022
15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옥천 이성산성의 발굴성과와 학술적 가치" 2022
16 홍보식, "옥천 이성산성의 발굴성과와 학술적 가치" 2022
17 윤성호, "옥천 이성산성 축성과 운영의 특징에 대한 토론문" 2022
18 호서문화유산연구원, "옥천 이성산성 3차 문화재 발굴조사 약보고서" 2023
19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옥천 이성산성 2차 발굴조사 약보고서" 2022
20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옥천 삼양리 40-3번지 유적" 2022
21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옥천 삼양리 40-18번지 유적" 2022
22 중원문화재연구원, "옥천 산계리 굴산성(이성산성) 정밀지표조사 보고서" 2015
23 동북아문화재연구원, "옥천 산계리 28번지 유적" 2019
24 호서문화유산연구원, "영동 계산리 749-1번지 유적" 2017
25 이부오, "신라의 영역지배 편성과정과 외위" 서경문화사 2019
26 조인규, "신라와 가야의 토목 기술" 2022
27 서영일, "신라 육상 교통로 연구" 학연문화사 1999
28 정재윤,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시작 한강유역과 관산성" 2019
29 이진혁, "상주 함창 신흥리 고분군 출토 토기의 양상과 그 의미" (22) : 2022
30 황보경, "삼국시대 木柵에 대한 考察" (106) : 2016
31 차용걸, "보은의 성곽"
32 중원문화재연구원, "보은 함림산성 종합학술조사 보고서" 2011
33 충북문화재연구원, "보은 서원리 산39-7번지 유적" 2017
34 노중국, "백제정치사" 일조각 2018
35 이혁희, "백제의 토성과 합천 성산토성의 축조기술 비교" (93) : 2022
36 이진혁, "문헌, 지리 그리고 고분을 통해 본 삼국시대 김천지역 세력의 구성과동향" (90) : 2021
37 한성백제박물관, "몽촌토성Ⅲ" 2019
38 조규희, "마한·백제권 철촉의 변천과정" 전남대학교 대학원 2013
39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 "대전 노은동 유적" 2003
40 다온문화재연구원, "김천 옥률리・문당동・신리 유적" 2018
41 전덕재, "관산성 전투에 대한 새로운 고찰" 34 : 2009
42 정덕기, "고대 군사사의 제양상" 2023
43 장창은, "고구려 남방 진출사" 경인문화사 2014
44 최병현, "고고학으로 본 신라의 전북지방 진출과정" (5) : 2022
45 東西文物硏究院, "陜川 城山里 城址(2015年)" 2018
46 東西文物硏究院, "陜川 城山里 城址(2013年)" 2015
47 崔炳華, "錦山地域 百濟山城에 關한 硏究" 公州大學校 大學院 2005
48 韓南大學校博物館, "錦山 場垈里 古墳群" 1992
49 한빛문화재연구원, "金泉 文武里 遺蹟" 2013
50 한빛문화재연구원, "金泉 文武里 古墳群Ⅰ" 2013
51 鄭永鎬, "金庾信의 百濟攻擊路 硏究" (6) : 1972
52 박중균, "美湖川流域의 馬韓에서 百濟로의 轉換과 在地勢力의 存在樣態" (33) : 2015
53 박중균, "美湖川流域 百濟古墳의 樣相과 性格" (10) : 2013
54 車勇杰, "管山城 關聯遺蹟의 現狀과 保存方向" (12) : 2009
55 梁起錫, "管山城 戰鬪의 樣相과 影向" 12 : 2009
56 釜山大學校博物館, "福泉洞古墳群Ⅳ-35・36號墳-" 2012
57 徐程錫, "百濟山城의 立地와 構造" (16・17) : 2002
