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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瓦質土器 樂浪影響說’의 검토 = Review on the theory of Wajil pottery and Lelang command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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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519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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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t has been a general understanding that Wajil pottery(pottery which have similar features with roof tile in intensity)had appeared by influence of Han(漢)style pottery, namely Lelang pottery, from the prior pottery culture(clay-rimmed pottery culture) in Young-Nam region. This understanding have contributed to regard the upper limit date of Wajil pottery as the time of installation of Lelang commandery.
    There also has been opposing understanding about the appearance background of Wajil pottery; the hypothesis which are relating warring states period pottery to Wajil pottery. But, it is not quite differ from the former because it also connect the appearance date of Wajil pottery to the time of installation of Lelang commandery.
    This paper intends to clarify that there seems distinction in producing techniques of short-neck jar excavated from the both regions. In the sites of Nakdong river basin such as Seong-ju, Neuk-do, Ul-san, beating pottery which could be dated earlier than the time of installation of Lelang commandery have been excavated. The producing techniques of these pottery are much similar with that of warring states period pottery, especially in that of east region of liaoning, rather than pottery of Lelang. Thus, the background of appearance of Wajil pottery in Nak dong river basin is owing to transition of its own position in the international trade network. That network that was ranged from north-east region of China, north Kyushu to Okinawa was being operated mainly by Wiman-joseon(衛滿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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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has been a general understanding that Wajil pottery(pottery which have similar features with roof tile in intensity)had appeared by influence of Han(漢)style pottery, namely Lelang pottery, from the prior pottery culture(clay-rimmed pottery cultur...

    It has been a general understanding that Wajil pottery(pottery which have similar features with roof tile in intensity)had appeared by influence of Han(漢)style pottery, namely Lelang pottery, from the prior pottery culture(clay-rimmed pottery culture) in Young-Nam region. This understanding have contributed to regard the upper limit date of Wajil pottery as the time of installation of Lelang commandery.
    There also has been opposing understanding about the appearance background of Wajil pottery; the hypothesis which are relating warring states period pottery to Wajil pottery. But, it is not quite differ from the former because it also connect the appearance date of Wajil pottery to the time of installation of Lelang commandery.
    This paper intends to clarify that there seems distinction in producing techniques of short-neck jar excavated from the both regions. In the sites of Nakdong river basin such as Seong-ju, Neuk-do, Ul-san, beating pottery which could be dated earlier than the time of installation of Lelang commandery have been excavated. The producing techniques of these pottery are much similar with that of warring states period pottery, especially in that of east region of liaoning, rather than pottery of Lelang. Thus, the background of appearance of Wajil pottery in Nak dong river basin is owing to transition of its own position in the international trade network. That network that was ranged from north-east region of China, north Kyushu to Okinawa was being operated mainly by Wiman-joseon(衛滿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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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瓦質土器는 낙동강유역권의 점토대토기가 漢式土器에 기원하는 낙랑토기의 영향으로 일대 변화를 일으켜 성립된 새로운 토기양식이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와질토기는 낙랑군 설치가 편년연구에서 상한연대의 기준이 되어 왔다. 뿐만아니라 낙랑군에서 낙동강유역권으로 유물이 반입되거나 또는 새로운 문화가 이입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제하는 경사편년관으로 연대를 정해왔다.
    한편 와질토기의 전국영향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으나, 이는 기술적 계보가 전국시대나 고조선과 연결된다는 것이지, 이입경로와 시기는 낙랑군과 관련된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낙랑영향설과 근본이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는 낙동강유역권의 와질토기가 낙랑토기의 영향 하에 제작되었다는 설을 검증하기 위하여 우선 양 지역의 타날문단경호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제작기법면에서 서로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성주 예산리, 사천 늑도, 울산 달천 유적 등지에서 낙랑군 설치보다 시기가 소급될 것으로 보이는 타날문토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토기들은 그 제작법이 낙랑토기와 다르며 오히려 전국토기에 통하고 구체적으로는 중국 요동지역의 토기들과 유사함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낙동강유역권에서 와질토기가 발생하는 배경은 낙랑군의 설치에 따른 여파가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중국동북지방과 북부구주, 오키나와까지를 연결하는 국제교역망에 낙동강유역권이 편입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또한 그러한 국제교역망을 운영한 주체를 위만조선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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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瓦質土器는 낙동강유역권의 점토대토기가 漢式土器에 기원하는 낙랑토기의 영향으로 일대 변화를 일으켜 성립된 새로운 토기양식이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와질토...

    瓦質土器는 낙동강유역권의 점토대토기가 漢式土器에 기원하는 낙랑토기의 영향으로 일대 변화를 일으켜 성립된 새로운 토기양식이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와질토기는 낙랑군 설치가 편년연구에서 상한연대의 기준이 되어 왔다. 뿐만아니라 낙랑군에서 낙동강유역권으로 유물이 반입되거나 또는 새로운 문화가 이입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제하는 경사편년관으로 연대를 정해왔다.
    한편 와질토기의 전국영향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으나, 이는 기술적 계보가 전국시대나 고조선과 연결된다는 것이지, 이입경로와 시기는 낙랑군과 관련된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낙랑영향설과 근본이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는 낙동강유역권의 와질토기가 낙랑토기의 영향 하에 제작되었다는 설을 검증하기 위하여 우선 양 지역의 타날문단경호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제작기법면에서 서로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성주 예산리, 사천 늑도, 울산 달천 유적 등지에서 낙랑군 설치보다 시기가 소급될 것으로 보이는 타날문토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토기들은 그 제작법이 낙랑토기와 다르며 오히려 전국토기에 통하고 구체적으로는 중국 요동지역의 토기들과 유사함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낙동강유역권에서 와질토기가 발생하는 배경은 낙랑군의 설치에 따른 여파가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중국동북지방과 북부구주, 오키나와까지를 연결하는 국제교역망에 낙동강유역권이 편입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또한 그러한 국제교역망을 운영한 주체를 위만조선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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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大貫靜夫, "遼寧を中心とする東北アジア古代史の再構成" 東京大學大學院人文社會系硏究科 2007

