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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정조 문예부흥기에 미친 도가사상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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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7,18세기는 조선이 사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방향을 열어나가는 중요한 때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가사상에 대한 관심과 논의 역시 다방면에서 포착된다.
    먼저, 현재 발견 연구된 󰡔노자󰡕와 󰡔장자󰡕에 대한 주석서가 대부분 17,18세기에 출현하고 있다. 비록 유학적 시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비판을 위한 도가 접근이 아니라 노자와 장자를 가능한 그 자체로 보고자 했다.
    그리고 17,18세기에 공안파의 문장과 사상이 유행하게 되면서 그들이 영향을 받은 양명좌파의 사상이 유입되었다. 이들의 사상은 진가론(眞假論)과 천기론(天機論), 동심설(童心設) 등의 담론들을 유행시키면서 특히 예술적 방면에서 문예운동의 단계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탁오의 동심설을 위시한 양명좌파와 공안파의 사상은 상당히 많은 부분 도가철학을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양명학적 유행 담론들의 통로를 통해서 노장의 철학사상이 학술계와 문화계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학습되었다. 대표적 성리학자인 낙론 계열의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은 당시 천기론의 진경문화를 주도한 핵심 인물들인데, 이들의 사상에서도 양명학적 경로와 도가적 성향이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 18세기를 풍미한 시중의 담론들이 양명좌파 사상의 수용과 함께 조선사회에서 활성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한편 조선사상계가 자발적으로 도가사상을 축적하고 적용하면서 이미 이들 담론들에 익숙해져 있었던 징후도 발견된다.
    당시 학자들의 사회를 주도했던 중요한 담론들은 주로 두 가지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예술적 방면이고 또 하나는 실학적 방면이다. 많은 실학자들이 그들의 실학사상에 도가철학의 사상 요소를 채택하였다. 특히 이용후생학파의 경우 그들의 실용적이고 실재적인 성격은 도가의 실재적인 기철학과 부합된다. 도가의 자연철학적인 사실주의와 상대주의적 가치관은 일상의 실용과 실리를 강조하는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도가철학의 평등한 인간관은 낙론의 인물성동론과 회통하여 조선후기의 계층이동과 근대적 평등의식으로 이어져갔다.
    그리고 박지원처럼, 비록 도가주석가들과 같은 체계적이고 직접적인 도가연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도가철학을 자신의 사상으로 수용접목한 지식인들도 발견할 수 있다. 연구자는 오히려 그들이 더 본질적이고 진정한 도가철학의 이해에 도달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도가철학을 자신의 사상 체계 내로 수용하여 완전히 자기사상화하였다. 이러한 도가철학의 내면화, 자기화는 도가철학사상을 연구하고 조선시대 학자의 사상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국면을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들의 철학사상을 유학이나 도가의 어느 하나라고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상 속에 유학과 도가철학의 경계가 녹아 하나의 자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7, 8세기에는 도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불만은 도교적 이상을 찾게 했고, 도교의 유행은 자연스럽게 도교가 의거하는 근본사상인 도가사상에 대한 관심과 독서로 이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도가와 도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주자주의의 확립과 환원에 열성이었던 송시열과 정조조차도 그들의 글 속에 도가적 인용과 표현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나타난다. 엄격한 사상계의 표면에서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지는 못하였지만, 분명 문학과 문화, 일상에서 도가사상과 도교는 당당히 시대의 주요한 한 흐름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도가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사상으로 적용한 당시인들은 저마다의 특수한 정치적, 계층적, 현실적 지평이 요구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도가적 사유와 삶의 방식을 수용해서 시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사상과 문화의 꽃을 피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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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8세기는 조선이 사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방향을 열어나가는 중요한 때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가사상에 대한 관심과 논의 역시 다방면에서 포...

    17,18세기는 조선이 사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방향을 열어나가는 중요한 때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가사상에 대한 관심과 논의 역시 다방면에서 포착된다.
    먼저, 현재 발견 연구된 󰡔노자󰡕와 󰡔장자󰡕에 대한 주석서가 대부분 17,18세기에 출현하고 있다. 비록 유학적 시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비판을 위한 도가 접근이 아니라 노자와 장자를 가능한 그 자체로 보고자 했다.
    그리고 17,18세기에 공안파의 문장과 사상이 유행하게 되면서 그들이 영향을 받은 양명좌파의 사상이 유입되었다. 이들의 사상은 진가론(眞假論)과 천기론(天機論), 동심설(童心設) 등의 담론들을 유행시키면서 특히 예술적 방면에서 문예운동의 단계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탁오의 동심설을 위시한 양명좌파와 공안파의 사상은 상당히 많은 부분 도가철학을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양명학적 유행 담론들의 통로를 통해서 노장의 철학사상이 학술계와 문화계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학습되었다. 대표적 성리학자인 낙론 계열의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은 당시 천기론의 진경문화를 주도한 핵심 인물들인데, 이들의 사상에서도 양명학적 경로와 도가적 성향이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 18세기를 풍미한 시중의 담론들이 양명좌파 사상의 수용과 함께 조선사회에서 활성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한편 조선사상계가 자발적으로 도가사상을 축적하고 적용하면서 이미 이들 담론들에 익숙해져 있었던 징후도 발견된다.
    당시 학자들의 사회를 주도했던 중요한 담론들은 주로 두 가지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예술적 방면이고 또 하나는 실학적 방면이다. 많은 실학자들이 그들의 실학사상에 도가철학의 사상 요소를 채택하였다. 특히 이용후생학파의 경우 그들의 실용적이고 실재적인 성격은 도가의 실재적인 기철학과 부합된다. 도가의 자연철학적인 사실주의와 상대주의적 가치관은 일상의 실용과 실리를 강조하는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도가철학의 평등한 인간관은 낙론의 인물성동론과 회통하여 조선후기의 계층이동과 근대적 평등의식으로 이어져갔다.
    그리고 박지원처럼, 비록 도가주석가들과 같은 체계적이고 직접적인 도가연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도가철학을 자신의 사상으로 수용접목한 지식인들도 발견할 수 있다. 연구자는 오히려 그들이 더 본질적이고 진정한 도가철학의 이해에 도달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도가철학을 자신의 사상 체계 내로 수용하여 완전히 자기사상화하였다. 이러한 도가철학의 내면화, 자기화는 도가철학사상을 연구하고 조선시대 학자의 사상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국면을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들의 철학사상을 유학이나 도가의 어느 하나라고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상 속에 유학과 도가철학의 경계가 녹아 하나의 자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7, 8세기에는 도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불만은 도교적 이상을 찾게 했고, 도교의 유행은 자연스럽게 도교가 의거하는 근본사상인 도가사상에 대한 관심과 독서로 이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도가와 도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주자주의의 확립과 환원에 열성이었던 송시열과 정조조차도 그들의 글 속에 도가적 인용과 표현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나타난다. 엄격한 사상계의 표면에서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지는 못하였지만, 분명 문학과 문화, 일상에서 도가사상과 도교는 당당히 시대의 주요한 한 흐름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도가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사상으로 적용한 당시인들은 저마다의 특수한 정치적, 계층적, 현실적 지평이 요구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도가적 사유와 삶의 방식을 수용해서 시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사상과 문화의 꽃을 피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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