58 朴鍾旭, "百濟 泗沘期 新羅와의 전쟁과 영역 변천" 高麗大學校 大學院 2021
59 황보경, "百濟 城郭硏究와 韓國考古學" 주류성 2022
60 鄭永鎬, "百濟 古利山城考" (7・8合) : 1975
61 淸州大學校 博物館, "沃川郡 文化遺蹟分布地圖" 2005
62 淸州大學校 博物館, "沃川郡 文化遺蹟" 1993
63 중원문화재연구원, "沃川 門井里 341-1番地 遺蹟"
64 中原文化財硏究院, "沃川 金龜里 新羅 古墳群" 2011
65 中央文化財硏究院, "沃川 玉覺里遺蹟" 2002
66 국강문화재연구소, "沃川 已城山城" 2017
67 中原文化財硏究院, "沃川 加豊里Ⅱ 遺蹟" 2011
68 中原文化財硏究院, "沃川 仁政里 遺蹟" 2012
69 中原文化財硏究院, "永同 黃澗邑城 地表調査 報告書" 2006
70 최병현, "永同 池鳳里 古墳群의 調査槪要" (11) : 2008
71 한국선사문화연구원, "永同 新興里 遺蹟" 2018
72 中原文化財硏究院, "永同 南城里 遺蹟" 2019
73 박종욱, "椵岑城의 지리적 환경과 7세기 전반 百濟・新羅의 攻防" (84) : 2021
74 전덕재, "椵岑城의 位置와 그 戰鬪의 역사적 성격" (87) : 2013
75 李盛周, "新羅・伽耶社會의 起源과 成長" 學硏文化社 1999
76 南翼熙, "新羅土器 硏究" 慶北大學校 大學院 2018
77 成周鐸, "新羅 三年山城 硏究" (7) : 1976
78 "新增東國輿地勝覽"
79 國立慶州博物館, "慶州市 月城路 古墳群" 1990
80 申鍾煥, "忠北地方 三韓・三國土器의 變遷" (8) : 1997
81 홍지윤, "尙州 咸昌 新興里古墳群 築造集團의 性格" (22) : 2022
82 "大東輿地全圖"
83 忠北大學校 中原文化財硏究所, "報恩 昧谷山城 地表調査 報告書" 1998
84 中央文化財硏究院, "報恩 敎岩里遺蹟" 2004
85 中央文化財硏究院, "報恩 富壽里 古墳群" 2004
86 한국선사문화연구원, "報恩 城舟里 遺蹟" 2015
87 한국선사화연구원, "報恩 右陳里 遺蹟" 2017
88 中央文化財硏究院, "報恩 上長里遺蹟" 2004
89 한국선사문화연구원, "報恩 上可里 遺蹟" 2015
90 中原文化財硏究院, "報恩 三年山城-東門址 2次 發掘調査 報告書-" 2013
91 中原文化財硏究院, "報恩 三年山城-2006年度 內側 城壁 發掘調査 報告書-" 2008
92 中原文化財硏究院, "報恩 三年山城 古墳群 綜合學術調査 報告書" 2012
93 이용현, "城山山城 木簡에 보이는 신라의 지방경영과 곡물・인력 관리" (17) : 2021
94 梁起錫, "國原小京과 于勒" (16) : 2006
95 全榮來, "古代山城의 發生과 變遷" (11) : 1988
96 李鍾旭, "南山新城碑를 통하여 본 新羅의 地方統治體制" (64) : 1974
97 淸州大學校 博物館, "中原文化圈遺蹟 精密調査報告書-沃川郡" 1984
98 이영호, "上古期 尙州地域 政治體의 向方" (41) : 2013
99 李丙燾, "三國史記(上)" 1982
100 "三國史記"
101 박대재, "『三國史記』 初期記事에 보이는 新羅와 百濟의 戰爭" (7) : 1999
102 김창석,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百濟・新羅의 전쟁과 大耶城" 34 : 2009
103 윤성호, "5세기 중후반 신라의 소백산맥 이서 지역 진출" (55) : 2019
104 전병우, "494년 ‘薩水’ 벌판 戰鬪와 政勢變化" (134) : 2020
마립간기·중고기 신라 왕실의 婚俗 재검토 -部體制ㆍ骨品制와의 관련을 중심으로-
고등학교 한국사 서술과 평가 문항에 투영된 1960년대
일제강점기 엄항섭의 독립운동-청년조직 활동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