    2 李盛周, "嶺南地方原三國時代의 土器" 韓國考古學會 2005

    3 宋桂鉉, "嶺南地域初期鐵器文化의 收容과 展開" 嶺南考古學會 43-60, 2002

    4 崔種圭, "勒島遺跡의 構造"

    5 李昌熙, "勒島遺跡出土外來系遺物報告"

    6 釜山大學校博物館, "勒島貝塚과 墳墓群"

    7 慶南考古學硏究所, "勒島貝塚-考察編- Ⅴ"

    8 林孝澤, "洛東江下流域土壙木棺墓의 登場과 發展"

    9 정인성, "樂浪土城의「滑石混入系」土器와 그 年代" 백제연구소 40 (40): 1-31, 2004

    10 정인성, "樂浪土城의 土器" 한국고대사학회 34 : 71-124, 2004

    1 大貫靜夫, "遼寧を中心とする東北アジア古代史の再構成" 東京大學大學院人文社會系硏究科 2007

    2 李盛周, "嶺南地方原三國時代의 土器" 韓國考古學會 2005

    3 宋桂鉉, "嶺南地域初期鐵器文化의 收容과 展開" 嶺南考古學會 43-60, 2002

    4 崔種圭, "勒島遺跡의 構造"

    5 李昌熙, "勒島遺跡出土外來系遺物報告"

    6 釜山大學校博物館, "勒島貝塚과 墳墓群"

    7 慶南考古學硏究所, "勒島貝塚-考察編- Ⅴ"

    8 林孝澤, "洛東江下流域土壙木棺墓의 登場과 發展"

    9 정인성, "樂浪土城의「滑石混入系」土器와 그 年代" 백제연구소 40 (40): 1-31, 2004

    10 정인성, "樂浪土城의 土器" 한국고대사학회 34 : 71-124, 2004

    11 武末純一, "金海式土器に關する一私見" 九州古文化硏究會 1 : 40-61, 1974

    12 釜慶大學校博物館, "金海大成洞燒成遺蹟"

    13 金賢, "함안 도항리 목관묘 출토 와질토기에 대하여"

    14 이희준,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再論" 한국고고학회 52 : 69-94, 2004

    15 이희준, "초기 진·변한에 대한 고고학적 논의"

    16 정인성, "복원실험을 통해 본 樂浪 盆形土器와 평기와의 제작기법" 한국상고사학회 53 (53): 123-160, 2006

    17 정인성, "낙랑 ‘타날문단경호’ 연구" 강원고고학회 9 : 95-132, 2007

    18 鄭仁盛, "낙동강 유역권 細形銅劍文化의 전개" 慶北大學校大學院 1997

    19 權志瑛, "경주지역 와질토기 편년검토"

    20 金元龍, "韓國考古學槪說" 一志社 1973

    21 高倉洋彰, "韓國原三国時代の銅鏡" 14 : 1989

    22 申敬澈, "韓國の瓦質土器"

    23 崔鍾圭, "陶質土器의 起源" 6 : 59-80, 1994

    24 崔鍾圭, "陶質土器成立前夜의 展開" 韓國考古學會 -12, 1982

    25 申敬澈, "釜山久瑞洞출토의 瓦質土器" 2 : 1986

    26 申敬澈, "釜山·慶南出土瓦質系土器" 韓國考古學會 12 : 39-87, 1982

    27 蔚山文化財硏究院, "蔚山達川遺蹟-1次發掘調査-"

    28 申敬澈, "瓦質土器文化論" 韓國考古學會 1995

    29 申敬澈, "熊川文化期紀 元前上限說再考" 釜山大學校 4 : 1980

    30 深澤芳樹, "松菊里式土器의 打捺技法硏究"

    31 李昌熙, "木棺墓副葬土器의 形式學的檢討"

    32 慶尙北道文化財硏究院, "星州栢田禮山里土地區劃整理事業地區內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

    33 安在晧, "昌原茶戶里遺蹟의 編年"

    34 鄭仁盛, "弁韓·加耶의 對外交涉-樂浪郡과의 교섭관계를 중심으로-"

    35 李在賢, "弁·辰韓社會의 發展過程" 嶺南考古學會 17 : 11-32, 1995

    36 李在賢, "弁·辰韓土器의 形成과 展開" 영남고고학회 2002

    37 安在晧, "弁·辰韓の木棺墓文化"

    38 小田富士雄, "對馬發見の彌生時代瓦質系壷形土器-失われた漢式土器の追求-"

    39 長崎県教育委員会, "對馬-浅茅灣とその周邊の考古学調査-" 17 : 1974

    40 金龍星, "土器에 의한 大邱·慶山地域古代墳墓의 編年" 韓國考古學會 35 : 79-151, 1996

    41 金元龍, "原三國時代에 대하여" 韓國考古美術硏究所 11 : 2000

    42 崔秉鉉, "原三國土器의 系統과 性格" 韓國考古學會 38 : 1998

    43 石川岳彦, "中國遼東半島漢代墓制の内部空間利用にみる地域性" 133 : 2006

    44 李盛周, "·弁韓地域墳墓出土1∼4世紀土器의 編年" 嶺南考古學會 24 : 59-8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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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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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 1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9 0.82 1.79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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