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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오고에(御後繪)와 조선시대 불교회화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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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연구는 오키나와의 오고에와 조선시대 불화와의 유사성에 대해서 비교하였다. 먼저 현재 사진으로 전하는 오고에의 소재 및 그 유형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류큐국 유래기>(1713), <구양>(1745) 등의 문헌에 기술된 오고에 관련 기록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문헌에 ‘尊像’, ‘壽像’, ‘壽影’ 등으로 기록된 역대 류큐왕조 국왕의 초상화가 오늘날의 오고에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고에가 조선시대 불화의 영향으로 성립하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첫째 조선시대 조선과 오키나와의 문물교류 특히 그 중에서도 조선에서 류큐로의 불교 전파라는 역사적 맥락을 주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대장경을 류큐로 전해주는 등, 류큐의 불교 융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불교 회화 양식이 류큐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조선시대 불화와 오고에의 텍스트 비교를 통해서 특히 조선시대에 제작된 사찰의 지장탱 및 시왕탱과의 유사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다. 사찰에서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안치한 공간이 다름 아닌 지장전, 명부전, 혹은 시왕전이라고 부르는 전각이다. 지금도 한국의 사찰에 가면 지장전이나 명부전에 지장보살이 안치되어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개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그 좌우에 시왕이 안치되어 있다. 이는 류큐왕조의 종묘였던 원각사 대전 및 어조당의 신주 배치 방식과 일치한다. 류큐 왕조시대 국왕의 초상화 오고에와 조선시대 불화 중의 지장탱 및 시왕탱과의 사이에 보이는 회화 구도의 유사성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던 셈이다.
    류큐왕조 시대에 원각사 어조당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제사공간이었다. 이 글의 제2장에서 구양 권11의 기록(<사례 4>)을 통해서 확인한 바와 같이, 어조당은 당시 류큐왕조의 종묘에 해당되는 공간이었다. 원래 원각사 대전 옆에 곁채를 지어서 어조당으로 삼다가, 후에는 원각사 대전 그 자체를 어조당으로 삼았다. 어조당은 국왕의 사후에 신주와 오고에를 걸어놓고 불교식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 다시 말하자면 선왕의 불교적 신격화를 도모하는 공간이었다. 선왕의 불교적 신격화는 왕권의 유지 및 강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 불교적 신격화의 과정에서 불교의 지장탱 및 시왕탱의 회화 양식을 빌려서 오고에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류큐의 국왕을 지장보살이나 시왕에 견주어 표현했던 셈이다. 특히 시왕과의 관련성이 두드러진다. 어조당이라는 공간은 불교의 지장전, 명부전, 시왕전에 해당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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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오키나와의 오고에와 조선시대 불화와의 유사성에 대해서 비교하였다. 먼저 현재 사진으로 전하는 오고에의 소재 및 그 유형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류큐국 유래기>(1713), <...

