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임형수는 16세기의 문인으로 乙巳士禍(1545년)를 이은 良才驛 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죽음까지 당했던 사람이다. 본 연구는 임형수가 종사관 시절에 지은 작품을 중심으로 시에 표출된 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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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orean
錦湖 林亨秀 ; Geumho Lim Hyung Su ; Public Assistant ; 『Geumho Yugo』 ; The Literary Word of Mockneng ; 『금호유고』 ; 從事官 ; 『동사록』 ; 酬唱詩 ; 16세기 호남 한시 ; 良才驛 壁書事件 ; 『송계만록』 ; 『지봉유설』 ; 「동정모추」 ; 賜暇讀書 ; 『황화집』 ; 蘇世讓 ; 崔演之 ; 嚴啓昭 ; 華察 ; 薜廷寵 ; 張承憲 ; 進賀使 ; 儀禮化 ; 穆陵盛世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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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금호 임형수는 16세기의 문인으로 乙巳士禍(1545년)를 이은 良才驛 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죽음까지 당했던 사람이다. 본 연구는 임형수가 종사관 시절에 지은 작품을 중심으로 시에 표출된 思...
금호 임형수는 16세기의 문인으로 乙巳士禍(1545년)를 이은 良才驛 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죽음까지 당했던 사람이다. 본 연구는 임형수가 종사관 시절에 지은 작품을 중심으로 시에 표출된 思惟 양상을 구명한 후에 사유의 특징과 한계 등을 집중 논의하였다. 본 연구가 가능했던 이유는 從事官 시절에 지은 작품은 현전하는 임형수 한시의 擧皆를 차지하고 있기에 1차적 논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종사관 시절에 지은 작품들을 검토해보면, 종사관이라는 임무에 맞추어 사유의 양상이 드러남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구명은 임형수 한시 연구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가 원만히 수행된다면, 酬唱詩를 통해서 당대 명나라와 조선 양국의 문학 교류 양태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16세기 호남 문인 한시의 일 국면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16세기 한국 한시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임형수의 製述 능력과 종사관으로 차출된 경위를 정리하였다. 전남 羅州에서 태어난 임형수는 1547년에 생을 마감하여 34세라는 짧은 생을 살았다. 임형수와 관련된 기록 내용들을 살펴보면, 성격이 대범하고 준걸하며 사소한 것에 매이지 않았고, 마음이 넓고 훤칠하며 기개가 한 세상을 덮을 만하였으며, 풍류가 豪逸하였고, 제술에 능했다고 하였다. 본 논고는 특히, 제술에 능했다는 부분에 주목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재능이 종사관 차출과 직접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술 능력은 權應仁이 편찬한 『松溪漫錄』과 李睟光의 문집인 『芝峯類說』, 『조선왕조실록』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폈다. 특히, 임형수의 제술 능력을 알려주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총 4건인데, 대체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경합을 벌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하였다. 이렇듯 공인된 제술 능력 덕분에 26세 때(1539년) 병조 좌랑에 임명된 후에 遠接使 蘇世讓의 종사관이 될 수 있었다.
본론의 ‘시에 표출된 사유 양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세 부분으로 나눈 근거는 전적으로 작품 내용에 근거한 것으로 우선 시를 살핌에 종사관 신분으로서 창작했음을 잊지 않았다. 종사관은 우선 公務를 담당한 사람으로서 이때 지은 시라면 우선 형식성과 의례성 등 감성과는 무관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선입견이 아니더라도 실제 임형수가 종사관 시절에 지은 시들을 보면, 종사관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官人이라는 신분을 잊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측면도 다소 엿보였다. 특히, 종사관은 원접사를 수행하면서 불시에 있을지 모르는 명 사신들과의 시 창작 겨루기에 나설 수도 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s it was suspected that Geumho Limm Hyong-Soo, a literary person in the 16th century, was involved in the Byokseo Incident in Yangjaeyeok following Eulsasahwa(1545), he was sentenced to death. This study discussed the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s ...
As it was suspected that Geumho Limm Hyong-Soo, a literary person in the 16th century, was involved in the Byokseo Incident in Yangjaeyeok following Eulsasahwa(1545), he was sentenced to death. This study discussed the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s of the thoughts he expressed in poetry written while working as a government official. As the poetry he wrote while working as a government official covers most of his Chinese poetry, it is judged that it deserves to be mainly discussed in this study. The poetry he wrote while working as a government official, shows his thinking as an official, which is the point of this study. It is expected that the results of this study will show aspects of the literary exchange between the Joseon and the Ming Dynasty through Soochangsi, and will be a chance to understand aspects of Chinese poetry by literary persons in Honam Province in the 16th century. Before any real discussion, this study presented his writing ability and the process by which he was appointed as an official. He was born in Naju, Jeollanamdo and passed away in 1547 when he was 34 years old. The record of him was presented: Mr. Lim was brave and eminent. He was not bound to insignificant things. He was generous and his spirit was great enough to cover the universe. He was eleg