    이 연구는 오키나와의 오고에와 조선시대 불화와의 유사성에 대해서 비교하였다. 먼저 현재 사진으로 전하는 오고에의 소재 및 그 유형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류큐국 유래기>(1713), <구양>(1745) 등의 문헌에 기술된 오고에 관련 기록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문헌에 ‘尊像’, ‘壽像’, ‘壽影’ 등으로 기록된 역대 류큐왕조 국왕의 초상화가 오늘날의 오고에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고에가 조선시대 불화의 영향으로 성립하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첫째 조선시대 조선과 오키나와의 문물교류 특히 그 중에서도 조선에서 류큐로의 불교 전파라는 역사적 맥락을 주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대장경을 류큐로 전해주는 등, 류큐의 불교 융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불교 회화 양식이 류큐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조선시대 불화와 오고에의 텍스트 비교를 통해서 특히 조선시대에 제작된 사찰의 지장탱 및 시왕탱과의 유사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다. 사찰에서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안치한 공간이 다름 아닌 지장전, 명부전, 혹은 시왕전이라고 부르는 전각이다. 지금도 한국의 사찰에 가면 지장전이나 명부전에 지장보살이 안치되어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개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그 좌우에 시왕이 안치되어 있다. 이는 류큐왕조의 종묘였던 원각사 대전 및 어조당의 신주 배치 방식과 일치한다. 류큐 왕조시대 국왕의 초상화 오고에와 조선시대 불화 중의 지장탱 및 시왕탱과의 사이에 보이는 회화 구도의 유사성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던 셈이다.
    류큐왕조 시대에 원각사 어조당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제사공간이었다. 이 글의 제2장에서 구양 권11의 기록(<사례 4>)을 통해서 확인한 바와 같이, 어조당은 당시 류큐왕조의 종묘에 해당되는 공간이었다. 원래 원각사 대전 옆에 곁채를 지어서 어조당으로 삼다가, 후에는 원각사 대전 그 자체를 어조당으로 삼았다. 어조당은 국왕의 사후에 신주와 오고에를 걸어놓고 불교식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 다시 말하자면 선왕의 불교적 신격화를 도모하는 공간이었다. 선왕의 불교적 신격화는 왕권의 유지 및 강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 불교적 신격화의 과정에서 불교의 지장탱 및 시왕탱의 회화 양식을 빌려서 오고에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류큐의 국왕을 지장보살이나 시왕에 견주어 표현했던 셈이다. 특히 시왕과의 관련성이 두드러진다. 어조당이라는 공간은 불교의 지장전, 명부전, 시왕전에 해당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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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沖縄の御後繪と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比較

     本稿は、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影響によって御後絵が成立した可能性について論じたものである。御後絵とは、琉球国王の死後に描かれた肖像画のことである。画面の中央の国王を中心に、左右相称に重臣が配置される。国王の姿は目立つように大きく描かれ、その権威を強調して表現されている。
    本稿では御後絵が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影響によって成立した可能性について、まず朝鮮時代における朝鮮と琉球の仏教交流から考察した。朝鮮時代には、朝鮮から琉球に大蔵経伝わるなど、様々な交流があったからである。言わば朝鮮と琉球の仏教交流というコンテキストを注目したわけである。次に主に朝鮮時代に描かれた「地蔵幀」や「十王幀」を取り上げ、沖縄の御後絵とその様式を比較した。こういう研究によって、二つの結論を導くことができた。その一つは、御後絵と朝鮮時代の「地蔵幀」や「十王幀」のあいだには、すこぶる類似性が認めら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もう一つは、御後絵が飾られた「御照堂」という祭祀空間は、韓国の仏教寺院における「冥府殿」や「十王殿」に譬えられる空間であったというこである。
     つまり琉球王国で、歴代の先王を仏教の「地蔵」や「十王」に匹敵するような存在として神格化する過程いおいて御後絵の絵画様式が生まれたと言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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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沖縄の御後繪と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比較  本稿は、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影響によって御後絵が成立した可能性について論じたものである。御後絵とは、琉球国王の死後に描かれた肖...

    沖縄の御後繪と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比較

     本稿は、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影響によって御後絵が成立した可能性について論じたものである。御後絵とは、琉球国王の死後に描かれた肖像画のことである。画面の中央の国王を中心に、左右相称に重臣が配置される。国王の姿は目立つように大きく描かれ、その権威を強調して表現されている。
    本稿では御後絵が朝鮮時代の仏教絵画の影響によって成立した可能性について、まず朝鮮時代における朝鮮と琉球の仏教交流から考察した。朝鮮時代には、朝鮮から琉球に大蔵経伝わるなど、様々な交流があったからである。言わば朝鮮と琉球の仏教交流というコンテキストを注目したわけである。次に主に朝鮮時代に描かれた「地蔵幀」や「十王幀」を取り上げ、沖縄の御後絵とその様式を比較した。こういう研究によって、二つの結論を導くことができた。その一つは、御後絵と朝鮮時代の「地蔵幀」や「十王幀」のあいだには、すこぶる類似性が認めら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もう一つは、御後絵が飾られた「御照堂」という祭祀空間は、韓国の仏教寺院における「冥府殿」や「十王殿」に譬えられる空間であったというこである。
     つまり琉球王国で、歴代の先王を仏教の「地蔵」や「十王」に匹敵するような存在として神格化する過程いおいて御後絵の絵画様式が生まれたと言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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